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지지세가 강한 울산에서 ‘무소속 노동자 후보’가 두 명이나 당선돼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김종훈·윤종오 당선자는 지난 19대 총선 당시 6개 전 지역구에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울산에서 과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20대 총선에 당선됐다. 원내 진보정당 정의당이 지역구 당선인 두 명을 내며 지역구 의석 확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상황에서 무소속 진보정치인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두 당선자가 출마한 지역구는 울산의 대표적인 노동자 밀집 지역임에도 새누리당 의원이 강세를 보였던 곳이다. 김종훈 당선자는 58.88%라는 높은 득표율로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에서 당선됐다. 울산 동구는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이 5선, 정 전 의원의 울산 사무국장 출신인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이 재선한 지역이다. 윤종오 당선자는 61.49% 득표율로 울산 북구에서 당선됐다. 북구엔 현대자동차 공장단지가 있고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이 현역의원으로 있다. 두 당선자는 정당의 조직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새누리당 후보를 이겼다.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 노조 등 노동진영 긴밀한 협력 “노동자 후보 당선 위해 열과 성 다해”

이들은 어떻게 선거에 승리할 수 있었을까. 당선자 측이 말하는 첫 번째 요인은 ‘노동진영의 전폭적 지지’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등 대규모 노조가 지역구 선거운동에 함께했고 금속노조 울산지부,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등은 전 울산지역 차원에서 ‘민중단일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1월부터 민중단일후보 및 전략 지역구 선정 등을 논의하며 시민사회단체, 노조 등 진보진영이 총선에 공동대응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었다. 각 지역구, 울산 지역, 전국 단위 등에서 노동운동 진영이 긴밀한 협조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 민주노총 영남 노동벨트의 '전략지역후보'로 선정된 이들이 3월22일 합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윤종오 선본 제공

권기백 김종훈 후보 선거대책본부장은 울산이 ‘노동자 도시’인 점을 강조하며 현대중공업노동조합과 사내하청지회의 적극적 지지가 큰 힘을 발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중공업 노조는 일주일에 두세 번 내는 유인물을 통해 김종훈 후보의 약력, 공약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선전했고 출·퇴근 시간에 ‘노동자를 대변하는 의원 뽑아 노동개악 막아내자’ 등이 적힌 현수막을 들면서 공장 내에서 열심히 활동했다”면서 “노조 간부들은 근처 시장에 가서 왜 노조가 김후보를 지지하는지 알렸고 선거운동 마지막 날엔 노조위원장이 ‘가족에게도 투표를 호소하자’는 담화문을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북구의 현대차지부도 같은 방식으로 윤종오 후보 지지 호소에 함께했다.

지역 단위 조직인 금속노조 울산지부와 민주노총 울산본부의 적극적인 참여도 따랐다. 이들은 각 사업장 노조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당선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정치실천단’을 만들어 선거운동에 함께했다. 일부 상근자는 선거운동본부에 파견돼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다.

노조의 선거운동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노조 조직률이 높은 울산 동·북구의 특징에 있다. 현대중공업노조 조합원은 약 1만6천 명이고 동구 전체 민주노총 조합원은 2만 명 수준이다. 북구의 경우도 민주노총 북구소재사업장 내 조합원을 합하면 2만8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조합원의 가족까지 계산한다면 노조의 지지 호소는 상당한 규모의 표를 모을 수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월부터 총선 공동대응 흐름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민주노총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사회단체와 정의당, 노동당 등 진보정당과 공동대응을 논의해왔고 그 결과 ‘노동자·농민·빈민 살리기 박근혜정권 심판 2016총선 공동투쟁본부(공투본)’을 발족했다. 민주노총은 울산 동·북구를 ‘민주노총 전략 지역구’로, 김종훈·윤종오 후보를 민중단일후보로 선정해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이 이들 선본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노동운동 진영의 적극적인 의지 덕분에 후보단일화도 큰 잡음 없이 진행됐다. 3월 중순, 윤종오 당선자는 조승수 정의당 예비후보와의 북구 내 민주노총 사업장 조합원 모바일 총투표 경선에서 승리했고 김종훈 당선자는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현대중공업 조합원 대상 모바일 총투표 경선에서 이겼다. 김정아 민주노총 울산본부 교선국장은 지난 20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과거엔 단일화 과정에서 잡음이 많이 발생했다. 여론조사 몇 % 반영할 거냐, 조합원 투표 몇 % 반영할 거냐 등 경선 룰에서 합의를 못 보는 경우들이 있었다”면서 “올해 민주노총은 조합원 직접 참여로 선출하자고 강하게 유도했고 낙선자들이 결과에 수긍하는 등 이번에 큰 잡음 없이 단일화가 잘 이루어졌다”고 평가했다.

▲ 윤종오 울산 북구 후보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와 정책협약식을 맺는 모습. 사진=윤종오 선본 제공
▲ 김종훈 울산 동구 국회의원 당선자 선거 유세 모습. 사진=김종훈 선본 제공

구조조정 칼바람, 노동개악 국면에 노동진영 “이번만큼은 새누리 막아야”

선본 관계자는 이같은 전면적인 지지를 이끈 것은 '노동법 개악' 국면에 맞선 여권 심판론이라고 봤다. 김정아 민주노총 울산본부 교선국장은 지난 20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조선산업 경기불황이 상당히 심각한 편이다. 작년에만 1500명이 희망퇴직으로 잘려나갔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계약해지 방식 등으로 더 많이 잘려나갔다. 중공업 노조엔 위기의식이 상당한 상태”라면서 “현장에는 안효대 의원이 지난 8년간 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평가가 있었다. 김종훈 후보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동구에서 해온 게 있었고 사내하청 차별 문제, 고용불안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등 진정성있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가 밀집해있는 동구 지역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의 반노동 정책에 대한 분노로 ‘이번만큼은 새누리당을 저지해보자’고 표심이 뭉쳤다는 것이다. 최완 윤종오 선본 언론담당은 “윤 당선자 공약의 7~8할은 노동공약이다. 쉬운해고 금지법을 첫 공약으로 발표했고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특별법, 최고임금제를 도입하는 황제임금제한법 등을 공약했다”면서 “당연히 현장을 순례하고 공장을 방문하는 선거운동이 많았다”고 말했다.

‘노동개악 국면’에 대한 긴장감은 후보단일화 과정 중 나타나기 마련인 노동진영 내 갈등을 최소화한 요인이기도 했다. 권기백 선본장은 현대중공업에는 총선 이후 추가적 인력구조조정이 예정돼있어 현장의 심리적 긴장감이 높은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최 언론담당은 “예전에는 (노조의) 지지성향에 따라 단일 후보 지지 활동을 소극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전체가 함께하는 구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새누리당과 1:1 구도 형성, 야권 다자였지만 진보후보로 표 쏠려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민중 단일후보를 넘어서 더불어민주당과의 범야권단일화를 이룬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다. 북구의 이상헌 더민주 울산시당위원장은 지난달 23일 예비후보를 사퇴하며 윤종오 당시 예비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수영 더민주당 동구 예비후보도 후보등록 마감일인 지난달 25일 사퇴 의사를 밝히며 김종훈 당시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20대 총선에서 야권연대는 정의당과 더민주당이 인천지역에 국한해서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킨 것이 전부다. 이 가운데 울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무소속 후보에 출마를 양보한 데 대해 권기백 선본장은 “안효대 새누리당 의원이 3선을 해선 안된다는 강한 공감대가 있었고 지역사회원로들의 적극적 설득이 있었다”면서 “대기업 노조가 조직적 입장을 표명하고 당선자도 경쟁후보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등 단일화를 압박하는 지형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 민주노총 정치실천단이 울산 북구 현대중공업에서 김종훈 당시 후보자의 선거유세에 함께했다. 사진=김종훈 선본 제공

“노조가 지지해도 인지도, 10년 진보정치 성과 없었다면 당선 힘들어”

김종훈·윤종오 당선자는 모두 10년 이상 동·북구에서 지역 기반을 쌓아 온 진보정치인이다. 김 당선자는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울산 시의원, 동구청장 등 공직을 역임했고 민주노동당 울산광역시당 부위원장, 통합진보당 울산광역시당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윤 당선자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제2대 북구의원, 제3, 4대 시의원, 북구청장을 역임했고 통합진보당 북구지역위원장을 맡으며 진보 정당인으로 활동했다.

당선자 선본 측은 당선자가 쌓아온 지역 기반이 없었다면 노동진영의 지지나 단일화 구도도 큰 성과를 못 냈을 것이라 지적했다. 권기백 선본장은 “대개 보수층은 진보후보를 싫어하는데 김 후보가 지역과 스킨십이 많고 구청장 때 평판이 좋아 전반적으로 지지도가 높다. 이것이 현대중공업 등의 노조와 결합하며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라 지적했다. 최완 언론담당 또한 “북구는 민주노동당 시절 조승수 의원이 재선했고 진보진영 출신 구청장도 절반이 되는 등 진보정치 경험이 쌓인 곳”이라면서 “윤 당선자는 지역 현장 노동자 출신으로 구·시의원을 거쳐 직전 구청장까지 역임하며 지역 기반을 닦아왔다”고 말했다.

선본 관계자들은 ‘색깔론’이 먹혀들지 않은 것을 근거로 지적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울산 지원유세 과정에서 두 당선자를 향해 “통진당 출신이 당선되면 국회에 비상이 걸린다”, “종북세력에 정치를 맡길 수 없다” 등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선아 교선국장은 “지역이 후보를 ‘통합진보당이냐, 어떤 색깔이냐’ 이런 식으로 보는 게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 진보행정에 대한 평가를 통해 보고 있다”며 “후보들은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전력을 숨긴 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색깔론이 역풍을 몰았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무소속 당선인 ‘진보대통합’ 의지, 진보정당 사분오열 속 가능한 과제일까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정의당, 노동당, 민중연합당 등 진보 정치세력이 사분오열된 상황에서 두 당선자가 원내 진입 후 어떤 정당으로 행보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구통합진보당 지지자들이 다수 입당한 민중연합당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두 당선자 측은 “민중연합당에 입당할 예정이었다면 무소속으로 나오지 않고 선거 전에 입당했을 것”이라며 “지금 당장 특정 정당에 입당할 계획은 없다”고 공통된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향후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노동운동 진영 등을 정치세력으로 통합해내는 ‘진보대통합당’을 만드는 데 힘을 쏟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최완 언론담당은 “노동을 중심으로 한 전체 진보대통합당을 건설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고, 통합당이 만들어지면 함께 할 것”이라 밝혔다. 권기백 선본장도 “김 당선인은 통합된 진보정당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할 것이고 그런 정당이 만들어지면 참여할 의사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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