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부터 비가 내린 지난 2일, 서울메트로 2호선 을지로입구역 안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모두 물에 젖었다. 거리홈리스들은 비를 피해 역 내로 내려가지 않고 젖은 계단 위에 박스를 깔고 잠을 청했다. 차도가 가까워 경적 소리와 엔진 소리가 잠을 방해할 만큼 크게 들렸지만, 이들은 ‘선’을 넘지 않았다. 지하철 운행이 종료되는 새벽 1시 역사 셔터문이 내려오는 선이었다.

서울시 내 대표적인 노숙 거점 공간이었던 을지로입구역은 지난달 16일부터 영업종료 후 역사를 폐쇄했다. 서울메트로는 횡단보도가 생겨 지하 역사가 보행통로 기능을 상실했고 시설물 관리에 어려움이 있어 역사를 폐쇄한다고 밝혔다. 4월15일 역 안에 자리를 펴고 누운 홈리스들은 역 관계자, 지하철보안관 등의 퇴거조치에 모두 셔터문 밖으로 내쫓겼고, 이후로 이들은 문 바로 앞에 잠자리를 잡았다. 대부분 바깥 인도와 연결된 계단 부근이다. 미디어오늘은 홈리스들이 ‘강제퇴거’ 된 지 보름이 지난 2일과 5일, 을지로입구역을 들러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 지난 4월16일 새벽 1시 서울메트로 2호선 을지로입구역 출입구가 폐쇄되고 거리홈리스들이 셔터문 밖으로 잠자리를 잡고 있다. 사진=홈리스행동 제공

을지로는 20년간 홈리스가 ‘의탁’했던 생활권 “일방적 폐쇄 너무해”

“약 20년 이상 많은 노숙인이 잠자리를 제공 받아왔으나 출입구마다 영업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일제히 셔터문을 내림으로써 그동안 면면히 이어져 왔던 노숙인 잠자리 터전을 잃게 됐다.” 퇴거가 이뤄졌던 지난달 16일 새벽 2시, ‘노숙인 자율 선전위원’으로 활동하는 한 홈리스가 역 출입구 앞에 서서 읊은 입장문이다.

을지로입구역은 20년 동안 홈리스들이 잠자리, 쉴 공간으로 삶을 ‘의탁’해 온 공간이다. 인근 종각역, 회현역, 서울역 등에선 역 관계자들이 홈리스를 노골적으로 내쫓거나 이미 출입문을 만들어 야간폐쇄를 단행한 바 있다. 그에 비해 을지로입구역은 오랫동안 야간 개방을 유지해왔다.

공공역사나 지하통로는 홈리스들이 당장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공공에 열린 공간 중 비·바람과 외부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달 쪽방촌에 방세를 못 내 거리로 나왔다는 김아무개씨(56)는 “우리가 잘 땐 술 취한 사람에게 마구 밟히기도 하고 심지어 나이 어린 애한테 맞기도 한다”면서 “공원에서 혼자 자면 발소리 들릴 때마다 눈이 뜨여 제대로 못 잔다. 지붕, 벽이 있어 비나 바람을 막아주고 사람들끼리 같이 모여 잘 수 있는 곳이 이런 곳”이라 말했다.

역에서 만난 홈리스들은 “나가라면 나가야지”라 말하면서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1번 출구에 누울 자리를 편 한 홈리스는 “(역 내보다) 더 춥다. 그래도 봄, 여름이니까”라고 말을 삼키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8년째 을지로입구를 찾는다는 홈리스 이아무개씨는 “외국인들 많은데 우리가 이렇게 24시간 있는 것도 아닌 것 아니냐”면서도 “저 사람처럼 다리 한쪽 없는 사람도 있고 골병든 사람들도 많은데 이렇게 쫓으니 정말 서운하고 안 좋다”고 말했다.

“내쫓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하게 의사를 표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2000년 회사가 부도 난 후부터 16년 동안 을지로입구를 떠나지 못한 홈리스 서아무개씨(64)는 “비는 피하고 살아야지. 개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받고 있다”며 “자리가 없어 계단 한쪽에 눕거나 앉아서 자는 사람도 있다. 그냥 나가라고 내쫓는 거다”라고 서울메트로를 비판했다.

▲ 지난 4월16일 새벽 2시 을지로입구역에서 '미스터조'라 불리는 노숙인 자율 선전위원이 역 지하통로 폐쇄조치에 대한 입장문을 읽고 있다. 사진=홈리스행동 제공 영상 캡쳐


이번 폐쇄조치가 ‘거리에서 또 다른 거리로’ 홈리스를 강제퇴거할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홈리스 인권운동단체 ‘홈리스행동’의 황성철 활동가는 “후속대처방안도 없이 내쫓으면 노숙인은 다른 역사나 거리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식의 강제퇴거 조치들이 거리홈리스들을 공공기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내몰고 있다”고 우려했다. 공공역사에서조차 밀려난 이들이 ‘복지지원이 미치지 않는 더 깊은 사각지대’로 빠져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일과 5일 모두 40~50여 명의 홈리스가 을지로입구에서 밤을 보냈다. 을지로입구역은 많게는 150명, 적게는 60명이 지내온 곳으로 알려졌다. 내쫓긴 이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만나 본 홈리스 모두가 다른 역을 말했다. 홈리스 김씨는 “영등포역, 용산역 같은 다른 역으로 가겠지”라고, 이름을 밝히기 꺼린 홈리스는 “인천, 수원, 의정부로 갈 때도 있다. 대중없다. 나도 한 곳을 가겠지”라고 말했다.

홈리스 기댈 공간 더 없어질 것… 대책 없는 추방 이들을 더 거리로 내몰 뿐

현장 활동가들은 당장 ‘졸속 추방’, ‘땜질식 처방’이라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 5일 을지로입구역에서 야간무료급식 봉사를 하던 ‘거리의 천사들’의 한 봉사자는 “홈리스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하고 폐쇄 이후 이들이 어떻게 될지 대책을 고민하고 직접 활동하는 봉사단체와 긴밀히 협조하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서울메트로는 내쫓기 바쁘다”며 “땜질식 방식으로는 안된다. 홈리스들이 다른 공간으로 밀려날 뿐이지 해결이 되겠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난 8여 년간 홈리스 쉼터 지원, 무료급식 지원 활동을 해오며 서울지역 홈리스들과 긴밀히 소통해왔다.

그는 공공기관으로서의 안이한 대처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서울메트로를 포함한 공공기관들은 이들을 골칫거리, 내쫓을 대상으로만 대우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역 이미지, 미화 문제 때문에 무료급식봉사를 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서 “홈리스도 국민이고 시민이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문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해야 하는 게 공공기관인데 갈 곳 없는 사람들 무조건 내보낸다. 인권침해라고도 생각한다”고 날 선 비판을 가했다.

문제는 ‘홈리스 추방’이 을지로입구역에서 그치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황 활동가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공공역사·지하통로 퇴거조치들이 계속 있었다. 거리홈리스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더 줄고 있다”면서 “최근 연세빌딩 지하통로와 용산역에서 그런 조짐이 보인다”고 우려했다. 연세빌딩 통로는 서울역7010프로젝트로 인한 고가공원화 사업 때문에, 용산역은 역 주변에 신라면세점이 들어서기 때문에 ‘도시의 미관을 위해’ 홈리스에게 불편함을 주는 조치로 이들을 밀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2009년 을지로입구역 내 모습. 현재는 중앙 광장이 사라지고 상가가 들어섰다. 이 공사 때문에 을지로입구역을 드나들던 홈리스 수가 더 줄었다. 사진= KBS 스페셜 '을지로, 겨울이야기'(2009년 2월15일 영상) 캡쳐

매주 목요일 밤 남대문 인근에 상담활동을 나가는 김장기 노숙인공동인권실천단 활동가도 을지로입구역 폐쇄 이후 남대문 지하통로 홈리스와 인근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이 “상인 민원, 시민 민원이 많아 남대문에서도 곧 노숙인들이 내쫓길 수 있다”는 말이 나돈다고 지적했다.

시민 통행 불편, 도시 미관 저해, 시설물 관리 어려움, 지하통로 기능 상실 등 홈리스 퇴거 조치의 이유가 줄어들지 않을 상황에서 공공역사 폐쇄조치가 더 확대될 것이란 예측은 설득력 있다. 특히 철도안전법 제48조는 철도 보호 및 질서 유지를 위해 ‘역 시설 또는 철도차량에서 노숙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법 적용이 확대될 가능성도 충분한 상황이다.

‘시설에 가라’ 이미 실패한 정책… 홈리스 욕구에 귀 기울인 적극적 지원 나와야

황 활동가는 “폐쇄조치의 사유를 부정할 순 없다. 다만 후속대책 마련이 전제돼야 하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향도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당장 역 주변을 떠도는 홈리스에게 임시주거지원을 연계하고 더 극한으로 몰릴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경찰·서울메트로 등 공공부문 주체들이 적절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연계할 수 있는 지침서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설에 가면 되지 않느냐’는 홈리스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판이다. 홈리스와 활동가는 시설·쉼터가 홈리스에게 적절한 대책이 아니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을지로입구에서 만났던 홈리스 이씨는 “시설에서 새벽·저녁 기도, 봉사활동을 강요해서 몇 주 있다 쫓겨났다”며 “이렇게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남대문 지하통로에서 만난 정아무개씨(62)는 “20~30명이 한 방에 자기도 하는데 단체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라 불편한 게 많다”면서 “시설이 정부지원금이 나오고 후원단체가 생기니 하지, 노숙인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전혀 못 받는다. 이용당하는 느낌이나 편하지 않은 조건 때문에 결국 시설로 다시 못 돌아갈 때가 많다”고 말했다.

▲ 롯데백화점과 연결된 을지로입구역 8번 출구 모습. 벽 전면에 화분 8대가 놓여있다. 일반적으로 화분을 놓는 자리가 아님을 고려할 때 홈리스의 접근을 막기 위한 용도라 추측할 수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황 활동가도 지금의 시설·쉼터 중심의 방향성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거리홈리스는 그동안 증가해왔고 시설을 통해 ‘탈노숙’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 과정에서 홈리스들이 왜 시설을 기피하는 지 이유도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홈리스행동은 홈리스의 요구에 더 귀 기울여 그에 맞는 적극적인 대책을 입안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금과 같은 단기간·저비용의 주거·일자리 대책이 아니라 장기간의 충분한 예산이 지원되는 홈리스 지원정책으로 거듭나야 제대로 된 탈노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리의 천사들의 봉사자도 “노숙인 중엔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다. 이미 스트레스가 가득 차 있고, 마음이 아프니 술을 많이 마시며 노숙 생활이 오래되면서 정신적 장애를 입기도 한다”며 “이들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접근이 이뤄져야 이들의 자립도 도울 수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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