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이상이었다. 미디어오늘은 조선일보·중앙일보·매일경제·조선비즈가 최근 5년간(2011.3.1.~2016.2.29.) 주최 또는 후원했던 컨퍼런스 및 포럼을 무작정 찾아봤다. 컨퍼런스와 포럼이란 이름으로 신문사가 벌어들이는 협찬수입이 상당하다는 주장이 많아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4개 매체에서 확인한 컨퍼런스와 포럼 등 행사는 248건이었다. 매달 4건씩, 산술적으로 언론사 1곳당 매달 한번 꼴로 행사를 열고 협찬을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표본으로 조사한 4사 중 행사 수는 매일경제가 압도적이었다. 매일경제는 5년간 무려 132건의 컨퍼런스와 포럼을 주최 또는 후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젠가부터 협찬이 신문사의 대세 수익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협찬은 지면광고와 달리 신문사가 티 나지 않게 광고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다. 광고주 입장에서도 한 언론사에 광고를 하면 다른 언론사들이 광고를 요구하기 때문에 지면광고보다는 협찬을 선호한다. 

협찬은 크게 광고기사를 쓰고 받는 협찬과 컨퍼런스와 포럼 등 이벤트 홍보기사를 쓴 뒤 받는 협찬으로 나눌 수 있다. 협찬은 물품이나 정기구독 같은 방식으로 회계 처리하는 경우도 있어 정확한 협찬 규모는 내부 관계자 가운데서도 소수만 확인할 수 있다.

컨퍼런스와 포럼은 신문업계가 새로운 수익사업으로 찾아낸 영역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데이터 분석서비스 ‘빅카인즈’에 따르면 ‘컨퍼런스’로 검색되는 기사는 2015년 4342건을 기록했는데, 2007년부터 검색 건수가 급증해 2013년 한해만 5309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2006년만 해도 컨퍼런스가 포함된 기사는 892건에 불과했다.

‘포럼’으로 검색된 기사 역시 2007년부터 급증해 2008년 2만4534건을 기록했으며 지난해는 2만4406건으로 나왔다. 신문사가 자사 주최·후원 컨퍼런스·포럼을 기사로 소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각 신문사의 행사가 늘어나고 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는 유의미한 증가세다. 해당 분석 서비스는 빅카인즈에 디지털뉴스콘텐츠를 공급하는 33곳 신문기사가 기반으로 일간신문이 171곳, 인터넷신문이 2332곳(2015 한국언론연감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 뉴스수용자들이 접하는 포럼·컨퍼런스 홍보 기사는 수백 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행사는 경제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5개월 간 ‘포럼’에 대한 매체별 언급비중 분석 결과 파이낸셜뉴스, 헤럴드경제, 매일경제, 서울경제 순으로 나타났다는 점이 일례다. 조선일보의 경우 자회사 경제지인 조선비즈를 통해 각종 행사를 개최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광고주협회(KAA)가 2013년 200여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협찬 요청이 가장 많은 매체는 경제지라는 응답이 60.7%로 나타났다. 연간 15개 이상 행사를 협찬하고 있다는 응답이 42.5%로 가장 높았으며, 10~15개라는 응답이 30%로 뒤를 이었다. 회당 협찬 금액은 1000만~3000만원 내외가 50%, 500만~1000만원 내외가 27.1%로 나타났다. 신문은 후원 또는 주관 형태로 기획기사를 써주고 돈을 벌고 있다.

컨퍼런스·포럼은 늘어난 만큼 소재도 다양하다.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부동산 재테크 포럼’(2011년 10월 조선비즈), ‘한국 전기자동차 및 배터리 컨퍼런스’(2012년 4월 조선비즈), ‘100세 시대 시니어 경제포럼’(매일경제)부터 ‘주니어 글로벌 리더스 포럼’(2011년 8월 중앙일보), ‘지방병원 위기 극복 포럼’(2012년 9월 중앙일보) 등 분야는 예상보다 넓었다. 

주제는 유통·금융·에너지·헬스케어·창업·빅데이터·글로벌·북한·통일·중소기업·기술과 같은 키워드가 중심이었다. 대부분 협찬금을 대는 기업과 연관된 주제들이다. ‘한국형 이민 모델 정책포럼’(매일경제 2013년 7월)이나 ‘일본 대지진과 아시아 경제의 미래’(조선비즈 2011년 6월)처럼 주제는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다.

신문사 포럼은 점차 체계적으로 기획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삼성전자·두산·SK·현대제철·지식경제부 등에 소속된 전문가 16명이 참여하는 중앙일보 경제연구소를 2011년 3월 발족시킨 뒤 정기적으로 에너지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중앙일보 경제연구소는 하나금융연구소와 공동주최로 금융 포럼을 2개월 단위로 열기도 했다.

이처럼 언론사가 컨퍼런스·포럼을 많이 열 수 있는 건 ‘펜’의 힘 덕분이다. 이런 행사에 참가비를 지불하고 참석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언론사들은 출입처 시스템을 이용해 인원을 ‘동원’하고 속된 말로 협찬을 땡긴다.

경제지 A 기자는 “내 출입처에서 VIP로 얼마나 높은 사람이 오는지와 몇 명이나 오느냐가 중요하다”며 “행사 내용이 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A 기자는 “돈이 중요하고 얼마나 품격 있게 진행되느냐가 중요하고 인원 동원이 얼마나 많이 돼서 북적북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지 B 기자는 “기자들은 회사와 출입처의 창구 역할이다. 사소하게는 행사 당일 출입처 사람들 의전도 담당해야 하고 행사 기사도 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자들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자들이 쓰는 출입처 기사는 협찬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간부들에게 기자들의 존재는 기업이 협찬을 주지 않을 때 절실해진다. 경제지 부장급 C 기자는 “협찬을 안 하는 경우 기자들에게 속된 말로 조지라고 한다. 그러면 돈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협찬이 오면 추가 취재를 중단하거나 협찬 금액이 많을 경우에는 기자들과 협의하지 않고 기사를 날려버린다”고 말했다. 

이같은 반 저널리즘 관행은 종합일간지보다 경제지에서 더 심각한 수준이다. 이와 관련 2013년 4월 일진그룹의 홍보담당 상무는 사표를 제출하며 “사옥 이전 협찬금을 안 냈다고 악의적인 기사로 보복을 당했다”며 한 경제지를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C 기자는 차장급 이상부터는 협찬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부서가 있고 그 부서 부장을 중심으로 협찬을 유치하는데 이것이 부장의 성과나 업무평가 기준으로 연결된다는 설명이었다. B 기자 또한 “차장급으로 올라가면 협찬 부담이 상당해서 기사보다는 여기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2013년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MBN ‘경제부 협찬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MBN 경제부는 그해 MBN포럼으로 17억7000만원의 협찬금을 확보했다. 은행 등 금융권이 16억7000만원을 협찬했다. 금융투자협회나 주택금융공사 등에서도 수천만 원의 협찬금을 받았다. MBN 경제부는 보고서에서 “내년 금융기관의 경영환경도 어려운 것으로 전망되나, 다양한 캠페인과 행사를 통해 협찬 실적을 배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경제부나 산업부에서는 매년 협찬 목표를 명시하고 있었다. 산업부의 2014년 목표액은 50억 원이었다. 기자들이 벌어 와야 하는 금액이다. 업계에선 이 같은 상황이 비단 MBN만의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 같은 협찬 관행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란 사실이다. 언론사 입장에선 협찬 이외에 달리 수익을 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B 기자는 “(협찬 영업으로) 피로감이 상당하지만 이게 우리 월급이고 돈줄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고백했다. 지면이 없는 온라인매체의 경우 온라인광고 수익이 적기 때문에 상당한 수익원인 컨퍼런스나 포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한 온라인 경제지 관계자는 “수익의 90퍼센트 가까이가 협찬 형식으로 끌어들이는 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 대기업 홍보 담당 임원은 “광고 집행 금액 대비 협찬·후원 금액이 70%에 육박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구독료 수입이 줄고 지면광고 수입마저 감소세를 겪으며 대다수 신문사는 사업 다각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언론진흥재단 연구팀이 지난해 31개사 신문사 경영 담당자(전국지 12개, 지방지 19개)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전국지의 91.7%는 수익 다각화를 위해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방지의 경우 컨퍼런스 개최를 하고 있는 곳이 설문 대상의 47.4%였다. 2015년 신문 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2013년 사업수입은 138억5800여만 원이었으나 2014년 사업수입은 233억1400여만 원으로 증가했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사업수입을 늘리려는 추세다.

컨퍼런스와 포럼 같은 이벤트를 통한 신문사의 수익 다각화는 한국만의 상황이 아닌 세계적 추세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구독료와 광고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신문사가 이벤트를 새 수익사업으로 개발하는데 적극적이다. 여기서 이벤트는 정책 컨퍼런스, 토론회, 유명인사 연설, 상업 박람회, 각종 경연대회 등 다양하다.

2015년 10월 발행된 언론진흥재단 연구보고서 ‘신문사 다각 경영 혁신 전략 연구’에 따르면 언론의 이벤트는 언론의 인지도와 권위, 지면을 통해 이벤트를 홍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경쟁사인 일반 이벤트 회사보다 유리하다. 이벤트는 정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기도 한다. 미국 텍사스트리뷴의 발행인 에반 스미스는 “이벤트도 저널리즘”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벤트 사업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언론진흥재단 연구보고서는 “신문사의 이벤트가 성공하려면 네이티브 광고와 마찬가지로 협찬사와의 관계를 투명하게 해야 하고, 기사와 이벤트와의 상호 분리, 즉 신문사의 이벤트 개최가 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컨퍼런스 사업은 연 2000만 달러 규모로, 2015년의 경우 9번의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2012년 딜북(DealBook) 컨퍼런스는 미국 대기업 인수합병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였는데 입장권은 1500달러였다. 당시 JP모건, 골드만삭스, 구글 등 대기업의 협찬을 받았다. 주제나 협찬 대상이 한국과 유사하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이벤트 사업이 신문의 신뢰도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컨퍼런스의 모든 금전 거래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속칭 ‘아사리판’이다. 한국은 이벤트가 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는 상황이다. 일례가 있다. 한국경제는 2015년 3월19일자 사설 ‘어느 언론사의 걱정스런 영업 관행’에서 “보도와 기사를 광고나 협찬의 도구로 삼거나 카메라 렌즈를 영업수단으로 동원한다면 이는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며 매일경제를 직접 비판하고 나섰다. 그해 6월 추진 중이던 한국경제 골프대회에서 비씨카드가 5억 원 가량의 후원 협찬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자 매일경제가 비씨카드에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흘러나오던 시기였다.

신문광고 시장이 더 이상 성장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업계는 점차 협찬에 집착하고 있다. 포럼과 컨퍼런스는 2013년 정점을 찍은 뒤 사별로 소폭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선비즈는 2013년 14건에서 2014년 7건으로, 매일경제는 2013년 31건에서 2014년 24건으로 줄었다. 수많은 매체가 이벤트 협찬 시장에 뛰어든 결과로 보인다. 광고주를 대변하는 반론보도닷컴 2013년 기사에 따르면 한 광고주는 “지난 6월 한 달간 들어온 협찬 요청이 스무 건이 넘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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