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집에서 불과 10m 거리에 시속 120km의 기차가 하루 평균 160회 지나다닌다면, 그곳에서 정상적인 주거가 가능할까.

울산 주민 박종철씨(37)는 이를 두고 한국철도시설공단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동해남부선 부전-울산 구간 중 일부 구간의 복선전철화사업으로 박씨 집에서 9m 떨어진 거리에 신설 철로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박씨가 사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면 대안리는 동해남부선이 통과하는 마을이고 그중에서도 박씨의 집은 유난히 철로 쪽으로 삐져나와 있어서 철로와 가장 가깝다. 철로가 들어서면 박씨는 최소 시속 120km의 기차가 하루 평균 160회 지나다니는 것을 10m 옆에서 보고 겪게 된다. “정상적인 주거가 불가능하다” 박씨가 소송에 나선 이유다.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노모를 모시고 사는 박씨는 아버지가 남기고 간 집에서 더이상 지낼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런 박씨에게 남은 것은 안정적인 주거를 유지하기 위한 ‘제대로 된 보상’이다. 1년 반 동안 공단, 국민권익위 등에 이주대책안을 요구해 온 박씨는 결국 마지막 수단인 행정소송을 꺼내 들었다. 공익사업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개인이 국가기관을 상대로 승소한 적은 매우 드물다. 좋은 결과를 확신하기 힘든 상황에서 박씨는 “‘부당하다’ 말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소송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9m 옆으로 지나다니는 기차, 방음벽·방진망으로 충분한가

박씨는 집 바로 옆에 새 철로가 놓이게 된다는 사실을 2014년 6월 공단이 보낸 공문을 통해 처음 알았다. 철로의 위치는 집에서 불과 열 두어 발자국, 약 9.11m 떨어진 곳이었다. 박씨를 포함한 마을 주민들은 지금도 기존 철로를 지나는 화물차때문에 새벽 3시 반마다 깰 때가 잦았다. 박씨는 이대로 철로가 들어서면 정상적인 주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가능한 절차를 모두 이용해 이주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주 후에도 지금과 같은 주거환경을 영위할 수 있게끔 공단에 이주대책을 마련하라고 나선 것이다.

▲ 복선전철화 공사가 진행될 박종철씨 주택 뒷편 모습. 좌측에 있는 흰색 벽 주택이 박씨의 집이다. 사진=박종철씨 제공.

박씨는 공단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으나 공단은 “방음벽·방진망이 설치되므로 건물·토지 수용은 불가하다”고 응답했다. 박씨는 국민권익위원회를 두드렸다. 권익위는 공단에 건물만 매수하라고 의결했다. 이에 공단은 건물을 포함해 건물,  장독 등 지상물까지 수용하려했고 그결과 보상금은 5600여 만원이 나왔다. 14년 전 이사를 올 때만 1억2천여억 원이 들었다. 즉 보상금은 이주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수준이었고 박씨는 건물 소유권을 넘긴 채 ‘살지 못하는’ 땅의 토지만 소유하게 되는 형국이었다.

박씨는 권익위에 재질의를 했고, ‘협의 매수’되지 않은 토지 수용에 대한 행정처분을 내리는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의견서를 보냈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공단과 박씨의 협의는 지난 20일 ‘무산’으로 끝났고 공단의 건물 수용만이 남은 상황이다.

중토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박씨는 “이건 부당한 일이라고 말할 기회라도 가져보자는 생각에” 행정소송에 돌입했다. 송전탑반대밀양주민돕기법률지원단 활동 등 이미 공익사업을 추진하는 국가기관과 싸운 전적이 있는 배영근 변호사는 박씨에게 “이기기 어려운 소송”이라고 말했고, 박씨는 “3심까지 간다면 3년의 세월, 소송비용 1000만 원이 든다고 하는데, 이를 감당한다는 각오로” 소송을 결심했다. 한국철도시설공단를 상대로 제기한 보상금증액청구 소송은 현재 1심 공판을 진행 중이다.

“주거권을 빼앗았으면 똑같이 주거권 보장할 대책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니냐”

공단은 박씨가 공사 이전처럼 거주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토지와 건물 모두를 수용할 수 없고 권익위·중앙토지수용위원회가 결정한 대로 수용을 진행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공단은 소송 준비서면을 통해 토지가 ‘밭(전)’ 용도로 등록돼있기 때문에 박씨가 이전 목적대로 토지를 사용할 수 있으며, 공사 시 방음벽·비산먼지 저감시설이 설치되고 공사소음도 기준치 이내로 측정돼 피해가 적다고 밝혔다. 철로 완공 후엔 높이 3m의 영구방음벽도 설치할 예정인 점도 이유로 들었다.

▲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 중 월내~울산 구간 도면을 보면 박씨의 집(472-1)과 선로 사이 거리가 9.11m로 측정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공단이 공사 소음영향을 측정한 기준 주택(534-3)은 선로와 17.56m 차이난다.

공단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권익위와 중토위의 의결안이다. 공단 관계자는 29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권익위가 위원회를 열고 주무관이 직접 현장을 나와 확인하면서 의결한 것이고 중토위도 결국 동일한 판단을 했다”며 “박씨 측은 매번 충분한 자료를 제출하며 의견을 표명했다”고 강조했다. 권익위는 토지 목적이 ‘전’이고 매수해달라는 토지의 15%만 건설사업에 편입되므로 건물이 아닌 토지의 매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했다.

박씨는 공단 주장을 전면 반박한다. 토지 지목이 ‘전’으로 등록돼있든 아니든 박씨의 토지는 거주를 위한 땅이라는 것이다. 박씨 가족은 해당 땅 위에서 주택을 보수해 14여 년을 살아왔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공익사업법)은 토지를 ‘종래의 목적’대로 사용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할 때 토지소유자가 토지 수용을 청구할 수 있게 한다. 현저히 곤란하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이용 불가능한 상황뿐만 아니라 상당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들어 이용에 현저한 곤란을 겪는 경우도 포함한다. 박씨는 ‘집을 짓고 살아온 땅’에서 공사와 철도 운행으로 정상적인 주거를 할 수 없기에 공단에 토지 수용을 청구할 권리를 충분히 가진다는 입장이다.

공단은 소음·진동으로 인한 피해가 작다고 하지만 박씨의 생각은 다르다. 박씨는 피해 수준은 ‘각 토지에서 현재 소음은 얼마나 되고 공사 장비마다 소음이 어느 정도 발생하는지’, ‘신설 후 기차 운행 횟수와 운행 시 소음은 얼마나 되는지’, ‘방음벽의 소음 및 진동 감소효과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꼼꼼히 따져야 알 수 있는데 절차가 매우 미비했다고 지적한다. 공단은 방음벽의 효과를 입증하지 않았다. 박씨는 자체 조사를 통해 방음벽을 설치하더라도 기준치를 초과하는 68.9dB이 나올 것으로 예측했고 해당 자료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할 예정이다. 박씨가 시공사로부터 받은 도면을 보면 공사 중 사용할 선로인 임시선로와 박씨 집 간의 거리는 8.18m, 완공된 선로와의 거리는 9.11m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단이 환경영향평가를 위해 소음영향을 측정한 주택은 선로에서 19m 떨어진 곳이기도 했다.

공단이 강조하는 권익위 안에 대해 박씨는 ‘비원칙적’이라 비판했다. 권익위는 정상적인 주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음에도 토지만 보상에서 제외한 것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권익위는 박씨의 노후화된 집이 소음과 진동에 취약하고 공단이 선로에서 19m 떨어진 주택을 기준으로 공사 소음을 측정했으며 박씨가 거주하는 주택이 열차운행 시 소음.진동의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되는 점을 들면서 “주거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판단했다.

2013년 권익위는 철도 건설공사로 인한 소음·진동 피해가 크고 주택에 근접한 철도 교량이 항시적인 주거불안을 일으킴에 따라 제기된 토지·건물 매수 신청에서 “사업 시행자는 건설공사에 인접한 신청인들 소유의 토지와 그 지상의 주택을 매수할 것을 의견 표명한다”고 의결한 적이 있다. 당시 민원인의 주택과 철도와의 거리는 박씨의 사례보다 먼 13m였다.

▲ 철도부지 경계를 표시한 빨간말뚝과 철도노반 경계를 표시한 노란말뚝이 박씨의 집과 상당히 가깝게 꽂혀 있다. 노반은 철도 궤도를 건설하기 위한 토대를 뜻한다. 사진=박종철씨 제공

공익사업에 쫓겨났던 주민, 한둘 아냐… 그럼에도 공익사업법 안 바뀌고 있어

박씨는 공익사업때문에 ‘쫓겨나는’ 상황에서 이주민에 대한 완전한 보상은 국가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거권을 밥에 비유하며 “밥공기에 든 밥을 빼앗겼으면 도로 받아야 하는 건 밥이지 젓가락, 숟가락이 아니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그의 집만큼 철로와 가까운 집이 없어 박씨는 홀로 공단과 싸우고 있지만, 이 문제는 박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누군가가 겪어왔고 앞으로도 누군가가 겪을 문제기 때문이다. ‘헐값보상’이나 강제철거·이주로 인한 주거권 침해 문제는 도시개발, 터널공사, 국립대 이전 등 공익사업이 진행된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 문제다.

박씨는 근본적인 원인을 잘못된 공익사업법으로 본다. 보상 수준, 기준, 절차 등의 결정을 공익사업 시행사가 맡는 것부터 잘못됐고 법에든 시행령에든 구체적인 보상 지침이 마련돼있지 않아 시행사가 좌지우지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공익사업이라는 이유로 주민 개인의 문제제기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의사결정구조도 문제다. 공익사업에 따른 토지 수용이 결정되면 개인으로선 재산권, 주거권 등의 침해를 받더라도 해당 사업에 대한 거부 권한이 없다.

보상 절차에 하자가 없어도 속을 들여다보면 ‘헐값보상’일 때가 적지 않다. 오랫동안 관련한 소송을 맡아 본 배영근 변호사는 “(지역 사업의 경우) 보통 수용되는 주택은 시골에 있는 낡은 집, 주민이 오랫동안 살던 집이 많다”면서 “강제수용할 때 감정가격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상한다. 그 돈으로는 다른 데서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박씨의 보상금증액청구 소송 소장에서 위법적인 국가의 이주대책을 지적하기도 했다. 공익사업법은 이주가 필요한 가구 중 이주정착지로 이주를 희망하는 가구가 10호 미만일 경우, 즉 공익사업으로 인해 이주가 불가피한 가구가 소규모일 때 이주정착금만 지급하도록 한다. 정착금은 평가액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최소 600만 원, 최대 1200만 원으로 한정된다. 박씨도 이 상황에 해당된다. 배 변호사는 “헌법 제23조 3항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도록 한다”라며 “(해당 법 조항은) 아무런런 합리적인 이유 없이 헌법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캐나다, 철로와 집 최소간격 25~50m… 추가 피해 막으려면 한국 정부도 나서라”

박씨는 “이익을 노린 ‘알박기’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 반대편에 주거권,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사람에 대한 구제 장치는 더 필요하다”면서 “‘이 정도면 이런 이주대책을 세워라’ 정도의 명확한 보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씨의 문제가 덴마크나 캐나다에서 발생했다면 그는 지금처럼 오랜 싸움을 할 필요가 없었다. 덴마크는 1일 10대 이상의 열차가 통과하는 철도와 주택의 최소 거리를 50m, 그 외 열차에 대해선 25m로 규정하고 있다. 캐나다는 안전펜스가 설치되는 경계선과 건물 외벽까지의 거리를 최소 30m로 제한하고 있다.

박씨의 집은 지난 2011년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소유가 됐다. 그 전까지 아버지는 마당에 나무, 작물 등을 키우면서 노후를 보냈고 손녀를 위해 키위나무를 정성껏 가꾸기도 했다. 박씨의 어머니는 남편과의 기억이 어린 집을 추억하면서 우울증약을 먹을 정도로 지금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을 힘들어했다. 박씨에겐 이 문제가 재산권 침해 문제를 넘어서 사람의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개인으로서 국가기관과 싸우고 있는 그는 아무 힘도 빌릴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압박감도 느끼고 ‘나만 유난을 떠는 건가’ 자책을 하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끝까지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 말했다. 노모를 부양하며 생계도 꾸려가야 하므로 그는 주변에 옮길 집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주변 전셋값만 해도 1억을 웃돌아 5600만 원 보상금으로는 어림도 없는 집값이다. 노모를 위해 집을 장만한다 해도 대출 이자 부담 때문에 어디로 옮겨가야 할지 고민도 크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밥공기에 든 밥을 빼앗은 사람은 밥을 채워 넣어줘야 한다. 숟가락을 어떻게 쓰고, 젓가락을 어떻게 쓰라고 할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29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고 재판부의 객관적인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재판부에 입장과 근거자료들을 다 제출했고 재판부에서 공정하게 판단해 줄 것”이라면서 “(박씨 측은) 충분한 보상이 될 수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토지보상법 등 법이 허용하는 부분 선에서 보상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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