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에 대한 떠들썩한 뉴스에 가려져 있지만,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사실상 기업들에 대한 봐주기로 기울어가고 있다.

기업 임직원 소환 등 아직 수사는 초기단계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살인죄 적용은 어렵다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옥시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지속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판매했다는 정황은 없다” “피해자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살인의 고의까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식의 발언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 이는 미필적 고의 혹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법리를 잘 모르는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한 언론플레이로 보인다.

이미 옥시를 비롯한 가습기 살균제 업체들이 인체 유해성을 인식하고도 제품을 판매했다는 증거들이 쏟아진 바 있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의 제조, 판매가 단순 과실이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에 해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적용이 어려울 경우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적용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게도 적용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는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 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 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 적용되기 때문이다.

▲ 사진=이치열 기자
따라서 “사람을 죽이기 위해 판매”했어야만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검찰 논리는 기업들에 대한 봐주기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피해자 가족들은 “하필 신현우를 소환하기 전날 검찰이 언론에 밝힌 ‘살인죄 불가’ 의견은 무엇이냐”며 “의도된 물타기”라고 검찰의 태도를 비난하고 있다.

검찰수사의 시점부터가 의혹의 대상이다.

이미 2011년 8월 31일 역학조사 발표로 가습기살균제가 참사의 원인임이 입증됐지만 검찰수사는 무려 4년여가 지난 지난해 10월에야 시작됐다. 이는 정부의 늑장 발표가 이뤄진 2014년 3월로부터도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공소시효 면에서 보자면 봐주기 수사로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검찰이 현재 언론에 흘리는 대로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할 경우 공소시효는 7년이기 때문에 2008년 이전의 사망자와 현재 가장 많은 피해자들이 몰려 있는 3차 조사 대상자(2019년에 결과가 통보 예정)들은 아예 공소제기조차 할 수 없다. 이렇게 될 경우 정부의 1,2차 조사에서 인정된 221명으로 기업의 책임이 축소되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공소시효에 밀려 이미 옥시 등과 합의를 한 상황이다.

검찰은 당초 옥시에 대한 수사 이후 순차적으로 다른 업체들로 수사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필요에 따라” 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그동안 옥시를 앞세우고 사태를 관망해 온 롯데, 홈플러스, 이마트 등 국내 기업들에 대한 솜방망이 수사와 처벌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애경의 경우 아예 수사 대상에서 배제돼 있다.

애경의 가습기메이트는 1997년부터 출시돼 가장 오래 사용된 제품이며 옥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피해자를 냈다. 정부의 1, 2차 조사에 접수된 사례 중 애경 제품 피해자는 사망자만 27명이며 피해자는 총 128명에 달한다. 정부와 시민단체에 접수된 3차 피해신고에 의하면 애경제품 피해자는 사망자가 39명, 피해자는 총 293명으로 늘어난다.

이마트의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PB상품)의 경우에도 애경이 제조,공급했다. 물론 이는 이마트가 개발권과 소유권을 갖는 독자 상품이기 때문에 이마트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공급사인 애경의 법적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마트 PB상품 피해자까지 합치면 두 제품의 사용 피해자는 380명(사망 54명)에 이른다.

그러나 애경은 현재 어떤 수사 대상에서도 빠져있다. 정부가 2011년 11월 동물실험에서 이 제품의 성분인 CMIT/MIT(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메칠소치라졸리논)과 폐섬유화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다. 피해자들 역시 정부 판정에서 ‘가능성 낮음’과 ‘가능성 거의없음’이라는 3,4등급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CMIT/MIT는 이미 90년대말 미국 환경보호국(EPA)을 비롯해 유럽연합 등에서 유해물질로 지정한 바 있으며, 보건복지부가 CMIT/MIT의 유해성을 부인한 반면 환경부는 이를 유독물질로 지정됐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최근엔 정부가 서울아산병원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은폐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환경부가 의뢰해 서울아산병원이 올해 1월 제출한 보고서엔 CMIT/MIT가 폐섬유화와 폐출혈 등을 일으킬 뿐 아니라 동맥경화와 면역계 이상 등을 불러온다고 돼 있다. 정부는 이 보고서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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