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한겨레 편집국장이 지난달 26일에 열린 주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초청 청와대 오찬의 뒷얘기를 털어놨다.

백 국장은 지난달 29일 한겨레 팟캐스트 ‘언니가 보고 있다’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현안에 대해 꼼꼼하고 자세하게 얘기했으나 핵심이 되는 사안에 대한 답변은 피했다”고 총평했다.

백 국장에 따르면, 당초 46개 언론사를 대표하는 국장들이 모일 예정이었으나 중앙 언론사 한 곳은 대참을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참했다. 45명이 참석한 것.

▲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오찬 회동을 했다. (사진=청와대)
참여정부 때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백 국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달변인데다 즉흥적인 발언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때는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며 “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느낌이었는데 기자들이 따라가기 바빴다. 반면 지금 대통령은 또박또박 말하는 편이라 기자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좋은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백 국장은 ‘사전에 질문을 조율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며 “다만 질문을 할지 말지를 (청와대 측에서) 스크린했다”고 답했다. 

청와대 오찬에서 나온 첫 번째 질문은 “총선 결과를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느냐”는 것이었다. “친박이라는 특정 정파의 관점에 매몰돼 지지층이 등을 돌린 것 아니냐”는 평가가 담긴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백 국장은 해당 질문을 던진 언론사가 ‘조선일보’라고 밝히면서 “이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이 ‘양당 심판’, ‘식물 국회 심판’이라는 식이어서 크게 걱정이 됐고, (그래서 내가 다시) ‘총선 결과를 정말 그렇게 받아들이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던졌다”고 말했다.

백 국장은 지난달 27일 한겨레 기사를 통해 “기자는 총선 이후 한겨레가 실시한 ‘표적집단 심층좌담’(FGD)에서 새누리당 지지층마저 등을 돌린 이유가 ‘연금, 세월호, 메르스, 국정교과서, 경제 등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으로 나온 결과를 소개하며 총선 민의를 되물었다”며 “그러자 대통령은 ‘이런저런 다양한 분석이 있다’고 두루뭉술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날 언론사 국장들과 대통령 오찬에서 입길에 오르내렸던 것은 박 대통령의 양 옆에 정지환 KBS 보도국장과 최기화 MBC 보도국장이 배석한 장면이었다.

백 국장은 한겨레 팟캐스트에서 “(청와대 측 설명에 따르면) KBS는 국가기간방송사이고 MBC는 청와대 기자단의 간사 언론사였기 때문에 옆에 앉힌 것”이라고 전했다.

▲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오찬 회동을 했다. 최기화 MBC 보도국장(왼쪽), 박 대통령, 정지환 KBS 보도국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백 국장은 “박 대통령이 개별 사안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전체와 부분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았고 사안의 우선순위가 어떤 것인지 판단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며 “그런 식의 답변은 오찬 내내 유지됐다”고 토로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국정교과서’에 대해 “현 (검정) 교과서의 정통성은 북한에 있기 때문에 (검정 교과서로 배우면) 북한을 위한 북한에 의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과거에 했던 말을 국장들을 모아놓고 다시 하니 경악스러웠다”고 비판했다.

백 국장은 이날 오찬이 끝난 뒤 청와대 인사에게 ‘현 상황에 대한 대통령 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고, 청와대 측은 “미래의 소통에 대해 새롭게 제시한 부분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고 한다.

청와대 측이 강조한 건 박 대통령이 “3당 대표와 만나는 것을 정례화하겠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실제 다음날인 27일 한겨레와 경향을 제외한 주요 종합 일간지 1면 머리기사는 ‘3당 대표와 회동 정례화’로 갈무리됐다. 소통 행보를 부각한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오찬 회동을 했다. (사진=청와대)
백 국장은 ‘대통령이 국회 탓을 하는 현상’에 대해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중·후반이 지나면 ‘국회가 도와주지 않아 일을 못하겠다’는 얘기를 했다”며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말에는 비슷한 얘기를 제법했다.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고 타협해야 하는데 대통령들의 통상적인 불만은 스스로 정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백 국장은 또 “(이날 오찬을 하면서) 대통령이 측은하고 안 됐다, 많이 힘들고 답답한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생각만 고집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조급한 거 아닌가 싶었다. 대통령이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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