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3 총선 결과 ‘여소야대’ 지형이 형성되면서 그동안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일 때 난제로 여겨졌던 미디어 관련 쟁점 법안들이 제20대 국회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과 제작 자율성 확보는 지난 대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했던 공약임에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몇 차례의 개정안 발의가 있었지만 19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계류돼 왔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KBS 이사 정원을 기존 11명에서 15명으로 늘리면서 국회 여야 교섭단체가 각각 6명씩 추천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노동조합 등 사내 구성원의 추천을 받아 3명을 추천하도록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선 KBS 이사의 자격요건 중 전문성과 대표성을 구체화하고 당원 경력 및 대통령 후보 자문이나 인수위 경험자를 배제하도록 결격사유도 강화했다. 

이와 함께 최 의원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 정원을 기존 9명에서 11명으로 증원하고 국회 여야 교섭단체가 이들을 각각 4명씩, MBC 노조 등 사내구성원이 이사 3명을 추천하도록 하는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도 내놨다. 현재 KBS 이사회는 여야 7대 4, 방문진 이사회는 여야 6대 3 구성이다. 

최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 대해 “현 정부의 방송장악으로 방송의 독립성과 저널리즘 기능이 크게 훼손되고 방송이 정권의 홍보 도구화했다”며 “정권의 비호를 받는 낙하산 경영진이 방송을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하고 남용하는 현상이 지속됐고, 이에 대한 언론인들과 시민들의 저항이 분출했다”고 설명했다. 

최 의원은 “현행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은 방송의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명문화된 규정에 불과하다”며 “이에 방송의 독립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 등 임원 임명에 대한 규정을 개정하는 한편, 편성위원회의 구성·운영 방식을 법률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MBC 녹취록’ 청문회 열릴 듯

그러나 두 법안 모두 19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공전을 거듭해 왔다. 지난해 11월18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 야당 측 간사인 우상호 의원은 “우리가 야당에 유리한 방송을 만들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정부 여당의 주도권은 늘 있는 건데,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욱더 제도적으로 공정성이 보장되는 제도 한두 개만 도입해 준다면 오히려 이제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아예 공적재원 심의를 분리해 주겠다는데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박민식(새누리당) 소위원장은 “야당 위원들이 주장하는 지배구조 문제와 편성위원회 문제를 수신료 현실화의 선행조건으로 하는 논리적인 인과관계에 대해 상당히 수긍하기 어렵다”면서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법안심사소위에서 계속 심사하도록 하겠다”고 심의를 종결했다.

지난 2012년 10월30일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모두 이번 총선 공약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확보,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 등 공영방송 정상화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더민주는 언론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함께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확보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해직 등 징계 언론인의 명예회복과 최근 ‘MBC 녹취록’ 파문과 같은 언론 탄압 관련 진상규명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당도 “공정한 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공영방송의 자율성이 위축되고 언론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어 공영방송 사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사장 후보 이사회에 추천 △대통령 선거 등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자는 후보 추천 금지 △사장 선임 시 이사회의 의결방식에 특별다수제 도입(이사진 3분의 2 이상의 찬성) △‘보도국장 임명동의제’ 도입 등을 약속했다. 

정의당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 보장과 공정보도 확립 방안으로 “이사 선임에 있어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정치권의 분할 독식을 방지하고 시청자와 국민, 전문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것”이라며 “이사회는 사장 등 임원 선임 시 특별의결정족수제를 도입해 이른바 ‘낙하산’ 임명을 예방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또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등 내·외부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취재 및 제작 자율성 보장을 위해 방송법상 노사 동수가 참여하는 편성위원회 구성 및 운영을 의무화해, 위반 시 엄중히 제재하고 인허가에 대폭 반영하겠다”고 공약했다.

종편 편법적 특혜 폐지, 방통심의위 정권편향 심의 개선될까

파업에 참가한 기자와 PD를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해고했다는 MBC ‘백종문 녹취록’ 사건과 법원의 해고무효 판결 후에도 아직 복직하지 못하고 있는 해직 언론인 문제 등도 차기 국회에선 전향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은 “국회 상임위가 청문회를 실시해 당사자와 관계자, 참고인을 출석시켜 진상을 규명하고 청문회 결과를 바탕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 법·제도를 개선하겠다”며 “공정보도를 주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표적 해고된 언론인들과 부당전보 피해자들의 원상회복과 피해보상을 위해 ‘언론탄압 피해언론인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 6월9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민주광장에서 열린 '공영방송 사수 및 공정방송 쟁취를 위한 총파업 중간보고 공동총회'에서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언론개혁시민연대 출신으로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된 추혜선 정의당 언론개혁단장은 “백종문 녹취록과 해직 언론인 복직 문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20대 국회가 풀어야 할 사안이 많다”며 “향후 상임위가 구성되면 이 가운데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설정하고 논의할 텐데 지금부터 야권이 소통 라인을 구성하고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민주와 정의당은 또 현재의 종편 규제를 지상파와 동일한 수준으로 정상화하자고 주장했다. 더민주는 지상파 및 보도전문·종합편성채널의 소유 지분 및 1인 소유 지분 한도를 축소해 자본권력으로부터 방송 독립과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원칙’에 따른 종합편성채널 규제 정상화를 약속했다. 

정의당은 “종편에 의한 여론장악이 심각하나 각종 특혜와 봐주기를 통해 재허가 심사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경쟁 구도인 지상파 및 기타 PP(채널 사업자)에 비해 편법적인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여론 독과점 방지를 위해 종편 관련 재허가 요건(미디어렙 포함)을 강화하고 의무전송 특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미디어렙의 경우 지난해 MBN 영업일지 파문으로 불거진 1사 1렙에서 사실상의 직접영업을 규제하기 위해 보도전문채널까지 포함해 공·민영 미디어렙 체제가 재정비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새누리당 법안 처리 지연, 본회의 상정 방해는 관건 

아울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치심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20대 국회 출범 이후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관련 개정안 추진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더민주와 정의당 모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구성 개편과 심의 방식에 대한 개선을 공약했고, 정의당은 명목상 ‘민간독립기구’인 방통심의위의 완전한 독립성 확보와 함께 제작·편성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 기구에 의한 검열을 종국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9명의 방통심의위 위원 구성도 대통령 추천 3명을 포함해 여야 6대 3 선임으로 정권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19대 국회 미방위에 소속된 20여 명의 의원 중 연임에 성공한 의원 수는 9명에 그쳤고 새누리당 의원은 3명만 살아남았다. 반면 미방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우상호 더민주 의원등 야당 의원 4명은 연임에 성공해 이들이 20대 국회에서도 미방위에서 활동할 경우 야당의 정책 추진력은 더 커질 수 있다. 

게다가 더민주에선 박영선·신경민·박광온·노웅래 의원 등 기존 MBC 출신 현역 의원들이 국회 재입성에 성공했고, MBC 기자 출신의 김성수·최명길 당선자와 방문진 야당 이사였던 권미혁 당선자를 배출하게 됐다는 점도 논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이중 김성수·최명길·추혜선 당선자가 미방위를 상임위로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이 미방위 다수가 된다고 해도 쟁점 법안 처리를 야당의 뜻대로 모두 밀어붙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상임위를 통과하더라도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본회의 상정조차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방위 구성에서도 야당 쪽은 전문성과 경력을 가진 의원들이 많지만 새누리당은 관련 경험을 가진 의원들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쟁점 법안에 대한 협의 기간 자체가 길어질 수 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은 “설령 야당 공통 공약이라 하더라도 새누리당이 공약을 안 냈다는 것은 야당이 낸 공약에 반대하거나 적극 추진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어서 이를 고려하면 처리가 힘들거나 지연될 수도 있다”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같은 경우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진 개편 시기가 대선 이후까지 갈 수 있으므로 새누리당이 충분히 지연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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