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양대 해운사 구조조정과 관련해 경영실패로 인한 총수들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자율협약 신청 과정에서 사재 300억 원을 출연한 것으로 알려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당시 현대상선 회장)은 1년6개월 전 자신과 친인척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상선 주식을 처분하고,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으로 맞교환한 일이 조명을 받고 있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회사가 어려워지자 자신의 지분을 팔아치웠다는 비판을 받은 것과 비교해 현 회장이 지난 3월 사재출연했다며 나름 자구노력을 충실히 해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증권업계와 사회단체 쪽에서는 현정은 회장이 자신의 현대상선 지분 정리를 한 것을 두고 ‘회사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처했는데 경영권 방어 목적의 거래를 한 것 아니냐’, ‘손실회피 효과를 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그룹 측은 ‘책임경영을 위한 목적의 거래였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나와있는 지난 2014년 10월27일 현대그룹의 ‘특수관계인과의 내부거래’를 보면, 당시 현대상선 대주주인 현정은 회장(287만여주·지분율 1.70%)과 김문희(77만여주), 정지이(4만여주), 정영이(1만여주), 정영선(2만여주) 등 특수관계인 5인은 이들의 현대상선 지분전량인 2.04%(372만여주)를 현대글로벌에 넘기는 대신, 현대글로벌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엘리비이터(현대상선의 최대주주)의 주식 118만여주(6.05%)를 지급받는 ‘주식교환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은 현대상선 주식을 주당 1만2100원에 팔고,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은 주당 3만7900원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모두 450억4900만 원 어치의 거래를 했다. 이로인해 당시 현대엘리베이터의 1대 주주가 현대글로벌에서 현정은 회장으로 바뀌었다.

현 회장 개인과 일가는 이후 1년4개월간 현대상선의 주식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뒤 자율협약이 이뤄지는 과정인 지난 2월 현 회장은 제3자 배정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해 300억 원 어치의 주식을 사들여 1년4개월 만에 지분(1.74%)을 보유하게 됐다.

현 회장 등이 1년4개월 전 주식교환시 매각한 현대상선 주식가격 1만2100원은 현재 2000원에 거래정지가 된 상태이며, 사들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식가격 3만7900원은 3일 현재 종가기준으로 5만6800원에 이르는 등 크게 오른 상태이다. 

현대글로벌은 자본투자회사로 지배구조가 2014년 10월 현 회장 59.21%, 현대상선 24.80% 등으로 구성돼 있었으나 현 회장이 현대상선의 주식을 사들여 지분율이 91.3%에 이르는 회사가 됐다. 현 회장이 대부분의 지분을 보유한 법인인 현대글로벌은 현대상선 지분을 사들여 손해를 봤지만, 현 회장 일가의 개인들은 현대상선 주식을 모두 팔아 결과적으로 손실을 피한 셈이 됐다. 엘리베이터 주식가격은 크게 올랐다. 

손실회피 여부와 관련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에 팔았으니 큰 의미는 없다는 주장과 함께 자신 소유라 하더라도 개인이 아닌 법인이 사들인 것은 다르다는 반론이 나온다.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3월 10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4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세청장 초청 전국상의 회장단 정책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와 함께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력 계열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 2013년 11월 경제개혁연대는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무리하게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판단해 현정은 회장 등 7명의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을 상법 제542조의9 신용공여 금지 규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일이 있다. 이 단체는 “현대그룹의 총수인 현정은 회장은 자신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계열사들을 불법적으로 동원한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은 검찰이 아직 수사를 마무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유지하기 위해 주력 계열사들에 손실을 끼치다 정작 구조조정을 해야 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라며 “현대상선-엘리베이터 주식교환 문제도 점점 회사가 어려워지니 자신의 지분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장인 이상훈 변호사는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주식교환 당시 현대글로벌이 현대엘리베이터의 1대 주주가 되면 지주회사가 돼 증권사를 보유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현대증권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현대글로벌을 2대주주로 만들고, 현 회장에 유리한 지배구조로 만들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변호사는 “이와 함께 당시 어려워지고 있던 현대상선의 가족 지분을 정리해 손해를 회피하는 부수적 효과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무엇보다 도산위기에 처한 그룹을 회생시켜야 할 때 경영권 방어에 중심을 둬 거래하는 것이 과연 지배주주의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경제개혁연대 회계사 출신으로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가 된 채이배 국민의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당시 현대그룹이 현대엘리베이터-현대글로벌-현대로지스틱스-현대상선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변화시키는 과정이었을 것”이라며 “현 회장이 막대한 부실경영을 한 데 대해 추가적인 사재출연과 같은 더 큰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채 당선자는 “현대엘리베이터 파생상품 거래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다른 계열사간 의심스런 거래 등을 이번 기회에 공정위에 조사요청을 하는 등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측은 당시 주식교환은 책임경영 강화 차원이었으며, 현 회장이 사재출연을 통해 책임있는 행동을 해왔다고 밝혔다.

현대그룹과 현대상선은 3일 미디어오늘에 보내온 답변자료에서 주식 교환과 관련해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 주식교환은 효율적인 지배구조 정립과,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 등 핵심 계열사에 대한 현정은 회장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후 순환출자 문제와 함께 위험 요인으로 지적됐던 지배구조 관련 위협 요인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이 2013년 12월부터 강도 높은 자구안을 이행해 2014년 2분기 당기순이익 701억 원, 3분기 당기순이익 2427억 원으로 거두었고, 2015년 1분기에는 5년만에 영업이익을 시현했다”며 “현대상선 주식이 하락할 것을 예상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현정은 회장이 상선지분을 매각 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현대그룹은 2014년에도 현대상선을 살려 경영정상화를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현대그룹은 “현재 현대상선이 지난 3월 자산매각, 사재출연, 유동성 확보 등 선제적 자구안 이행으로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과 조건부 자율협약을 맺어 추가 자구안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회사의 재무구조 개선과 유동성 확보를 위해 300억 원 규모의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사재를 출연했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의 현대엘리베이터 관련 고발에 대해 현대그룹은 “파생계약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며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이 현대엘리베이터에도 이익이 됐던 게 사실이다. 오히려 아무 노력없이 현대상선 경영권을 포기한다면, 경영진들은 회사에 대해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는 한편,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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