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갔지만, 목표달성에는 실패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정치가 문제라면 정치의 길로 가겠다. 들판을 가로질러 호랑이굴로 가겠다”라 말하며 20대 총선 출마를 밝힌 바 있다. 그가 택한 곳은 경북 경주였다. 경주는 ‘용산참사 진압책임자’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지역이었다. 용산참사 당시 철거민들을 변호했던 권 변호사는 김 전 서울경찰청장의 대척점에 서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지난 2월24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김석기 새누리당 예비후보를 잡겠다’라 말했다.

권 변호사가 두 달 동안 경주 곳곳을 다니며 얻은 득표율은 15.9%, 2만253표였다. 44.97%를 얻은 김석기 당선자의 득표율에 한참 뒤진 기록이지만 ‘유의미한 선전’, ‘아름다운 낙선’ 등 일각에서는 경북지역에서 진보정치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제기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1일 낙선인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권영국 변호사를 서울 구로구 해우 법률사무소에서 만났다.

▲ 권영국 변호사. 사진=손가영 기자

“용산참사 진압책임자가 의원 되는데 보고만 있어선 되겠나”

“5%는 넘겠나?” 그가 경주에 내려간 지 20여 일이 지났을 때 내부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5.9%가 나와 제기된 우려다. ‘TK 권역’ 경주는 새누리당 지지율이 85%가 나올 정도로 새누리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권 변호사는 지난 20년 넘게 새누리당(한나라당) 의원을 배출하고 있는 경주에 ‘노동변호사’라는 이름을 걸고 출마했다. 그가 가진 연고는 청년시절 경주 안강에 있는 풍산금속에서 기술직으로 근무하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가 구속되고 해고된 점과 아버지 고향이 인근 지역 포항이라는 점밖에 없었다.

그가 경주행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김석기 당선자의 출마였다. “김석기 후보가 경주에서 1등을 달리고 있다더라. 이걸 그냥 두면 되냐, 그냥 있을 순 없지 않느냐.” 지난 2월 ‘시민혁명당’ 창당을 준비하며 서울권역 출마를 고민하던 권 변호사에게 그의 자서전을 출판한 출판사 관계자가 경주 출마를 제안한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바로 경주로 내려간 권 변호사는 경주 지역사회가 매우 고민스러워하는 것을 봤다. 지역 후보를 못 내고 있던 상황에서 ‘용산참사 책임자에 대한 아무런 대응을 못 하고 있는 것’에 자괴감을 갖고 있던 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2~3일 고민 뒤, 바로 출마를 결정하고 경주로 갔다.

그는 ‘그나마 자신있었던’ 유세에 가장 힘을 썼고 경주지역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진보 지역정치인 등의 도움으로 경주 시민들을 만나며 지역에 파고들려고 노력했다. “뭐하러 왔노” “(새누리당) 공천은 받았나” 권 변호사는 처음엔 경계심과 의심의 눈초리를 그대로 보내던 경주시민들이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김석기 잡으러 왔다매”라 말하고 끝냈던 ‘읍면 어르신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김석기 잡으러 똑똑한 변호사가 왔다매”라 말하며 그를 한두 번 더 쳐다보기도 했다.

“경주 곧 바뀔 것… 험지를 바꾸려면 직접 갈 수밖에”

그럼에도 굳이 ‘험지’를 찾아간 이유를 묻는 말에 그는 “변호사를 하면서도 좀 더 쉬운 길인지 아닌지를 별로 가리지 않았다. 어렵든 쉽든 꼭 해야 하는 일에는 부딪혔고 결과는 노력의 끝으로 맡겼다”면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하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지 아닌지 검증을 해야 하는데 험하고 어렵다고 피하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도전은 지역 정서, 여러 가지 취약점, 특성 등을 확인한 매우 중요한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 무소속으로 20대 총선에 출마한 권영국 후보의 선거포스터.

권 변호사는 애초 출마 취지인 ‘김석기 후보 당선 저지’를 달성하지 못했고 자신도 당선되지 못했지만 16% 가까운 득표율을 소중한 성과라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진보 후보가 얻은 최대 득표율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야권연대로 이광춘 통합진보당 후보가 얻은 13.78%이다. 그는 이 표심을 ‘경주의 변화를 바라는 숨어있는 목소리’라고 봤다. 권 변호사는 각 분야의 진보정책을 공약하며 ‘바꾸자 경주, 사람을 살리는 정치’라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물이 고이면 썩는다. 고여있는 정치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경주는 계속 낙후될 수밖에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집중적으로 유세했다. 그는 “경주는 새누리당이 일당독재를 하다시피 했다. 지역 침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꽤 많이 나타나 있었다”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숨어있는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그것이 16%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16% 외의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 것은 한계였다. 권 변호사는 “우리는 ‘보수지역이니까’ ‘노인분들이 많으니’라고 이유를 대지만, 사실은 우리의 시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면서 “나이 든 분을 설득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게 결국 우리 사회를 바꾸는 힘이란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비록 실패했더라도 다음을 위한 중요한 경험을 했다는 지적이다.

2020년 21대 총선 경주에서 재도전한다

주변의 지지자들은 예상외의 득표를 거둔 데 대해 희망과 가능성을 말하며 권 변호사에게 ‘이후 대비’를 권유했다. 권 변호사의 답은 ‘예스’다. 그는 “(만들어진) 불씨를 열매로 맺어야 한다. 그런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경주에서 정치 생활을 시작한 거고 그러면 정치인생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이 지역을 기반으로 가야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권 변호사에게 남은 불씨는 크게 두 가지다. 대한민국 정치가 바뀌려면 대구·경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과 시민사회·노동의 정치를 되살리는 밑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경주를 바꿔야 한다는 말에 사람들이 굉장히 공감했다. 경북이 험지이긴 하지만 되려 ‘급소’일 수 있다”면서 “경북이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말이 신념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확인한 경북 지역 진보정치는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는 ‘민주진영’조차 의미 있는 세력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시민사회나 노동운동 진영도 침체돼 있었고 서로 간 반목이 있기도 했다. 

권 변호사는 교육, 여성, 농업, 환경 등 의제와 관련해 간담회를 가지며 관련 시민단체와 교류하며 노동현장을 방문하면서 ‘패배로 인한 부정적 인식을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바꿔낼까’를 고민했고 “갈라진 시민사회를 묶어내고 지리멸렬한 진보정치 상황을 다시 일으키는 불씨가 될 것을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선거가 그 실마리가 됐을 거라 지적했다. 그의 선거운동으로 말미암아 평소에는 만나지 않던 다양한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 모였고 ‘열심히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협력과 화합의 가능성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 권영국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경주역 앞에서 선거유세를 하는 모습. 사진=권영국 후보 선거운동본부

더불어민주당 ‘을’ 대변하는 정치 조직 아냐… 진보정치 일구는 데 함께 할 것

권 변호사는 당분간 쉬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 말했다. “가족을 방치하는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라 말한 그는 “그동안 가족에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한 부분이 가족들에겐 아픔으로 남아 있다. 당분간 가족들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 1~2년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시간은 앞으로의 행보와 관련해 가족으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끌어내는데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권 변호사는 이후 행보에 있어서 더불어민주당과는 거리를 뒀다. 그는 “노동자·서민이 주인이 되는 그런 사회를 얘기하는데, 더불어민주당 구성을 봤을 때 우리 다수인 ‘을’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조직은 아니라고 본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현실을 적절히 반영해야 하는데, (그것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것을 향해 정말 같이 갈 수 있는 건지 기본적인 판단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 준비하던 ‘시민혁명당’ 창당은 무산됐으나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진보정치를 구현하는 움직임엔 동참할 것이라 지적했다.

‘정치인 권영국’에 대해 우려점은 없냐는 말에 그는 “일관되게 살아온 삶이 있는데 현실정치에 발을 들이면, 조금만 잘못하면 이걸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이쪽으로 가는 게 맞을지를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말하면서도 “장그래 운동본부 등 함께 했던 활동가들이 지지와 응원을 보내줬다. 낙선인사 돌고 올라오는데 미련이 정말 많이 남더라. 경주에서 만들어진 희망의 불씨, 정말로 잘 키워서 꼭 변화의 성과로 만들고자 하는 게 내 바람”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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