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호들갑이 시작됐다. 3일 아침신문 1면만 보면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으로 한국은 적게는 42조원 많게는 53조원 규모의 이란 시장을 ‘뚫었’고 (국민일보) ‘코이란’ 경제가 열렸으며(동아일보) 나아가 제 2의 ‘중동 붐’(서울신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론의 이같은 보도는 정부 발표를 ‘받아 쓴’ 수준에 가깝다. 1면 머리기사만 해도 의문점 투성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 수주의 근거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MOU)라는 점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30개 프로젝트 중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6건이 고작이다.

경향신문은 “법조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가 간 조약이나 협정을 맺지 않고 MOU를 체결하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라며 “국가 간 합의한 내용을 강하게 이행할 의지가 있다면 MOU가 아닌 조약이나 협정을 맺는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 5월3일 경향, 국민, 동아 1면
MOU 수주 ‘가능’ 금액도 이상하다. 먼저 신문들이 보도하는 금액이 다르다. 조선일보와 한겨레 등은 42조라고 보도한 반면 서울신문은 53조라고 보도했다. 이 10조 차이는 일부 신문들이 청와대의 '오버'를 그대로 제목에 반영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청와대는 “한국이 30개 프로젝트에서 MOU 및 가계약 체결 등을 통해 확보한 수주 가능 금액은 371억 달러 규모다. 여기에 2단계 공사(80억 달러) 등 수주가 유력한 사업까지 합친 총액이 456억 달러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신문들은 42조 수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2단계’ 공사까지 계산한 청와대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해준 셈이다. 이에 대해 이완배 민중의소리 기자는 “고작 MOU 체결 단계에서 확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주 금액은 냉정히 말해 0원”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이미 ‘전과’가 있다. 지난해 국정조사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MOU 96건 중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 것은 16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해외투자유치 MOU역시 절반이 투자가 철회되거나 7년째 유보 상태였다. 

▲ 5월3일 서울, 세계, 조선 1면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달랐다면 좋을 일이지만 그렇지 않아 보인다. 뉴스타파의 지난해 5월14일 리포트를 보면, 당시 기준으로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으로 유치된 투자금액은 보잉사의 1320억원이 유일하다. 애초 보도된 3억8000만 달러(4320억 가량)의 절반도 안 된다.  

인도 순방의 성과 역시 부풀려진 것이다. 당시 언론에는 “쌍용차 최대 주주인 마힌드라 그룹 회장으로부터 1조원 규모의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확답을 들은 것도 대표적 성과로 꼽힌다”고 보도됐으나 이는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인수할 당시 했던 약속의 재탕에 불과했다. 

정부가 이런 문제가 모두 잘 풀려 53조 규모의 수주에 성공한다 해도 문제는 남아있다. 이란은 지난 37년간 경제 제재를 겪었으며 최근 유가까지 폭락해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고 있다. 이런 나라가 적게는 42조, 많게는 53조에 달하는 돈을 지불할 여력이 있을까? 

이완배 기자는 “때문에 이란은 공사를 한국에 맡기고 돈을 지불하는 방식 대신, 완성된 시설물 운영을 한국 기업에 맡기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규모의 돈이 없는 기업들은 이를 국책은행에서 빌릴 수밖에 없는데 이란에서 운영이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 2015년 5월14일 뉴스타파 보도. 사진=보도화면 캡쳐
언론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그랬을리 없다. 실제 동아일보는 3일 대통령 순방 성과를 강조하면서도 “재원 조달 등 구체적인 지원이 이어지지 않으면 이번 발표가 자칫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작게 보도했다. 

이어 동아일보는 “여기에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프로젝트 자금을 상당 부분 부담하기로 하면서 국내 구조조정 등으로 자금 부담이 큰 국책은행의 리스크가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도 보도했다. 조선일보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언론은 이같은 내용은 제대로 담지 않은 채 정부 성과 부풀리기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자원외교 당시 언론은 정부의 홍보를 그대로 받아쓰다 나중에 비리가 드러나자 입장을 싹 바꿔 비판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이번에도 그렇다면 너무 민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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