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 개편을 앞두고 폐지설에 휩싸였던 KBS ‘미디어인사이드’가 17일 폐지됐다.

프로그램 진행자 정필모 KBS 보도위원은 이날 “미디어인사이드가 봄 개편에 따라 오늘(17일)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며 “저희 제작진은 13년 전 시작된 KBS 미디어비평프로그램의 맥을 이어오면서 시청자 여러분이 미디어를 잘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정 보도위원은 이어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그동안 관심을 갖고 시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13년간 유지되던 KBS 미디어비평 대단원의 막이 이처럼 내린 것이다.

▲ KBS미디어인사이드 17일자 마지막 방송.
KBS 미디어인사이드는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보도 전문 채널을 통틀어 매체 간 상호 비평을 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정수영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18일 “미디어인사이드 폐지는 언론사간 비평과 감시의 위축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한국 여론 지형이 보수 편향적인 상황에서 여론 시장의 독과점을 바로잡는 수단이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앞서 KBS 미디어인사이드 제작진들은 “시청률이나 비용 등의 경쟁력으로만 평가해 미디어인사이드 존폐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며 폐지에 대해 재고 요청을 한 바 있다. 

사그라진 지상파 매체 비평

KBS 미디어인사이드는 지난 2003년 ‘미디어포커스’에서 시작해 ‘미디어비평’을 거쳐 13년 동안 KBS를 대표하는 보도 비평 프로그램이었다.

미디어포커스가 출범한 2000년대 초는 지상파에서 매체 비평이 꽃을 피웠던 때다.

2001년 MBC ‘미디어비평’을 시작으로 2003년 6월 KBS 미디어포커스가 신설됐다. EBS에도 그해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닻을 올렸다. 방송 언론의 자유가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KBS 미디어포커스는 첫 방송에서 군사정권 시절부터 김대중 정부를 거치는 동안 KBS가 권력 외압에 어떻게 굴종했는지 집중 분석했다.

전두환‧노태우 군부 시절 KBS가 정권의 홍보 프로그램으로 활용된 역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빨갱이’로 내몰던 과거 시대 분위기에 KBS가 적극 동조해나간 과정 등을 방송했던 것. 

DJ정부가 출범할 당시에도 KBS가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낯 뜨거운 찬사’를 방송한 것도 도마 위에 올렸다.

또 박정희 정권에서 신문사 사주들의 권력 유착을 다뤄 동아일보 등 보수 신문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고(故) 김상만 전 동아일보 사장이 주도하고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등 당시 유력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했던 ‘덕소모임’을 다룬 ‘한국언론의 빅브라더-미국’ 편이 대표적이다.(2003년 12월13일 미디어포커스)

조중동과 사주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일부 신문들은 KBS 미디어포커스가 ‘조중동 때리기’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 KBS 탐사보도팀과 미디어포커스 출범을 주도한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의 모습. (사진= 김도연 기자)
당시 KBS 김용진 기자(현 뉴스타파 대표)는 “조중동 관련 보도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이들 신문의 보도 태도가 통상적인 사회의식 수준과 동떨어져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탐사 저널리즘을 한국에 본격 소개한 것도 KBS 미디어포커스였다. 2004년 7월부터 해외 탐사저널리즘 대표 언론인을 인터뷰했다. 

1970년대 미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을 최초 보도해 미국의 베트남 철수를 앞당긴 ‘뉴요커’의 세이무어 허쉬 기자, 베트남과 캄보디아·팔레스타인 등 수많은 분쟁 지역을 취재한 베테랑 종군기자 존 필저 등이 그들이다.

2007년 방송 4주년 특집으로는 ‘애리조나 프로젝트-테러로 언론의 입을 막을 순 없다’ 편에서는 미국 언론계에서 저널리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애리조나 프로젝트’를 국내에 소개했다.

애리조나 프로젝트는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범죄 조직과 정치권의 유착 실태를 20년 넘게 파헤쳤던 돈 볼스 기자가 1976년 의문의 자동차 폭발 사고로 숨지자 미국 전역 언론사들이 ‘미완의 기사’를 취재하기로 했던 프로젝트다.

미디어포커스, KBS 저널리스트 산실

현재 뉴스타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용진 대표, 최경영·김경래 등 KBS 출신 기자들은 미디어포커스에서 활동했던 언론인이다. 

이들은 KBS의 제작·보도 자율성이 위축되고 낙하산으로 인한 통제가 심해지자 사표를 내고 나와 뉴스타파를 창설하고 활약 중이다. 

지난달 KBS에 사표를 내고 뉴스타파로 이직한 최문호 기자는 3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KBS는 정연주 사장 때 탐사보도팀이나 미디어포커스를 중심으로 해방의 기분을 맛봤던 사람들이 저항해온 곳”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KBS 내부에서 위축된 보도 자율성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언론인 다수가 미디어포커스와 KBS 탐사보도팀 등을 경험하며 저널리스트의 역량을 키웠고 보수 정권의 언론 장악에 맞서고 있다는 얘기였다.   

▲ KBS 기자들이 지난 2008년 11월 서울 여의도 KBS에서 미디어포커스 폐지 반대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이치열 기자)

미디어포커스, MB정부의 눈엣가시

정연주 KBS 전 사장이 2003년 취임과 함께 ‘올바른 저널리즘 기능 회복을 위한 대안’으로서 신설했던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MB정부가 들어서자 미디어포커스는 안팎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MB정권은 정 전 사장을 쫓아낸 후 이병순 KBS 사장을 앉혔고 그는 취임 직후 미디어포커스와 탐사보도팀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김용진 기자를 부산총국으로 발령했다.

김 기자는 2008년 9월 사내 게시판을 통해 “미디어포커스는 지난 5년간 독과점 상태의 여론시장에서 그나마 다양한 여론의 흐름을 전달해준 프로그램”이라며 “저널리즘과 공영방송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만 지니고 있더라도 KBS 탐사보도팀과 시사기획 쌈, 미디어포커스를 건드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리라 믿어본다”고 했다. 

미디어포커스는 폐지설에 휩싸였다. 내부 기자들은 2008년 11월 집단 연판장을 돌리는 등 반발했다. KBS는 ‘미디어포커스’의 명칭을 ‘미디어비평’으로 교체하며 프로그램의 개편을 단행했다.

당시 미디어포커스 제작진이었던 김경래 기자(현 뉴스타파 기자)는 “기자들이 이만큼 자부심을 갖고 제작 자율성을 보장받으며 만들었던 프로그램이 또 있을까 싶다”며 “정연주 전 사장 당시 제작진에게 간접적으로라도 혹은 조언이라도, 말이 나올까 싶어 만나는 것조차 꺼렸다”고 말했다.

미디어비평으로 이름을 바꿔 비평의 명맥을 이어갔지만 MB정부 이후 프로그램이 밋밋해지고 언론 사주에 대한 비판이 줄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3년 6월 열린 ‘한국언론학회‧KBS 공동 심포지엄’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KBS ‘미디어비평’에서 보수언론에 대한 비평이 예전에 비해 덜 신랄하고 덜 구체적인 것은 KBS의 내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가 2003년부터 10년간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을 분석한 결과, 2008년 정연주 사장 해임 전에는 ‘미디어비평’에서 언론‧미디어를 다룬 꼭지가 46.8%를 차지했지만 이후 32.4%로 감소했다. 

이병순 KBS 사장 이전까지 ‘조중동 등 보수신문사’를 특정해 비판한 꼭지는 전체 25.3%로 나타났지만 이후에는 3.2%로 급감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 매체간 상호 비평에 주력했던 KBS 미디어인사이드가 17일 막을 내렸다.

“침묵의 카르텔로 돌아가나”

과거보다 비판의 세기는 줄었다고 평가받지만 지상파 유일의 상호 비평 프로그램으로 미디어인사이드는 KBS 내부에서 공정성을 위한 최후 보루로 여겨졌다. 

미디어인사이드 제작진(구영희, 김진희, 박현진, 김연주 기자)들은 지난 7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자사 언론인들에게도 이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저널리즘의 원칙과 취재 윤리, 그리고 스스로의 반성을 담는 유일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인사이드는 일부 대학에서 언론 관련 수업의 부교재로 활용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었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미디어인사이드 폐지설이 제기됐던 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언론끼리 서로 봐주고 감싸는 행태를 공영방송이 용인하겠다는 것인가”라며 폐지 소식에 아쉬움을 표했다. 

김 대표는 “미디어포커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라며 “(미디어인사이드 폐지는) 과거 침묵의 카르텔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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