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 오찬에서 46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 만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어버이연합 게이트’로 위기에 봉착한 박 대통령이 국면을 전환하는 데 방송‧신문만큼 좋은 수단은 없다.

자신의 발언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고 흔들리는 국정 장악력을 회복하는 것. 청와대로 쏟아지는 비판 여론을 불식시키고 “사실이 아니”라는 말 한마디로 의혹을 불식시켜줄 수 있는 수단. 언론만큼 빠르고 좋은 것은 없다.

이런 관점에서 27일자 조간을 보면 청와대 오찬은 최소 목적은 달성했다. 경향‧한겨레를 제외하면, 종합일간지들은 박 대통령이 “3당 대표와 회동을 정례화하겠다”는 발언을 인용 보도하며 ‘소통 행보’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앞서 26일 KBS‧MBC 등 주요 방송 언론이 그랬듯 말이다.

▲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청와대에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오찬 회동을 했다. (사진=청와대)
아래는 27일자 주요 종합일간지 머리기사 제목 모음.

경향신문 :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대통령
국민일보 : 朴 “3당 대표와 만남 정례화”
동아일보 : “3당 대표와 회동 정례화… 개각 생각안해”
서울신문 : 朴대통령 “3당 대표와 회동 정례화 검토”
세계일보 : “3당 대표와 회동 정례화 검토”
조선일보 : “3黨 대표와 회동 정례화… 개각은 없다”
중앙일보 : “이란 다녀온 뒤 3당 대표 회동… 정례화도 검토”
한겨레 : “총선 결과는 국회심판” 대통령만 모르는 민심
한국일보 : 朴 “소통하겠다… 3당 대표와 만날 것”

‘유체이탈’ 화법, 번역하는 언론

1면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전날 오찬 회동을 전하는 27일자 신문들은 주로 박 대통령 인용 보도로 지면 앞부분을 채웠다. 

미디어오늘이 공개한 회동 전문을 보면 알 수 있듯, 주술 관계가 딱 떨어지는 발언을 찾기 어려웠다는 사실은 언론사들의 노고를 추측케 한다.

<관련기사 : 청와대 언론사 국장 간담회 발언 전문을 공개합니다>

각 언론사가 소제목을 어떻게 뽑았는지 주목해봤다. 이날 나온 발언의 주제가 함축적으로 보이며 무엇이 이슈인지 가늠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이 본 총선 △유승민에 불편한 심경 표출 △야당 반응 △경제 인식, 야당과 평행선 △김영란법 우려 △내수 살리기 △기타 현안 등으로 발언을 쪼갰다.  

동아일보의 경우 박 대통령 발언을 △경제 살리기 해법 △북핵-위안부 문제 △내수 활성화 대책 △4‧13 총선 이후 국정운영 등으로 나눴다.

중앙일보는 △총선평가‧계파갈등 등 현안 발언 △부정청탁금지법‧노동법 △140분 간담회 이모저모 △박 대통령이 힘 실은 양적완화 △5차 핵실험 움직임에 경고 △대통령 간담회, 정치권 안팎 평가 △대통령, 유승민 관련 언급 등으로 분석했다.

▲ 조선일보 27일자 1면.
한겨레는 △국정화‧노동개편 추진 재확인 △야당과 협치 방안 △여당 공천파동 책임 외면 △불씨 살아난 ‘한국판 양적완화’ △북핵‧위안부‧개성공단 관련 발언 △간담회 이모저모 등이었다. 

다음은 각 언론사별 머리기사 제목로 본 박 대통령의 발언 모음이다.

“대통령 할 수 있는 일 없어… 임기 마치면 한 남을 것” 또 국회탓
“靑 참모 개편‧개각… 그럴 여유 없다”
“지금과 같은 교과서로 배우면 북한에 의해 통일될 수밖에”
“한국판 양적완화 긍정 검토”… 증세엔 “마지막 수단돼야”
“법인세 올리면 기업들 도망간다”
“김영란法, 이대로 되면 경제위축… 국회서 재검토 필요”
“공직자들, 국내서 골프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
“되는 게 없는 양당체제 개혁하라고 국민이 3당체제 만들어”
“자기 정치한다며 대통령 힘들게 하고…”
“카카오 등이 대기업 규제 묶여선 안돼”
“파견법 일석사조… 구조조정 실업자에 빠른 일자리”
“세월호특조위 활동 보장, 돈 들어가니 국회가 판단을”
“내가 친박 만든 적 없다”

▲ 조선일보 27일자 4면.
현장 분위기? 추가 질문에 ‘두루뭉술’

이날 오찬 회동에 참석한 백기철 한겨레 편집국장은 기자수첩을 통해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백 편집국장은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편집·보도국장단의 오찬 분위기는 대체로 무거웠다”며 “공감과 접점이 이뤄졌다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미흡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아직 소통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백 국장은 “총선에서 여당이 패한 것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박 대통령이 “식물국회로 일관한 양당 체제에 대한 심판”이란 답변을 했다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여전히 ‘남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백 국장은 “기자는 총선 이후 한겨레가 실시한 ‘표적집단 심층좌담’(FGD)에서 새누리당 지지층마저 등을 돌린 이유가 ‘연금, 세월호, 메르스, 국정교과서, 경제 등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으로 나온 결과를 소개하며 총선 민의를 되물었다”며 “그러자 대통령은 ‘이런저런 다양한 분석이 있다’고 두루뭉술 넘어갔다”고 밝혔다.

백 국장은 또 “총선 패배 뒤끝이어서인지 대통령에게서 여유를 찾기 어려웠다”며 “모든 사안을 꼼꼼히 설명하지만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조급함, 강박관념 같은 게 엿보였다”고 평가했다.

▲ 한겨레 27일자 2면.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돼서 한번 해보려는 것을 이렇게 못할 수가 있느냐”고 말한 것에 대해 백 국장은 “대통령이 야당과 접점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고정관념에 갇혀 평정심을 잃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상황의 유동성을 염두에 두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 나가려는 여유를 느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백 국장은 “안타깝지만 ‘레임덕 대통령’ ‘여소야대 대통령’에겐 이런 희망조차 사치스러워 보인다”며 “자신이 밟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산을 타는 것조차 위태로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설들의 평가는?

종합일간지 사설들의 평가도 냉랭하다. 앞선 지면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을 고스란히 전했던 보수 신문들도 사설에서는 박 대통령에 대한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조선일보는 “이번 총선 결과는 대통령 및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의 오만과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에 대한 심판”이라며 “임기 중 총선에서 집권당이 참패했다면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최소한의 책임을 인정하는 인사치레의 말이라도 하는 게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은 “하지만 박 대통령은 어떤 사과나 반성도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총선 참패에도 대통령의 생각에 별다른 변화가 감지되지 않은 것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총선 참패와 관련해 대통령이 ‘국정과 공천 파동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라는 지적을 겸허히 인정하지 않은 것은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이어 “경제 살리기, 국정 교과서, 대북 문제 등 경제 안보 사회 분야의 국정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며 “증세와 법인세 인상에 대한 거부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안이한 태도로 민심 이반의 난국을 타개할지 걱정스럽다”고 비판했다.

▲ 동아일보 27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시민은 또다시 배반당했다”며 “대통령은 소통의 장으로 마련한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만 했을 뿐, 시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자신이 4월13일 이후 달라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공개적으로 선포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 역시 “절망적인 건, 박 대통령이 ‘총선 민의’를 완전히 아전인수로 해석하며 남은 2년을 ‘마이웨이’ 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이라며 “국정을 책임진 정치인이 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이렇게 외면할 수 있는 건지, 참담한 기분마저 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왜 허 행정관 조사 안하나?

시사저널이 제기한 청와대의 어버이연합 집회 지시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민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이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세계일보가 단독 보도했다.

어버이연합에 집회 지시를 했다고 지목된 허현준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 대해 청와대가 정식 조사를 벌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26일 언론사 국장 간담회에서는 이와 관련 "아니라는 확실한 보고를 받았다"고만 말했다.

▲ 세계일보 27일자 12면.
정부 관계자는 세계일보에 “청와대가 허 행정관을 감찰하는 등 정식 조사를 벌인 사실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허 행정관이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과 문자를 주고받은 행위는) 직무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한 것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국민소통비서관실이 시민단체와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직무범위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세계일보에 “청와대 내에 허 행정관을 조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전혀 없다”며 “개인의 일탈이라면 감찰감인 데다 이 정도 파문이면 조사를 벌여 논란을 차단해야 하는데 허 행정관을 문책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전경련이 벧엘복음선교복지재단 계좌를 통해 어버이연합을 우회 지원한 것과 관련해 사건을 형사1부(부장검사 심우정)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전경련의 우회 지원이 금융실명제법 위반, 조세포탈, 업무상 배임 등에 해당한다며 경제정의실천연합이 수사 의뢰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2030정치공동체 청년하다’ 등 청년 단체는 집회 지시 의혹과 관련해 허 행정관을 고발했는데, 검찰은 이 역시 수사할 예정이다.

▲ 한국일보 27일자 12면.
한편, 허 행정관 측 변호사는 26일 시사저널을 상대로 열린 출판금지 가처분신청 심문기일에서 “통상적인 업무 수행을 한 적은 있으나 (어버이연합에) 문자 메시지로 집회를 열라고 지시한 사실은 없다. 업무 연장선에서 협의를 했다, 의논을 했다와 지시를 했다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어버이연합과 허 행정관의 업무 협의는 인정한 셈이다.

주목받는 ‘박원순 제압문건’

지난 2013년 5월 공개된 ‘박원순 제압 문건’이 주목받고 있다. 국정원이 전경련과 어버이연합을 통해 여론전을 기획한 정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한겨레가 입수해 공개했던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 방향’(박원순 제압 문건)에는 “경총·전경련 등 경제단체를 통한 비난 여론 조성”, “자유청년연합·어버이연합 등 범보수진영 대상 박 시장의 시정을 규탄하는 집회·항의방문 및 성명전 등에 적극 나서도록 독려”, “저명 교수·논객, 언론 사설·칼럼 동원”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으로 박 시장을 압박하는 실행 방안들이었다.

▲ 한겨레 27일자 9면.
이 무렵 어버이연합 등 극우·보수 성향의 단체들은 박원순 시장 비방·규탄 등 관제 데모를 했는데, 최근 JTBC 등을 통해 관제 데모가 이뤄졌던 2012년 2월부터 2014년 말까지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의 차명계좌에 5억2300만 원을 입금한 것이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한겨레는 “전경련이 돈을 입금한 시기와 맞물려 어버이연합은 박 시장의 아들 박주신씨의 병역 의혹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박 시장이 재선에 나선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서울시청 앞에서 ‘친환경급식 농약 검출’ 규탄 시위를 1주일 동안 5차례나 벌였다”고 밝혔다.

검찰은 “국정원 문건으로 보기 힘들다”며 수사를 종결했지만 최근 ‘어버이연합 게이트’가 터지면서 재수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박원순 제압 문건’ 전면 재수사가 필요해보인다”며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가기 위한 보수단체의 활동 지원 의혹은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으로 그 권한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허현준의 ‘시대정신’에 4년간 2억 보조금

박근혜 정부가 어버이연합 관계자와 집회에 대해 논의한 허 행정관이 과거 활동했던 ‘시대정신’에 2억 원가량의 국고보조금을 지원했다고 경향신문은 밝혔다. 

어버이연합과 행보를 같이 한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도 수십 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이 26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인 2013년부터 행정자치부의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지원 내역을 분석한 결과, 정부는 시대정신에 1억9268만원을 지원했다.

시대정신은 전향 주체사상파 운동권들이 만드는 뉴라이트 계간지로서 허 행정관은 시대정신 사무국장을 지냈다.

▲ 경향신문 27일자 10면.
경향신문은 “행자부는 또 현 정부 출범 후 3년간 극우·보수 성향의 단체들에 총 38억7668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극우·보수단체에 지원한 보조금은 2013년 13억6700만원(9.4%), 2014년 11억6868만원(8.8%)에 불과했지만 2015년엔 13억4100만원(14.9%)으로 늘어났고 지원받은 단체도 역시 2013년 27개, 2014년 28개, 2015년 31개로 증가했다.

대표적 단체로 애국단체총협의회, 선진화시민행동, 한국통일진흥원, 블루유니온, 포럼동서남북 등이다.

 본 신문은 4월27일자 "청와대가 허현준 행정관 조사 못하는 사정은?" 제목의 기사에서 어버이연합과 행보를 같이 한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도 수십억원의 보조금을 지원 받았다며 대표적 단체로 블루유니온 등이 있다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블루유니온은 비영리 시민 안보단체로서 정부와는 관련이 없고 '나라사랑·안보사랑 서비스'는 청소년(학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 프로그램이며 어버이연합과 보조를 맞췄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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