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언론은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장사를 하던 대상인들에 비유할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대항해시대가 열린 것이다. 상품 유통의 구조, 방식 등 모든 것이 다 달라져야 한다. 기존 언론계에 몸 담고 있던 실크로드 보부상들은 시대가 달라진다고 하니 부두나 항구에 견학도 가보고 하면서도, 다들 바다에서 살아본 적이 없으니 결국 사막에 다시 돌아온다. 결국 우리도 배를 사서 빨리 바다에 나가 장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 멘붕인 것이다.”

최민영 경향신문 미래기획팀 차장은 언론사들이 디지털 퍼스트 전략으로 ‘멘붕’에 빠진 상황을 이렇게 비유했다. 문법과 환경이 전혀 딴 판인 환경에서 생존하라는 당면과제 앞 멘붕에 빠진 언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미디어오늘은 지난 21일 최민영 경향신문 미래기획팀 차장을 만나 경향신문의 디지털 대응 전략과 뉴미디어 시대 언론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최민영 경향신문 미래기획팀 차장. 사진제공=경향신문.
경향신문은 언론사 중 페이스북 상에서는 가장 빠르게 좋아요 수를 채워나갔다. 이미 2014년도에 페이스북 좋아요 수는 20만을 넘었다. 지금은 30만을 바라보고 있다. 운영 초반 ‘향이’라는 캐릭터는 경향신문 페이스북을 사람들과 가깝게 만드는 하나의 전략이었다. ‘향이’는 페이스북 이용자와 뉴스를 두고 대화를 나눴다. 기존 신문 같은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친근한 화법을 쓰는 것이 경향신문의 콘텐츠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최 차장은 경향신문 지면의 정체성과 온라인 상의 정체성을 동일하게 가져가려 했던 것도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향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시민사회를 향해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와 경향신문 지면을 통해 사회에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결국 동일하다는 것이다. 온라인이라는 환경 특성에 맞춰 전달 방식만 조금 차이를 두겠다는 전략이다. 

▲ 경향신문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이후 경향신문의 페이스북은 ‘짤’로 인기를 끌었다. 2014년 중형태풍 ‘너구리’가 한국에 간접 영향권에 들었을 때 똘망똘망한 눈빛을 보내는 너구리 사진을 붙인 것이 시작이었다. 여기에 재미를 붙인 경향신문 SNS관리팀은 ‘약 빤’ 짤을 기사 링크에 같이 올리기 시작했다. 이용자들로부터 ‘재밌다’며 폭발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안정적인 독자 수를 유지하고 있는 경향신문의 페이스북에서는 정치 분야보다 공감을 끌어내는 미담 관련 콘텐츠에 대한 호응이 높다. 신라호텔 이부진 사장이 신라호텔 문을 실수로 들이받은 택시기사에게 수리비를 안 물게 했다는 내용이나 어느 할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고급 외제 승용차 옆 면에 흠집을 냈는데 차주가 도리어 ‘통행에 방해가 돼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는 등의 미담은 도달률이 300만 정도를 기록했다. 정치 콘텐츠에 반응도가 높은 다른 언론사 페이스북 계정보다 좋아요를 누른 이들의 연령대가 19~24세로 낮은 편에 속한다.

최 차장은 “SNS를 운영하는 기자들이 30~40대라 평소에 일부러 인터넷 커뮤니티도 자주 들어가면서 젊은 감각을 익히려고 노력한다”면서도 “어느 커뮤니티를 들어가는지는 밝히지 않겠다”고 답했다.

경향신문 SNS는 현재 미래기획팀에서 운영하고 있다. 계정 관리자는 총 4명이며, 모두 기자다. 하루에 한 사람 씩 돌아가며 SNS를 담당한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후 6시까지 페이스북과 트위터 계정을 관리한다. 온라인 상에서 이슈가 되는 뉴스들을 살피고 이에 맞춰 카드뉴스나 동영상 등을 제작한다. 다른 부서에서 나온 경향신문의 기사를 디지털 콘텐츠로 가공해서 올리기도 하고, 경향신문 사진 데이터베이스를 직접 찾아서 내용에 맞게 카드뉴스를 만들기도 한다.

최근 ‘내 소득을 키로 나타낸다면’ 이라는 디지털 맞춤형 콘텐츠는 황경상 기자가 제작한 것이다. 혼자 HTML과 CSS 등을 독학으로 배워 만들어 낸 콘텐츠였다. 이 콘텐츠는 독자가 자신의 1년 소득을 입력하면, 소득과 키가 비례하다는 전제조건 하에 1시간 동안 우리나라 국민이 행진하면 나는 몇 분만에 등장할지를 보여주는 인터렉티브 기사다.

디지털분야로 뛰어든지 3년 차에 접어든 경향신문의 성과는 무엇일까. 최 차장은 “경향신문 조직 전체가 디지털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반발도 컸다. 지면 기사를 쓰기에도 바쁜데 기사를 실시간 온라인 송고까지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피로도가 높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물론 지금이라고 피로도가 낮아진 것은 아니다. 다만 조직원들이 3년이 지나는 동안 지면 뿐만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대중에게 빠르고 정확한 콘텐츠가 빠르게 전달됐을 때 매체 영향력이 어떻게 올라가는지 조직 전체가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경향신문 입장에서 디지털 전략과 SNS는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페이스북 좋아요 수가 30만에 가까운 반면 현재 경향신문의 유료 구독부수는 20만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면을 포기할 수도 없다. 지면은 광고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다. 디지털 콘텐츠로는 아직 수익을 끌어내기는 힘들다고 최 차장은 전했다. 언젠가는 지면에서 디지털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겠지만, 아직까지는 지면도 온라인도 병행해야 하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조직의 피로도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 경향신문 페이스북의 인기 '짤' 중 하나.
다만 디지털 시대에 들어 기존 언론의 문법은 많이 변화하고 있다. 더 이상 언론은 아젠다 세팅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SNS 상의 수 많은 이용자들이 쏟아낸 멘션 중 촌철살인 같은 논평이 있고 이것이 많이 공유되면 그 또한 아젠다 세팅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언론만이 논평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 최 차장의 생각이다.

“저널리즘의 개념이 다 바뀌고 있다. 아젠다 세팅 기능은 신문에서 독자로 넘어갔다. 많은 독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그 내용이 아젠다고, 우리가 1면에 뭘 썼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기자의 역할도 바뀌었다. 예전처럼 출입처에 갇혀 출입처 이슈만 취재하고 쓰는 기자는 안 통할 것이다. 예전에는 실크로드를 장악하면 끝났지만 이제는 누구나 배만 있으면 상단도 장악할 수 있다. 기존 언론의 논평기능은 와해됐다.”

디지털 환경에서 언론의 역할과 저널리즘의 문법이 바뀌었다고 개념자체가 아예 뒤집히는 것은 아니라고 최 차장은 선을 그었다. 언론사가 언론으로서의 공적 기능을 포기하는 것을 “병원이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지 않고 건설업계가 부실공사를 하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최 차장은 경향신문 페이스북 조회수가 ‘터질뻔한’ 웃지 못할 사건을 소개했다. 주제는 생명과학 분야의 영국 BBC 방송뉴스였는데, 내용이 다소 충격적인 콘텐츠였다. 내용은 이렇다. 물개 사회는 한 수컷이 조직 내의 암컷을 모두 거느린다. 암컷을 ‘소유’하지 못한 수컷 물개는 황제펭귄을 강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콘텐츠를 올리자 조회수에서는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이후 경향신문 페이스북에는 조금이라도 자극적인 소재일 수 있는 기사는 최대한 올리지 않기로 했다. 일부 언론사에서 하듯이 ‘드립’을 치는 것도 하지 않는 방향을 잡았다. 경향신문 페이스북이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SNS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선에서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사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유념해야 할 지점은 여기에 있다. 숫자로 표현되는 성공에 매몰되다보니 트래픽이 많이 나와야 좋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최 차장은 “이제는 언론사도 일반 독자와 다르지 않은 ‘원 오브 뎀(One of them)’에 불과하다. 언론사는 좋은 시민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면 되는거다. 언론사에게 SNS는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는 장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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