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하자”

집을 허물려는 사람과 집을 지키려는 사람 모두가 했던 말이다. 전자는 ‘재개발 사업 인가처분 취소’ 소송에서 말했고 후자는 강제이주를 거부하는 싸움을 시작할 때부터 말했다. 지난 14일 9m 높이 철탑에 오른 만덕주민공동체 대표 최수영(50)씨는 지난 5년 동안 ‘원주민 주거권’을 요구하며 집을 지키고 있다. 최씨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이란 법적으로 저소득 밀집지역의 주거환경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법대로 한다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대로 했을 때 최씨의 집은 철거될 수밖에 없다. 최씨가 집을 지키기 위해 시도했던 제도적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주거환경개선사업 인가처분 취소’ 소송에서 3심 모두 패했다. LH는 토지 인도(명도) 소송을 통해 18일부터 ‘행정대집행’을 강행할 수 있다. 토지 및 부동산 인도를 강제집행한다는 말은 공권력을 통해 이주와 철거를 강제한다는 말이다. 최씨가 마을 사랑방 건물 위 9m 철탑 고공농성에 돌입한 이유다.

최씨가 있는 만덕5지구는 지난 2011년 LH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재개된 곳이다. 일방적인 재개발 강행에 대해 주민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었던 만덕5지구는 현재 행정대집행 국면에 접어들었다. 언제, 어떻게 철거 작업이 시작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남은 주민들은 망루를 지어 스스로 올랐다. 일각에서 ‘용산 참사가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 2월 만덕5지구를 방문했던 미디어오늘은 18일 최씨와 전화인터뷰를 통해 만덕5지구의 상황을 들었다.

▲ 최수영씨가 오른 철탑 정면 모습. 사진=손우영씨 제공
▲ 최수영씨가 오른 철탑 후면 모습. 사진=최수영씨 제공

30년 전에도 강제이주민들이 모인 만덕동, LH의 보상금으론 재입주 불가능해

지금 만덕5지구를 떠나지 않은 가구는 17가구이고 이 중에서도 '만덕5지구 주거권 운동'에 함께하는 가구는 8가구다. 5년 전 1600여 가구가 살았던 것과 비교하면 99%가 이주했고 주택 철거도 99% 완료된 상황이다. “너거들 몇 명 남아서 이 마을 지킬 수 있냐” 이런 힐난을 듣는다는 최씨는 “우리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99% 포기한 사람들이 1% 싸우는 사람에게 아무리 주장해본들 (변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주장이 정당하니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며 “그런 말은 전혀 두렵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철탑도 오르게 된 것”이라 말했다.

이들은 만덕5지구 주거권 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이곳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현실적 보상금’을 바라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원래 주민이 다시 거주할 수 있게끔 분양가를 인하하던가 아니면 지구지정을 해제해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전면철거식 재개발의 대안으로 “마을 주민들이 떠나지 않고 정착해서 노후주택을 개선할 수 있는” 도시재생사업을 요구했다.

철거가 진행되며 이들이 할 수 있는 요구는 점점 줄어들었다. 현재 이들은 “다시 입주할 수 있게 해달라”며 ‘추가부담금 없는 재입주’를 요구하고 있다. 최씨는 "마을이 너무 많이 파괴된 시점이니 현실적으로 추가부담 없는 재입주를 말하는 것”이라며 “표현의 방법의 차이지 여기서 살게 해달라는 주거권인 것은 매한가지"라 지적했다.

만덕5지구 주거권 운동은 LH가 토지보상금을 제시한 2011년부터 시작됐다. 주민들이 LH가 시세보다 지나치게 낮은 ‘헐값보상’을 한다며 반발에 나선 것이다. LH는 평당 350여만 원을 제시했다. 평수마다 차이는 있지만, 가구당 6천여만 원에서 1억여 원이 보상금으로 책정됐다. 이는 2007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책정된 액수였고 이후 4년 동안 주변 토지 시세는 두 배 가량 오른 상태였다.

▲ 철거가 90% 이상 진행됐던 지난 2월10일 만덕5지구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최씨는 “만덕5지구는 이미 1972년 강제이주로 형성된 마을이었다. 박정희 정부가 초량, 수정, 영도 등에 있던 판자촌을 강제로 정리하면서 그곳 주민들이 옮겨 온 곳”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만덕5지구엔 60~70대 노인들이 많이 살았고 건설현장, 봉제·신발공장에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면서 “구포시장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은 집 끼고 대출도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저 보상금을 받고 재입주하기란 불가능했다. 주변 동네에 전세를 찾기도 힘든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최씨도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굴착기 기사였다.

헐값 보상금에 대한 억울함이 컸던 주민들은 2011년부터 2012년까지 2년간 적극적으로 재개발 반대운동에 참여했다. 최씨는 “2011년 10월 비가 억수로 오는데도 평균 70세인 노인들이 거의 700여 명은 나와서 북구청으로 행진한 적이 있다. 집회하면 최소 500여 명은 모이던 때였다”면서 “3년 동안 10일에 한 번꼴로 집회를 해왔다”고 말했다.

사람·제도·법 기댈 곳 없었다, “주민들 무기는 집회밖에 없어”

초기 반대운동은 ‘정비구역 지정해제’에 맞춰졌다. 2011년엔 주거환경정비사업 입안 자체를 취소하기 위해 주민 87%의 등본을 첨부한 지정 취소 의견을 부산시 내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 올렸다. 그러나 부산시청은 3일 후 등본상 주소지와 거주민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지적하며 ‘서류 요건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당시 주민들은 “등본상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시청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주민들의 의사를 한번에 묵과할 수 있느냐”고 억울함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들은 힘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 ‘읍소’도 했다. 지역구 의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의원, 분당 LH 본사 책임자 등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대절해서 수차례 상경했다. 이들은 ‘우리 동네에 주거환경개선사업 지정을 해제해 달라’는 취지의 문서와 자료를 일일이 챙겨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 사무실을 무작정 방문하며 전달했다. 부산 사하구 조경태 의원이 재선 의원이란 말을 듣고 찾아가 사정 설명을 하며 힘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최씨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고 무작정 찾아갔다. 시간 날 때마다, 누가 만나자고 할 때마다 갔다”면서 “답변은 거의 안 왔다. 그 바쁘신 분들이 자료를 들춰보기라도 했을까. 보좌관 1명이 1장이라도 들춰봤을까”라고 토로했다.

▲ 만덕주민공동체와 연대하는 시민들의 집회 모습. 사진=최수영씨 제공

이들은 법정 싸움에 가장 큰 기대를 하고 2000년 만덕5지구가 주거환경개선사업 지구로 지정됐던 과정의 허점을 발견해 부산지방법원에 ‘사업 인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지구 지정을 위해 주민들에게 받은 동의서 중 40장 이상이 허위로 작성됐으며 수십 장이 같은 필적으로 서명돼있었다. 주택의 50% 이상 불량할 시 지구지정이 가능하다는 요건도 불량률 조사를 비전문가인 동네 통·반장이 했다는 점에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그러나 1심, 2심, 3심 모두 주민이 패했다. 법원은 주민이 제기한 오류는 인정된다면서도 ‘지구 지정이 법률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더 이상 기댈 수 있는 사람과 법 조항은 없었다. LH가 건 토지 명도소송은 지난 2월 말 모두 주민의 패소로 끝났다. 명도소송은 재개발 사업에서 강제이주 및 철거를 집행할 수 있는 마지막 관문으로 알려져있다. 최씨는 “주민들의 무기는 집회밖에 없었다”면서 “어르신들이 길바닥에 드러눕고 몸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말했다.

재개발 반대운동은 지는 싸움, “당장 돈에 반응하는 심리 이용하기도”

반대운동은 시간이 길어지면서 동력을 서서히 잃었다. 최씨는 “이 동네에 70대인 분들이 대다순데 한 2년을 뛰어다녔는데 성과 없으니 지치고 자포자기해서 떠나게 된 것”이라며 “2013년부터 서서히 떠나갔다”고 말했다.

당시 주민 반대운동을 이끌던 비대위는 2014년 1월 ‘사업 인가처분 취소’ 항소심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를 3심까지 이끌고 간 것은 최씨가 이끌던 ‘만덕주민공동체’였다. 만덕주민공동체는 “오래 살던 곳에서, 내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일관되게 요구해 온 30가구가 비대위를 나오면서 만들게 된 모임이었다. 최씨는 2013년 10월, 비대위와 의견 마찰을 견디지 못하고 비대위를 나왔다. 최씨는 “주민 의견을 하나로 모아도 모자랄 판에 비대위가 주민들에게 ‘현실 보상을 받을래, 이 동네에서 살래’라고 물었다”면서 “한 파는 나가겠다, 한 파는 끝까지 살겠다로 주민 의견이 나뉘어 싸움도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돈’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점도 상황이 여기까지 오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한창 주택개량방식, 도시재생사업을 설명하고 전문가를 모시고 말씀을 드려도 어르신들은 뜬구름 잡는 것처럼 여겼다”면서 “돈에는 바로 반응하기 쉽다. LH에서 보상금을 더 줄 수 있다고 당장 말하면 그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노인들은 돈이라면 벌벌 떠는데, LH가 나가지 않고 버티는 어르신에게 ‘벌금을 내게 된다’, ‘벌금은 철거예정일부터 지금까지 하루하루 계산한다’고 말해 겁에 질려 나간 사람도 많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인근 전셋집으로 옮긴 한 주민이 공동체를 찾아와 “내가 진작에 너거 얘기 들을 건데. 후회된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 부산 북구 만덕동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지정된 만덕5지구 전경. 위는 철거 전의 모습이고 아래는 철거 후의 모습이다. 사진=최수영씨 제공

최씨를 비롯하여 ‘정착할 주거권’에 의지를 둔 30가구는 “LH는 ‘저소득 원주민 삶의 질 개선’이라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취지를 지켜라”라며 “이게 법대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최근까지 집회, 농성, 마을공동체 사업 등을 전개했다. 이들은 지난 13일까지 LH 부산울산지역본부 앞에서 130여 일 동안 노숙농성을 진행해왔다. 행정대집행이 가능한 날짜인 4월18일이 다가오면서 최씨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고, 물러서면 우리 주거권을 받을 수 없을 뿐더러 결국 길거리에 나 앉는 노숙자가 될 것”이라며 “선택은 이것(망루 고공농성)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LH의 개발이익? 원주민을 위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은 불가능한가

최씨는 지금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LH 공사의 개발이익’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LH가 약속도 저버린 채 지나치게 낮은 보상금을 제시해 동네를 혼란에 빠뜨린 것이 지금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2000년 당시 대한주택공사(이후 LH에 합병)가 주민들에게 동의서를 받을 땐 ‘지금 집을 내어주면 나중에 같은 평수의 집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면서 “2011년 두 배로 뛴 시세를 고려조차 하지 않고, 주민들의 항의도 반영하지 않고 2008년 측정가로 보상을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마을 주민들은 스스로 나서 “현실 보상이 안된다면 지구지정을 해제하라”고 수십 차례 집회를 여는 등 LH에 의사를 전달했지만, LH는 이에 대해 대응책을 내놓지 않았다.

주민들은 바둑판식 구획, 도로·수도 등 정비기반 시설이 잘 확충돼있는 것을 스스로 연구해 부산 지역 의원, 감사원, 국토부 관계자 등에게 자료를 보내거나 집회를 통해 요구하는 등 ‘도시재생사업’으로의 전환을 주장했으나 반영되지 못했다. 다시 주민들은 전면철거식 재개발이 강행될 수밖에 없다면 원주민의 주거권을 위해 ‘재입주가 가능한 대책’이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가부담금 없는 재입주’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최씨는 “올해만 해도 LH는 우리와 대화한 적이 한번도 없다”며 “지금 동네에 오지만 이주를 종용하러 올 뿐”이라고 말했다.

▲ 만덕5지구에 '현지개량방식(도시재생사업 방식)'이 적합함을 입증하기 위해 주민들이 직접 만든 자료 사진. 국회의원, 관계기관 책임자 등에게 발송했다. 사진=만덕주민공동체 제공

최씨는 “우리의 요구가 부당하지 않다면 제발 들어달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LH는 이 요구가 ‘특혜’라고 비판한다”며 “서민 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국책 사업 진행한다고 하면 원주민 주거권은 반드시 보장되는 선에서 진행돼야만 하지 않느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우리는 법의 취지를 지키려고 ‘법대로 하라’고 하지만, LH도 ‘법대로 하라’는 태도”라면서 “사업 인가처분 취소 소송을 할 시 LH는 ‘억울하면 법대로 하라’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하는 8가구와 함께 요구가 반영될 때까지 망루에서 내려오지 않을 예정이다. 최씨는 “망루에 오르기 전엔 많이 두려웠고 사람이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이게 옳다고 판단돼서 하게 됐다”면서도 “제일 힘든 건 가족을 생각할 때다. 가족에 미안하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상황을 묻는 말에 그는 “몇일 전 폭우가 몰아칠 때도 잘 버텼고 길바닥에서도 130일을 버텼는데 따뜻한 봄날에 이걸 못하겠느냐”며 “지금은 결코 두렵지 않다. 끝까지 (망루에서) 해나갈 것”이라고 심정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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