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국정원 해체, 박근혜 탄핵’을 내걸고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한 김수근(32)씨와 검‧경 앞 ‘개사료 퍼포먼스’로 유명한 ‘둥글이’ 박성수씨(43). 일면식도 없는 이들은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김씨는 “둥글이랑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아내가 몹시 좋아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후배님이라고 표현하긴 그렇지만 김 후보처럼 젊은 분들이 치고 올라와야 퍼포먼스 활동 영역이 넓어진다”고 강조했다.

언론자유지수가 70위까지 추락하고 대통령 비판을 ‘종북’이라며 척결 대상으로 삼는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국정원‧청와대, 검·경을 상대로 풍자 퍼포먼스를 보란 듯이 펼쳐왔다. 

김씨는 이번 총선에서 ‘국정원 해체, 박근혜 탄핵’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서울 서초을에 출마해 화제가 됐다. 선거 벽보로 자신의 얼굴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내걸었다. <관련기사 : 선거 벽보로 등장한 ‘박근혜 탄핵소추안’

▲ 김수근씨가 4·13총선에서 내건 선거 벽보.
김씨는 2742표(득표율 2.3%)를 얻었다. 그는 “이번 총선이 정권심판 선거라는 것과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 출마했던 것인데 2700여 표나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행동하는 서울지역 청년모임 새바람 대표로 사회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씨는 인터뷰가 진행된 날(27일)에도 ‘피켓 제작’ 걱정이었다. “비가 내리는 건 상관없는데 바람이 불면 피켓은 무용지물”이라는 것. 박씨는 지난해 4월28일 ‘검찰이 권력의 주구가 됐다’는 항의 표시로 대검찰청 앞에서 ‘멍멍’이라고 외치다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구속됐다.

1년을 맞아 28일 박씨는 서울 서초 대검찰청 앞에서 “7개월24일간 구속시킴으로 본인이 뉴욕타임즈(2016년 3월6일자)에 대서특필돼 유명해지는 데 일조했다”고 적힌 감사장을 수여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개사료 10포대와 교환할 수 있는 ‘개사료 교환권’도 증정했다.

앞서 박씨는 청와대의 어버이연합 집회 사주 의혹이 터지자 청와대 앞에서 “청와대가 사주한 관제데모, 공작정치! 한 달 묵힌 음식물쓰레기도 박근혜 정권처럼 역겹진 않다”는 피켓을 만들어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 둥글이 박성수씨는 청와대의 어버이연합 집회 사주 의혹이 터지자 청와대 앞에서 “청와대가 사주한 관제데모, 공작정치! 한 달 묵힌 음식물쓰레기도 박근혜 정권처럼 역겹진 않다”는 피켓 1인 시위를 펼쳐 주목받았다. (사진=둥글이 페이스북)
이들의 투쟁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미디어오늘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성수역 인근에서 박씨와 김씨를 만났다.

- 4‧13 총선 어떻게 지켜봤나? 김수근 후보는 누구를 찍었나? 

김수근(이하 김) : “서초가 아닌 용산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김수근’을 찍고 싶어도 찍을 수가 없었다.(웃음) 지지자에 대한 죄송한 마음 때문에 투표하고 인증사진도 못 올렸다. 서초구 내곡동에 국정원이 있기 때문에 서초에 출마했던 것이다. 강남이 새누리당 텃밭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유세기간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 ‘국정원 해체, 박근혜 탄핵’이 공약이었다.

김 : “이번 총선이 야권심판이 아니라 정권심판 선거라는 것과 세월호 진상규명이 시급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출마했던 것인데 2700여 표나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박성수(이하 박) : “나는 투표권이 박탈돼 투표도 못했다. 비리 혐의가 있던 인사가 군산시의원에 출마해 이에 저항하는 피켓 시위를 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이 부과됐고 노역을 했다. 그래도 선거가 여소야대로 끝나 지금보다는 덜 시달릴 것 같다. 제주‧군산‧대구 등 쌓인 송사가…. 그래도 반응하는 민심을 보니 대선 때까지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 둥글이 박성수씨는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폭력은 쓰지 않고 입으로만 조진다”라며 자신의 퍼포먼스 준칙을 밝혔다. (사진=김도연 기자)
- ‘어버이연합 게이트’가 터졌다. 1인 시위·퍼포먼스 전문가들로서 평가한다면?

박 : “예전에 어버이연합 사무실에 가서 피켓을 든 적이 있다. 할아버지들이 피켓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한 할아버지가 대충 자신들을 비난하는 것 같으니 ‘어디서 왔느냐’고 호통을 치셨다. 그래서 ‘애국 청년’이라고 대꾸했다.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더니 ‘애국은 우리가 하는 건데’라고 말씀하시더라.(일동 웃음) 국가가 노인 분들을 조종해 ‘방패막이’로 삼는다는 것이 정상적인 일인가? 현 정부는 정치 깡패 집단의 행태랑 다를 바가 없다.”

박씨는 28일 서울 종로 어버이연합 앞 인도에서 “2만 원짜리 노인알바 웬말이냐! 최저임금 보장!”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가 어버이연합 회원들에게 멱살을 잡히는 등 봉변을 당했다. 

박씨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땅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것을 인식하고 자기들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권리가 국민들에게 있음을 깨달을 때까지 어버이연합에 찾아가 규탄시위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박씨는 28일 서울 종로 어버이연합 앞 인도에서 “2만 원짜리 노인알바 웬말이냐! 최저임금 보장!”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돌입했다가 멱살을 잡히는 등 봉변을 당했다. (사진=미디어몽구 영상 캡처)
김 : “국정원이 개입된 2012년 부정선거와 관련해 이듬해 ‘국정원국민감시단’을 꾸린 적이 있다. 2013년 국정원 앞에서 2주간 노숙하며 집회를 연 적이 있는데 어버이들 300명이 어떻게 알았는지 훼방 놓으러 왔더라. 10일째 되던 날 우리도 300명 정도를 모아 촛불집회를 열었다. 어버이들은 그보다 더 많이 왔다. 확성기도 엄청 큰 거 쓰고 입은 어찌나 험하던지. 쌍욕하고. 국정원 앞에서 퍼포먼스할 때 성공 척도의 기준은 어버이들이 ‘오나 안 오나’였다. 그들이 나타나면 국정원이나 청와대가 움직인 거라고 생각했다.”

- 두 분이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흥미로웠다. 어떤 계기로 이런 활동에 입문하게 된 건가?

김 :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깜짝 놀란다. ‘너 말 못하는 줄 알았다’고 말한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했을 때 너무 수치스러웠다. 친일 매국노이자 독재자인 박정희의 딸 아닌가. 부정선거 규탄 싸움을 하던 중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여기서 이 정부를 끝장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지난 6‧4 지방선거 때는 ‘박근혜 퇴진’을 걸고 서울시의원으로 출마했다.”

박 : “나는 김 후보처럼 과격하거나 반국가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일동 웃음) 사랑으로부터 행해지는 활동일 뿐이다. 참된 복지세상을 만들고자 배낭 메고 유랑을 다니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거다. 환경운동 관점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검·경에 개사료를 뿌리더라도 다 주워간다. 사실은 새로 사려면 돈이 들기도 하고 또 청소는 의경들이 해야 하지 않나? 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세기의 명저 ‘둥글이의 유랑투쟁기’를 읽어보시길.(웃음)”

<관련기사 : “8개월 동안 이 갈았다, 폭력경찰 물러가라”>

▲ 지난 4·13 총선에 출마해 ‘국정원 해체, 박근혜 탄핵’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김수근 무소속 후보. 그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했을 때 너무 수치스러웠다”고 말했다. “친일 매국노이자 독재자인 박정희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사진=김도연 기자)
- 퍼포먼스를 할 때 스스로 생각하는 준칙이 있나?

박 : “폭력은 쓰지 않고 입으로만 조진다. 우리 같은 빈약한 사람들이 몸으로 해봤자 효과도 없고.(웃음) 발이 뜬 채 동동 끌려갈 뿐이지. 몸으로 싸우는 데는 비교우위가 없다. 적이 아닌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검경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면 경찰‧검찰 직원들이 박수를 치면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권력에 충성하는 행동을 하면 국민들에게 욕먹을 수 있다’는 걸 상기시키는 것이지 ‘야 X새끼들아. 다 죽어’ 이런 마인드는 아니라는 거다.”

김 : “상식은 지키되 우리가 넘을 수 있는 선은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정원이 세월호 실소유주라는 의혹에 대해 말하면 바로 음모론이라고 하지 않나? 선거 때도 그런 것들을 과감 없이 말하려고 했다. 언론도 박근혜 쪽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이런 의혹들은 이슈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구속이 될 때까지는,(웃음) 계속 과감하게 하려고 한다.”

-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것 같은데,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나?

김 : “지난주 아이가 태어났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1년여 스태프로 활동하다가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사진 작가였는데 세월호 때 그만두고 4‧16연대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둘 다 돈 벌 생각이 크진 않다. ‘안 벌고 안 쓰자’는 주의랄까. 저소득 신혼부부인 셈인데 결혼하니까 축의금을 받기도 했다.(웃음) 아직까지는 크게 문제될 건 없는 것 같다.”

박 : “배우자를 찾기 위해 불순하게 운동판에 뛰어든 분과 저를 엮지 말아주세요.(일동 웃음)”

김 : “왜 그러세요. 모태솔로로 33년을 살았어요.”

박 : “아가씨들과 데이트도 못해보고 외국영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로 위안을 얻곤 했는데.(일동 웃음) 나는 뭐 개털이다. 작년 압수수색을 당하고 구속되기 전까지 모 시민단체 사무실 한 쪽 구석에서 기생했다. 기생 생활이 끝났고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할 판이다. 예전에도 아예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덜 먹고 덜 쓰는 저소득의 삶을 살아왔다.(박씨의 저서 부제목은 ‘자발적 가난과 사회적 실천의 여정’이다) 막일을 할 때도 있고 조금씩 지원을 해주시는 분도 있다. 단체에서 들어오라고도 하는데 어디에 발을 들여놓으면 타성에 젖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살다갈 인생, 빌빌거리면서 살고 있다.”

▲ 지난 4·13 총선에서 서초을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김수근씨가 방송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화면)
- 기존 집회와 차별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워낙 퍼포먼스가 화려하기도 하지만.

박 : “이런 퍼포먼스를 하면서 느끼는 게 있다. ‘기존 시민운동은 타성에 젖어있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집회 때 발언 기회를 주지 않으면 연대를 거부하는 경우도 봤다. 그런 마인드로 조직을 운용하면 시민들이 참여하겠나? 조직에 묶여있는 활동만 하니까 사람들이 참여를 주저한다. 시민운동 진영의 내분도 심하다. 유랑을 다니는 것도 스스로 반성하는 차원에서 하는 거다. 저변을 넓힐 수 있는 활동들이 절실한 것 같다.”

김 : “공감한다. 우리 청년회도 회원이 100명 가까이 되는데 어떻게 하면 상시적 참여가 가능할지 고민하고 있다. 각자 집 앞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등 현안과 관련해 1인 시위를 하고 직장에 출근하는 방법들을 논의하고 있다. 일상에서의 투쟁이 중요하다.”

- 두 분의 공통점은 ‘박근혜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 아닌가?

박 : “무슨 소리인가. 이번 총선 승리는 각하 덕분이었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탈당은 절대 생각하지도 마시고 임기 끝날 때까지 지금처럼 삽질 열심히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우리 중에 누가 새누리당 표를 깎아먹을 수 있나. 오직 그분뿐이다.”

김 :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발언 하나로 탄핵될 뻔했다. 국회가 지난 3년 동안 탄핵안 한 번 고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득권이 얼마나 썩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우선 퇴진 운동 바람을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의 임기를 다 마치게 한다는 것은 수치라고 생각한다. 정상적으로 임기를 끝내는 걸 두고 볼 수 없다.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려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벌여놓은 일들을 바로잡고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박 : “김재규의 총에 맞지 않았어도 박정희 정권은 무너졌을 거다. 박정희의 죽음이 후광을 만들었다. 만약 박 대통령에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는 ‘박정희-박근혜’ 후광을 등에 업고 사익을 취하겠지. 보수표 다 깎아먹을 때까지 둥글이가 박 대통령을 지켜드리겠다고 말씀드리겠다.(일동 웃음)”

▲ 박성수씨와 김수근씨가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마치고 대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김도연 기자)
- 각자가 꿈꾸는 사회가 무엇인지 듣고 싶다. 아니면 활동 계획이라도.

김 : “분단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상식적인 나라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조중동을 욕하면서 그들이 보도하는 북한 얘기는 전부 믿는다. 평화통일만 꺼내도 ‘종북’으로 낙인찍는 세상이다. 박근혜-국정원,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면서 통일 문제도 청년들과 함께 고민하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폐지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노숙자가 없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웃음) 사회적 모순이 거리에 있다.”

박 :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서 예수 가르침을 듣고 6일 동안 전혀 실천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지 않나? 일상의 장에서 사람들이 용기낼 수 있도록,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싶다. 기본적으로는 배낭 메고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을 계속할 거다. 아이들에게 인간과 자연 사랑의 의미를 알려주는 차원이다. 전국 지자체 190여 곳을 다녔는데 나머지 지역까지 유랑하려면 몇 년 더 걸릴 것이다. 시민들이 함께 참여해주시면 고마울 것 같다. 1인 시위, 전단지 활동을 하고 싶은데 쑥스러워 못하겠으면 말씀해 달라. 언제든지 찾아가겠다.”

▲ 둥글이 박성수씨가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전단지. 박씨는 “아이들에게 인간과 자연 사랑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