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 극우 단체 대한민국어버이연합(어버이연합)을 우회 지원한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전경련 회원사들이 주주인 한국경제신문 지면에는 지난 12일부터 26일까지 관련 기사가 단 한 건도 없다.

‘어버이연합’이라는 단어가 한 차례 사용되긴 하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발언을 나열할 때 언급되는 정도였다. ‘어버이연합 게이트’가 어떤 내용인지 이 신문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주요 언론이 어버이연합에 주목한 시점은 지난 12일이다.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반대 집회에 탈북자를 ‘일당 알바’로 동원한 의혹이 담긴 회계 장부를 시사저널이 전날 공개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내일신문 등은 이날 보도를 시작했다. 중앙일보는 다음 날인 13일 “어버이연합, 집회 온 탈북자에게 2518만원 ‘교통비’”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다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20일. JTBC가 19일 전경련이 어버이연합 차명계좌에 거액을 입금한 사실을 폭로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계좌에 전경련이 1억2000만 원을 입금했다는 사실은 ‘어버이연합 게이트’로 확산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경제지들도 보도를 시작했다. 헤럴드경제는 20일 “어버이연합이 전경련으로부터 억대의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고, 아시아경제는 21일 “탈북자를 동원한 단순 ‘알바 집회’ 의혹에서 시작된 파문이 전경련 등의 자금 지원 논란에 이어 청와대의 배후 조종설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매일경제 22일자 33면 박스 기사. 매일경제 역시 어버이연합과 관련해 소극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21일까지 양대 경제지인 매일경제와 한국경제, 그리고 서울경제 지면에서는 관련 소식을 찾을 수 없다.

매일경제는 22일자 33면에서 “‘전경련, 어버이연합에 뒷돈 의혹’ 검찰 수사 의뢰”라는 제하의 작은 박스 기사로 관련 내용을 전했다. 

반면 아시아경제, 아주경제 등 타 경제지들은 이날 어버이연합 기사들을 섹션의 톱뉴스 등으로 주요하게 다뤘다.

▲ 한국경제 23일자 8면. 한국경제 지면에서 어버이연합이 언급된 것은 12일부터 23일까지 이 문장이 전부다.
한국경제 지면에서 ‘어버이연합’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지난 23일이었다. “김종인 ‘경제특별위원회 구성’ 안철수 ‘경제대화’ 5대 의제 제시”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 발언을 소개할 때 한 번(“김 대표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어버이연합에 자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언급된다.

서울경제도 “특정 경제세력들이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에 대해 놀랍다”고 한 김 대표의 발언을 인용해 전경련의 어버이연합 지원 소식을 보도했다. 

서울경제는 “특정세력이 나라에 영향 미치려는 시도 놀라워”라고 제목을 뽑으며 전경련 비판에 초점을 맞췄는데, 한국경제의 제목과는 대비된다.

헤럴드경제는 25일 지면에서 “건물주는 ‘방 빼라’ 사무총장은 잠적… 어버이연합 진퇴양난”이라는 기사를 통해 각종 의혹으로 자중지란에 빠진 어버이연합을 추가 보도했지만 한국경제는 26일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

▲ 아시아경제(위)와 아주경제(아래)의 22일자 보도.
한국경제가 이번 사안을 외면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전경련 회원사들이 한국경제의 주주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 최대주주는 현대자동차로 지분의 20.55%를 소유하고 있다. ㈜LG가 14.03%, SK텔레콤이 13.8%, 제일모직 5.97% 등 전경련 회원사들이 주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을 포함해 190여개 기업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유근석 한국경제 편집국장은 2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어버이연합과 관련해 아직까지 확실히 드러난 것이 없다”며 “의혹 제기 단계라 중립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검찰 수사나 청와대 조사 결과가 나오면 보도를 하겠지만 지금은 서로 주장이 엇갈린 상태”라며 “전경련 해명도 아직 일방의 주장이니 보도할 필요가 없다고 지침을 내렸다”고 말했다.

유 국장은 “전경련 때문에 지면 보도가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전경련 회원사가 한국경제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전경련과는 무관하다”며 “신문의 편집과 지배구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의 한 기자는 “전경련을 비호한다기보다 원래 청와대 비판 기사는 안 썼으니까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라며 “세월호 때도 (청와대) 비판 기사는 잘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 한국경제신문의 소유 지배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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