김앤장이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기업의 법률대리인이다.

지난해 말 검찰수사가 시작됐지만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7일 서울대 수의학과 조아무개 교수가 구속되면서다. 조 교수의 법률대리를 맡은 김종민 변호사는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어 보고서 조작의 당사자로 옥시와 김앤장을 지목했다.

김종민 변호사에 따르면, 조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와 중증폐질환의 인과 관계가 밝혀진 한 달여 뒤인 2011년 9월30일 옥시로부터 PHMG의 독성실험을 의뢰받았다. 조 교수는 같은 해 10~12월 임신한 쥐를 대상으로 한 PHMG의 생식독성실험에서 임신한 쥐 15마리 가운데 13마리의 새끼가 죽었다는 결과를 얻었고 이를 2011년 11월7일, 11월29일 그리고 2012년 2월17일에 옥시에 통보했다. 문서로 실험 결과를 전달한 11월7일 이후의 두 번의 회의 자리엔 옥시의 법률대리를 맡은 김앤장 측도 참석했는데, 이후 옥시는 임신한 쥐를 상대로 한 생식독성실험 결과를 제외하고 일반 쥐를 대상으로 한 흡입독성실험 결과만 보고서로 작성해달라고 조 교수에게 요청했다는 것이다.

▲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검찰은 조 교수가 임신한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와는 별개로 일반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에서도 옥시에 불리한 결과를 누락한 정황을 확인하고 조 교수 역시 실험 결과에 손을 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조 교수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렵지만 옥시와 김앤장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사전에 인식하고 있었으면서 이를 감추려 했다는 정황도 부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조 교수가 2012년 4월18일자 최종 보고서에서도 시험물질 흡입에 따른 전신독성 유발 가능성을 경고하고 이에 따른 유발원인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최종 보고서엔 실제로 “반복흡입 독성 시험 전 과정 중에 나타나는 체중 감소와 혈액 및 혈액생화학적 결과에서 BUN, TG, TP, AST 및 Ca 등과 같은 몇몇 항목에서 관찰되는 대조군 대비 유의성 있는 변화를 주목해야 하며 이는 시험물질 주 노출 경로인 폐장을 제외한 신장, 간장 및 심장과 같은 다른 장기의 영향이 의심된다”고 명시돼 있다.

김 변호사는 “따라서 (조 교수가 작성한) 최종보고서는 완결된 보고서가 아니고 충분히 더 조사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점을 옥시 측에 경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옥시와 김앤장이 법원과 수사 기관에 가습기 살균제가 피해자 사망의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한 것은 옥시와 김앤장의 책임이라는 것이 조 교수 측 주장이다.

김앤장은 2013년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조 교수팀으로부터 실험 원 자료를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앤장이 조 교수팀의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은 2013년 3월이다. 조 교수팀의 최종보고서가 나온 시점은 2012년 4월이므로 1년 가까이 법원 제출이 늦어진 이유도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영장실질심사에서도 조 교수는 자신이 만든 원 데이터와 보고서 가운데 유리한 부분만 옥시와 김앤장이 발췌해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김앤장이 검찰 수사로부터 비켜나 있음에도 여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사회적 논란을 부른 굵직굵직한 사건들에서 김앤장이 “직무를 행함에 있어서 진실을 왜곡하거나 허위진술을 하지 아니한다”는 등의 변호사 윤리는 물론이고 실정법 위반으로 비판받는 행보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론스타 사건이 대표적이다. 은행법상 대주주 자격이 없던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엔 불법적인 예외규정 적용(은행법 시행령 8조2항, “부실금융기관 정리 등 특별한 사유”)과 BIS 비율 조작이라는 두 가지 핵심 고리가 있었다. BIS 비율 조작을 누가 주도했는지는 미궁에 빠졌지만, 김앤장이 불법적인 예외규정 적용에 관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장화식 전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와 론스타의 탄원서 거래도 김앤장이 주선했다.

이 거래에 대해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은 장씨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원,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에게 징역 4월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합의문안을 만들고 유회원 대표를 설득해 거래를 성사시킨 김앤장은 처벌받지 않았다. 한겨레21은 당시 김앤장이 변호팀에 추천한 이동명 변호사가 장씨에게 ‘만일 유회원이 추가 합의금 4억원을 지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본 각서인이 유회원을 위하여 장화식에게 위 금액을 지급할 것임을 약속’한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써 준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본 김앤장에 대한 고발도 있었다. 지난 2007년 삼성의 비자금 조성 등 불법행위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그해 11월26일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 김앤장법률사무소 홈페이지
“삼성의 불법 행위, 특히 불법적인 승계에 관련한 범죄행위에 대하여는 대부분 김앤장이 법률조언자 내지 대리인의 방식으로 관여하였다. 김앤장은 삼성의 범죄행위를 축소 무마하고 그 대가로 막대한 보수를 지급받았다. 김앤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당시 에버랜드 이사회가 아예 열리지도 않았다는 사실 및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 그룹 차원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을 주도하였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수사 및 형사재판 과정에서 이와 다른 내용의 허위사실을 조작하는 것에 적극 가담하였다.”

“이종왕 전 법무실장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그만두고 삼성에 입사하기 전에 6개월 동안 태평로 빌딩 26층 이학수 부회장의 안가로 사용되는 오피스텔에서 수시로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과 회합하고 대선자금 수사 축소와 무마를 협의하였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그룹의 수뇌부인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이었다. 김앤장은 언론을 통해 “김 변호사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우리는 정당한 활동을 했을 뿐”이라고 했지만, 특검 역시 김앤장의 수임료가 비자금에서 지급됐을 가능성을 언급했을 만큼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는 구체적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특검 수사는 소리만 요란했을 뿐 김앤장을 수사 대상에 올리진 못했다.

2013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회삿돈 횡령 관련 재판에서도 최 회장과 공모한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진술을 번복한 것은 최 회장 변호인이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말해 김앤장의 위증 교사 논란이 일었다.

법률대리인으로서의 정당한 활동이 아닌 김앤장의 ‘특별한’ 활동은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올해 1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전담수사팀이 서울중앙지검에 꾸려지고 난 얼마 뒤 소속 검사실로 김앤장 변호사 두 명이 방문했다. 노컷뉴스의 단독보도에 따르면 이 가운데 한 명은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였다. 그는 선임계도 내지 않고 검사실 입회를 시도하다 저지당했다.

현행 변호사법은 법원이나 수사기관에 변호인 선임서나 위임장 등을 제출하지 아니하고는 수사 중인 형사사건이나 재판 중인 사건을 변호하거나 대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노컷뉴스는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청탁 등을 도맡아 하는 ‘전관’ 변호사들은 본인의 출신을 앞세워 수사나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검찰 출신인 A변호사도 선임계 없이 자신의 출신을 내세워 옥시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하도록 청탁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앤장은 옥시레킷벤키저의 법률대리를 맡아 법정에서 각종 서류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소송을 지연시킨다는 비판을 받았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폐질환 원인이 황사 때문이라거나 레지오넬라균 때문이라는 등의 주장도 펴왔다. 황사가 폐섬유화를 일으킨 임상 사례도 없고 살균제를 사용한 가습기에서 레지오넬라균이 번식해 폐질환을 일으켰다는 주장도 황당한 것이어서 옥시와 김앤장의 이런 태도는 피해자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

김앤장은 수임을 한 의뢰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변호인의 기본 임무라고 얘기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역시 증거조작과 같은 불법행위에 관여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업계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변호사 업무의 특성상 김앤장이 처음부터 수임을 한 거라면 어떤 자료들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 그리고 그것을 위한 계약 등에도 김앤장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서울대 조 교수가 말하는 보고서 왜곡의 실체를 밝혀 과연 김앤장이 검찰 수사를 방해한 것인지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앤장 관계자는 “우리는 실험엔 일절 관여한 바 없다. 조 교수가 작성한 결과보고서를 전달받아서 그대로 법원에 제출했고 조작이나 은폐 의혹은 전혀 사실 무근이다”라며 “로데이타를 받은 건 우리가 법원에 보고서를 제출한 이후이며, 혹시라도 법원에서 추가로 요청할 상황에 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 차례 프리젠테이션 자리(2011년 11월, 2012년 2월)에 김앤장 변호사도 참석을 했기 때문에 김앤장도 유해성을 미리 알았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프리젠테이션에 참석한 것은 맞다”면서도 “이 부분(변호사가 유해성을 인지했는지)은 좀 더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답변했다.

▲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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