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만 명을 설득하기에 4년은 부족한 시간이었을까. 지난 2012년 창당된 녹색당은 20대 총선에서 0.76% 정당득표율에 그치며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녹색당은 원내진입할 수 있는 정당득표율 3%를 걸고 총선 기간 총력전을 펼쳐왔다. 당원 9000명 규모로 18만 표를 얻은 것이 성과라는 지적이 있지만,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정당은 결과로 말해야 한다”며 녹색당은 오는 6월까지 총선 결과에 대한 평가를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 위원장의 임기는 올해 9월에 종료되지만, 그는 앞으로의 4년을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힘쓸 것이라 밝혔다. 군소정당에 불리한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군소정당이 선거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 대한 철저한 내부 평가와 반성을 통해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21대 총선에 대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녹색당 중앙당사에서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과 한재각 공동정책위원장을 만나 이번 총선에 대한 녹색당의 평가를 들었다.

▲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왼쪽)과 한재각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오른쪽). 사진=녹색당 제공

- 총선 총평을 듣고 싶다.

“(하승수) 선거 과정이 참 좋았다거나 감동적이었다는 얘기는 당 안팎에서 나왔다.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서서 새로운 선거문화를 만든 측면이 있다. 김영준 서대문 후보는 노래공연으로, 과천·의왕 쪽은 청년들이 중심이 돼서 선거운동을 이끌었고 서울 동작갑 지역구는 지역 에너지 자립마을 주민들이 동참하기도 했다.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당원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분위기나 진보언론의 보도가 증가한 것, 적극적인 지지자가 아니던 사람들도 지지 반응을 보여준 것을 보면서 녹색당의 외연이 확장됐다는 안팎의 기대가 있었다. 거리에서 피부로 인지도가 올라간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우리가 느낀 지지도가 대중적 지지도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었다. 녹색당을 알게는 됐으나 투표까진 안 갔다. 18만 표라는 게 녹색당 지지자들이 움직여서 얻을 수 있는 표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왜 녹색당을 찍지 않았는지’에 대해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 내부적으로 기대가 컸던 것 같다. 지지율은 1%를 못 넘었는데, 기대와 실제 간극의 차이가 어디서 왔다고 보나.

“(하) 정당을 알아도 신뢰가 가야 유권자는 표를 준다. 정당으로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지 않았나 싶다. 그러기 위해서 평소 유권자들과 접촉면을 더 높였어야 했는데 지역 조직이 아직 탄탄하지 못하다. 오프라인에서 좀 더 많은 시민과 함께 하는 활동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녹색당 지역 조직을 튼튼히 하고 일상적인 정치활동 속에서 정책을 이슈화시켜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다.

선거제도나 언론환경이 군소정당에 불리한 구조기 때문에 녹색당은 스스로를 이슈화하는 게 필요했다. 그 점이 부족했다. 언론이 우리를 다루지 않을 거란 것은 이미 예상한 조건이었고 정당은 ‘선수’기 때문에 환경을 탓하고 있을 수 없다. 정책을 쟁점화해내든지 지역에서 인상적인 정치활동을 만들어내든지 해야 했다. 다른 당이 팟캐스트 등으로 유권자와 만나는 채널을 자체적으로 만들었는데, 녹색당은 선거가 임박해서 시도했다. 그런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 지난 11일 광화문네거리에서 녹색당원이 피켓을 들고 선거독려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녹색당은 정책 선거라는 원칙을 가장 잘 지킨 당 중 하나다. 정책 자료집도 선거 돌입 전에 준비하고 선거운동도 정책 이슈화를 중심으로 진행했는데.

“(한재각) 정책·공약을 일찍 준비한 게 맞고 2012년에 비해 정책 가짓수나 확장되고 체계도 탄탄해진 게 맞다. 내부적 성과이지만 이게 선거 경쟁 무대에 들어갔을 때 득표엔 기여하지 않았다. 선거 자체가 정책 선거가 아닌 문제도 있지만, 조직력이 없는 군소정당은 정책에 승부수를 둘 수밖에 없는데 그 절박함에 비해 방법이 부족했던 것 같다.

‘기본소득’의 경우 환경정당으로 게토화돼 있던 이미지를 넘어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게 해줬다는 의미가 있지만 언론 보도상 마이너한 의제로 국한되거나 조선일보에 황당 공약 정도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 선을 넘었어야 하는데 방법을 못 찾았다. 성소수자 이슈나 교육 정책 등 녹색당만이 독보적으로 의제화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슈화하진 못했다.

그렇다면 어떤 돌파구를 만들 수 있었을까. 부족했다고 평가는 하지만 어떻게 하면 이게 가능했을지 생각하면 사실 아직 막막하다.”

- 유권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지?

“(하) 유권자에게 신뢰를 주려면 여러 번 마주쳐야 하고 우리의 정책이 허황된 말이 아니라 구체적 대안이라고 받아들이게끔 해야 한다. 이 작업이 좀 더 빨리 됐으면 신뢰가 더 탄탄해졌을 텐데, 우리 딴에는 노력했지만 이번 선거기간이 충분한 신뢰를 주기에는 부족했다는 말이다. 정당연설회를 많이 진행했지만 거리에서 하는 1~2분 가지고는 부족하다. 유권자가 낯설게 느낄 때도 많다.

‘거기가 정당이었어요?’라는 반응도 많았다. 탈핵, 탈송전탑 등 평소 의제 중심으로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정당으로서의 인지도가 많이 낮았다. 오히려 이번 선거가 정당으로서의 녹색당을 시민들에게 확실히 알린 계기가 됐다. 의제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그렇지 않은) 한국 정치풍토와 너무 달라서 더 정당으로 인식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의제와 정책, 대안을 가진 정당임을 더 알려서 ‘이 정당에 꼭 표를 줘야겠다’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 녹색당의 선거운동 전략에 한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녹색당은 소수 선거운동원의 거리연설을 중심으로 뒀다.

“(하) 군소정당엔 ‘물량동원의 한계’가 있다. 국가보조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당비로만 해야 하니 최소한의 선거비용을 쓸 수밖에 없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엔 한계가 있다. 정책을 통해 알리고 직접 유권자를 만나는 전통적 방식이 그 방법들이다.

한편으론 거리정치를 되살리는 것이 새로운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도전해야 할 부분, 복원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미디어 영향력을 이용할 수 없는 소수정당으로서, 미디어 환경에 못 들어간다면 실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치의 유형은 거리 정치다. 수공업적이고 효과성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이 의미를 ‘자구적 노력’으로만 한계짓지 말고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도 있다.”

▲ 서울 서대문구갑 지역에 출마한 녹색당 김영준 후보가 지난달 31일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정책버스킹을 펼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정책 측면에서 유권자를 설득하지 못한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 ‘말만 좋다’ 등의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 지금까지 실현된 모든 정책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었다. 그 사이 격차를 매우는 게 정치적 실천이다. 실현 가능성이라 말을 많이 하는데 평가하기 위해 하는 평가에 가깝다. 진보정당은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경제적 이해관계나 정책 프레임을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한다. 녹색당 예로 들면 기본소득, 동물권, 청소년 정치참여권 등이다. 이에 공감하고 움직일 표를 모으는 것인데 그런 얘기를 하는데 현실 가능성으로 따지면 대부분 기각될 수밖에 없다.

또 숫자 중심으로 현실 가능성 질문하는 프레임 자체도 문제다. 숫자는 끼워맞춰질 때도 많고, 각 자료집에 나온 구체적인 숫자들이 모두 정확한 수치도 아니다. 정책수단이 있다면 정부조직의 방대한 자원과 정보로 만들 수 있는 게 숫자이기도 하다. 정책 지향성부터 먼저 말해야 한다.

녹색당이 제시하는 정책이 낯설 순 있지만 그리 급진적이진 않다. 탈핵, 동물권, 소수자 인권 등 다른 사회에서는 이미 상식이 된 것을 말하고 있다. 기본소득 로드맵도 1단계만 보면 아동수당, 청년수당, 기초연금, 장애인 연금이 합쳐진 수준이다. 녹색당 정책이 현실적이라고 설득할 기회가 제한된 측면이 있다.”

▲ 녹색당은 3월25일 오전 광화문 광장에서 군소정당에 불리한 선거제도 전면 개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녹색당

- 군소정당으로서 당연히 외부적 패인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어떤 것들이 있나.

“(한) 언론환경에 가장 할 말이 많다. 정치세력들에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덴마크 경우 선거에 나온 모든 정당에 방송 연설 기회를 부여한다. 이번에 21개 정당이 나왔지만, 그중 제대로 된 당원 구조와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충분한 진성당원을 가지고 있는 당을 가려내는 건 어렵지 않고 객관적 기준을 세울 수도 있는 문제다. 국회 의석이 있는 정당들에만 토론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잘못됐다.

정책 보도도 아쉬운 점이 있다. 각 정당 정책을 평면적으로 비교 평가하는 것밖에 안 되고 쟁점을 중심으로 토론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문제의 근본 구조가 무엇이고 어떤 대안이 제안돼야 하는지 토론이 붙을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을 비교하는 데서도 원외 정당은 배제될 때가 많다.”

“(하) 이번 선거를 통해 선거제도의 벽을 느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의석을 못 얻었다 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득표를 하면 국고보조금을 지급한다. 네덜란드 기준으로 녹색당은 원내 1석 진입할 수 있기도 하다. 네덜란드는 진입기준이 0.67%다.”

-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로 뭘 꼽고 있나.

“(하) 정당 조직을 탄탄하게 하는 것과 일상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는 정치활동을 늘려가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 지역구 후보 20명을 내려고 했으나 5명밖에 내지 못했다. 지역 조직이 탄탄하지 못해서다. 녹색당은 지지기반이 있는 정당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발적인 개인들이 모여서 만든 당이어서, 녹색당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풀어야 할 숙제다. 대전, 울산에 지역 모임이 없었는데 이번 선거를 계기로 생겼다. 반가운 기회다.

현재 당원이 9300명 정돈데 만 명을 빨리 모으는 것도 목표다. 당원들이 직접 주변 사람에게 녹색당을 알리고 정책을 설명할 수 있게 공부와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현재 일부 지역에서는 당원들이 지역구 예산 분석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이런 활동이 확산되면 당원들이 구체적 대안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당원들의 당과 정치에 대한 이해를 늘려 이 역량이 당에 그대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할 계획을 하고 있다.”

▲ 20대 총선 서울 동작갑에 출마했던 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정당연설회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 정책 측면에서 녹색당의 의제를 더 잘 알리기 위해 어떤 계획을 하고 있나.

“(한) 미세먼지처럼 눈앞의 구체적인 현상에서 출발하는 정책을 더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녹색당 정책 중에 추상적이라 느끼는 것들이 꽤 있다. 이번 선거에서 미세먼지 정책에 상당한 호응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미세먼지 문제는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회 구조적 변화까지 모색하고 전반적인 에너지 정책도 개선할 수 있는 문제다.

정책 네트워크도 고민하고 있다. 우리끼리 고민하는 게 아니라 학술단체든, 시민단체든, 지역단체든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고 토론할 수 있는 협력 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정책 의제가 확장될 수 있다. 자체적으로는 이런 역량을 확보하면서 세부적인 토론과 정책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정책군’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 만들어진 지 5년밖에 안된 정당에 한계만 지적할 수는 없다. 이번 총선을 통해 얻은 성과가 궁금하다.

“(하) 가장 크게는 당원들이 직접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쌓은 것이다. 당원들이 놀라울 정도로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정당은 결국 정책과 당원인데, 당원 스스로 선거를 통해 성장해 이제 정당다운 정당이 된 것 같다. 녹색당원들이 자기 모습을 드러내면서 녹색당만의 선거문화나 운동방식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다.

▲ 3월31일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선거운동중인 녹색당 당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인구 천만인 지역 서울에서 1% 이상 정당득표율을 얻은 것도 성과다. 지난 총선에 비해 2배 이상 올랐다. 활동이 많은 지역에서 지지율이 높아진 것이 확인돼 앞으로 녹색당의 가능성이 더 보였다. 총선 기간 동안 당원도 2300명, 전체 당원의 4분의 1이 늘어났다.

대중정치인으로서 잠재력을 가진 인물군도 형성했다. 이계삼, 신지예, 김주온 후보 등 이번에 나온 후보들이다. 특히 청년 후보들은 자신의 대중정치인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녹색당이 앞으로 보유하게 될 정치적 자원이 형성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당원들은 결과에 대해 아쉬움이 컸지만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분위기는 없다. 오히려 녹색당 활동 더 열심히 해야겠다거나 정치활동을 더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등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얻은 것들을 지역활동을 잘 안착시켜서 다음 지방선거에서 잘 발휘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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