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국민의당 당사는 기자들로 북적였다. 기대 이상으로 당이 커지자 매체들은 출입 기자를 한두 명씩 더 투입했다. 당사에는 자리가 없는 날이 많아졌다. 

정점은 1박2일로 열린 국민의당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이었다. 취재진만 108명이었다. 검찰 수사 중인 박준영 당선자를 제외하고 37명의 국회의원이 참석했으니, 기자의 수가 의원 수에 거의 3배가 되는 셈이었다.

▲ 국민의당 20대 총선 당선인 워크숍에서 합의 추대된 박지원 신임 원내대표와 이를 취재하는 취재진. 사진=포커스뉴스
위크숍 내내 수많은 취재진의 관심사는 박지원 의원이었다. 박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할 것이냐, 경선을 치룰 것인가에 취재가 과열됐다. 그 과열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밤 11시에 일정이 끝났지만 그 시간에 기자들이 박지원 의원의 방으로 찾아갈 정도였다.

자정. 7208호에 박지원 의원과 몇몇 기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과연 7208호에는 박지원 의원은 검은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기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회색 바지 안에는 초록색 체크무늬 파자마가 삐죽 나와 있었다. 기자들과 박지원 의원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원내대표는 맡으시는 방향으로 가는 건가요?”

“몰라. 내일 아침 돼야 알지. 의원들이 이야기는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하나.”

“원내대표 맡으시면, 파트너로 거론되는 김성식 의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해서 내가 걸려들 사람이야?”

“저번에는 그림 좋다고 하셨잖아요.”

“그림 좋다고만 이야기했지. 그게 뭐.”

새벽 1시가 지났지만 기자들 무리가 박지원 의원방의 초인종을 눌러댔다. 1시간가량 계속된 줄다리기 끝에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내심 내일 박지원 의원이 원내대표가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사소한 예의를 잘 지키지 못한 한 의원의 이야기가 나오자 박지원 의원은 “내가 원내대표가 되면, 그런 일들은 없도록 할 거니까”라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심증은 잡았지만 물증은 없던 기자들은 그 다음날 오전 집중토론 일정에 원내대표에 대한 취재를 계속했다. 백브리핑 내내 기자들은 원내대표 이야기를 물었고, 그때마다 대변인은 “여러분들이 기대하시는 그런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정보보고를 하며 “쓸 게 없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고 통화를 했다. 결국 폐회예정 시간 1시간이 넘어서 박지원 대표가 원내대표가 됐다는 결정이 나왔다.

▲ 27일 오전 국민의당 워크숍에서 백브리핑을 위해 기다리는 취재진들. 사진=정민경 기자
모든 기자가 예상한 일이었지만 공식적 논의와 확인이 너무 늦었다. 1박2일 동안 108인의 기자가 온통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누가되느냐’에 투입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기자들 탓이라기보다 워크숍의 내용에서 별다르게 건질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38개의 의석이 있는 당에 100명이 넘는 기자들이 투입될 정도로 국민의당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워크숍의 내용이나 브리핑이 기자들이 관심 가질만한 주제를 던져주지 못했기에 ‘원내대표가 누구일까’에만 취재가 과열된 것은 아니었을까.

워크숍 첫째날 강의 만해도 그렇다. ‘경제정당’을 어필하기 위한 수단인 걸로 보이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강의를 제외하고서는 영양가가 없었다. 특히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의 강의가 그랬다. 새누리당의 경우 워크숍에서 최장집 교수를 모셔 쓴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박상병 교수는 안철수 지지자로 이름이 난 사람이다. 강의 도중 스스로도 “국민의당에 우호적인 사람이라서 저를 부르셨는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의미 있는 섭외가 아니었다.

▲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가 26일 오후 경기도 양평 한화리조트에서 열린 국민의당 20대 총선 당선인 워크숍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렇다 할 기사거리가 없으니 기자들의 방에서는 시시콜콜한 정보보고가 돌기도 했다. 간식으로 제공된 튀겨진 소보로빵을 안철수 대표가 찾아다닌다는 둥, 박근혜 대표가 “3당 원내대표를 만나자고 했다”는 제안에 “우리만 따로 만나는 건가? 우리가 3당이잖아”라는 식의 안철수 대표식 ‘아재개그’가 정보보고로 돌았다.

워크숍 프로그램이 부실한 탓이다. 이번 워크숍 프로그램은 워크숍이 시작되는 26일 바로 전날에 확정됐다는 이야기가 알려졌다. 부실한 프로그램에 이의가 있었는지 그나마 워크숍 도중 프로그램 일정이 바뀌어 집중토론 시간이 생겼다. 프로그램이 바뀌기 전에 이 시간은 원래 이태규 전략홍보본부장의 발제시간으로 잡혀있었다. 만약 프로그램 일정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 워크숍에서 원내대표 추대가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국민의당은 워크숍에 100명이 넘는 기자가 붙을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이제는 그 위상에 맞게끔 매번 같은 내용의 추상적 다짐만 반복하지 말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안철수, 천정배, 정동영, 박지원, 주승용, 박주선 등 거물급 정치인이 대거 참여한 만큼 의원들 간의 끝장토론을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다양한 기사가 쏟아지지 않았을까. 거물급들이 1박2일의 시간을 내서 참여한 워크숍, 108명의 취재진이 몰린 워크숍이라는 것에 비해 ‘박지원 원내대표’ 기사만 쏟아진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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