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민정씨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매달 1~2개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권씨가 주로 사용한 것은 옥시의 제품이었으며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를 한 차례 사용한 적이 있었다. 2005년 3월 임신중이던 태아(태명 밤톨이, 31주차)가 기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병원의 임신중단 권고를 받아 사산했다. 2006년 12월 셋째 아이인 동영이는 임신 중 장기가 하얗게 변하는 기형이 발생했고 출산 이후엔 호흡곤란증세로 중환자실에서 지내다 2007년 4월 120여일 만에 사망했다.

동영이는 임신중 사산한 둘째 아이와 정확하게 같은 증상이었다. 2004년 이전에 출산한 첫째 아이와, 우연찮게 가습기가 고장나 임신 중 살균제에 노출되지 않은 막내는 정상분만하였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2014년 질병관리본부는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임신중 사망한 권씨의 아이에 대해 ‘판정불가’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재심신청조차 할 수 없는 5단계 판정이다. 셋째인 동영이에 대해서도 1차 조사에서 4단계 ‘가능성 거의 없음’판정을 받았고, 2015년 재심사 결과도 같았다.

▲ 뱃속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돼 태어난지 4개월만에 사망한, 권씨의 아기.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정부는 태아 사망을 아예 인명피해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이는 권씨의 두 아이 처럼 사산하거나 출산후 사망한 경우 뿐 아니라, 95명의 엄마와 함께 숨진 태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는 태아를 별개의 생명체이자 생명권의 주체로 보는 헌법재판소의 판단과도 다르다. 특히 임신중기 이후의 태아(24주 이후)에 대해서조차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인명피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모자보건법에 비춰서도 정당화되기 힘들다.

가습기살균제 사용 이후 폐손상이 아닌 다른 장기 이상이 발생한 경우나 기존 질병으로 이미 수술을 받은 경우도 피해자 판정에서 제외됐다.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대처는 이 뿐만이 아니다. 최악의 화학 참사로 불리지만 정부의 대응은 무능함을 넘어 사태를 방조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할 만큼 시종일관 소극적이다.

가습기 참사가 제조업체와 개인간의 문제라니

2011년 8월 31일 발표된 역학조사로 가습계살균제가 중증 폐질환의 원인임이 입증됐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이미 수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킨 이 제품을 회수하지 않았다. 언론보도가 쏟아지는 중에도 시중에선 버젓이 가습기살균제가 유통됐다. 질병관리본부가 수거명령을 내린 것은 두달여가 지난 11월11일이었다.

피해자 접수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고도 2년이 지난 2013년 7월에야 시작됐으며, 검찰수사는 무려 4년여가 지난 지난해 10월에야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2011년 8월의 역학조사 결과(교차비 47.3)가 이미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의 인과관계를 100% 보여준다고 했지만, 정부는 2014년 3월에야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공식판정을 내린다. 또한 검찰수사는 공식판정으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시작된 것이다.

검찰수사에 앞선 피해여부 판정도 가해기업들에 대한 봐주기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질병관리본부는 2013년부터 총 3차례에 거쳐 피해조사를 실시했다. 1,2차 조사에선 530명의 피해의심사례가 조사됐고 이 가운데 현재까지 146명이 사망했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와의 의심사례간 인과관계를 ‘거의 확실’, ‘높음’, ‘낮음’, ‘거의 없음’, ‘판정 불가’ 등 5등급으로 나눴고 1,2등급의 피해자를 221명(사망 95명)으로 제한했다. 나머지 309명은 가능성 ‘낮음’, ‘거의 없음’, ‘판정 불가’ 판정을 받았다. 태아 사망을 비롯해, 폐질환이 아닌 호흡기 질환 피해자 등 나머지 사례들은 치료비와 장례비 지원조차 받지 못했다.

정부는 제조사에 대한 구상권 청구가 확실한 경우로 피해 여부 판정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정부의 자의적인 분류로 인해 3,4,5등급을 받은 피해자들의 경우 기업과의 싸움에서도 크게 불리해질해질 수밖에 없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2013년 7월 한정애 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공개한 기재부 내부문서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기재부의 문건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제조업체와 개인 간의 문제다’‘국가의 과잉 개입으로 나쁜 선례를 남긴다’라는 정부의 시각이 들어가 있다.

장하나 의원은 “환경부가 유해화학물질 관리를 못 해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겼다는 것을 모든 국민이 알고 있는데 아직도 제조업자와 개인 간의 문제라고 생각하느냐?”며 “지금 이 사건의 피고가 정부다. 그래서 정부가 이중플레이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2014년 1월13일 광화문. 피해자들은 스러져간 아이들이 갖고 놀던 장난감을 갖고 나와 사망일자가 기록된 대형 현수막 위에 놓았다.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피해자들의 조사 연장 요구에도 불구하고 3차 조사를 지난해 말로 서둘러 마무리한 것도 피해 규모를 축소하려는 정부의 태도를 드러낸다. 뒤늦게 가습기살균제 사용여부를 확인한 피해자들의 구제 가능성은 불분명해졌다. 정부의 잘못된 관리감독에 의해 17년간 800만명의 국민이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됐다는 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조치다.

일선 의사들, 2007년 질병관리본부에 실험실 검사까지 의뢰했지만

가습기 살균제가 범인이란 사실을 밝혀내기까지는 2006년 임상에서 관찰된 영유아 집단사망으로부터 따져도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가습기살균제가 도입된 94년으로부터는 무려 17년이다. 이 원인불명의 폐질환의 원인을 추적한 것도 정부가 아니었다.

2011년 봄 공포의 폐질환이 급속히 번지고 있을때도 질병관리본부는 그 원인을 찾지 못했다. “감염에 의해 발생했을 개연성은 지극히 낫”고 “새로운 질환은 아니지만 발병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는 정도가 질병관리본부의 발표였다.

가습기 살균제가 급성 폐질환의 원인이라는 인관관계를 찾는 단서는 일선 의사들로부터 나왔다. 이미 2011년 이전에 임상에서 소아 환자들이 원인미상의 폐섬유화로 사망하는 사례를 대했던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 등 4개 대학병원의 의사들이 모여 전국 병원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고, 미온적이었던 정부도 홍 교수 팀의 연구로부터 단서를 얻어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임을 찾아낸 것이었다. 홍 교수 팀이 임상에서 실시해 온 조직검사를 바탕으로 내놓은 것은 공기중에 떠다니는 무언가가 기관지를 통해 흡입되어 염증을 발생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미 2007년 홍 교수는 질병관리본부 측에 이 원인불명의 폐질환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고 실험실 검사를 위한 기관지폐포세척액을 질병관리본부에 보내주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의 결론은 치명적인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원인이 아니라는 것 뿐이었다.

홍 교수 등이 2006년부터 추적관찰한 이 작업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었다.

엉터리 정부입법에 심사규정까지 위반, “국가에 책임 물어야”

전문가들은 인체가 흡입하는 가습기살균제, 해외에선 유례가 없는 이 제품을 정부가 허가한 것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1994년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했다면서 “내 아기를 위하여!” “독성실험결과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광고로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SK케미칼(당시 유공)이었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PHMG를 원료로 판매하고 있는 곳도 SK케미칼이다. 가습기살균제는 총 14종으로 이 가운데 SK케미칼의 원료를 사용하는 기업은 옥시, 애경, 롯데, 홈플러스, 이마트, 코스트코, GS마트, 다이소(산도깨비) 등 8개에 이른다. SK케미칼의 원료는 두 가지 종류로 PHMG와 CMIT/MIT(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메칠소치라졸리논)가 사용되었는데 이 가운데 CMIT/MIT에 대해 2012년 질병관리본부는 인과관계가 없다며 유해성을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1,2차 조사에 접수된 피해사례 중 CMIT/MIT를 원료로 하는 애경과 이마트, GS마트, 다이소의 제품을 사용한 사람도 178명, 사망자만해도 39명에 이른다.

CMIT/MIT는 이미 1998년 미국 환경보호국(EPA)을 비롯해 유럽연합 등에서도 유해물질로 지정된 바 있어 질병관리본부가 어떤 근거로 유해성을 부인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보건복지부가 유독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CMIT/MIT(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메틸이소치아졸리논)에 대해, 이미 환경부 내에선 유독물질로 지정됐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어떤 기업도 그 유해성 여부를 실험하지 않았지만, 정부는 이를 관리감독하지 않았다.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습기살균제에 유독물질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를 원료로 집어넣으면서도 ‘흡입독성’ 실험을 하지 않았다.

정부는 PHMG가 처음 사용될 당시, 화학물질의 용도를 변경할 경우 유해성심사를 다시 받아야 하는 법조항이 없었고 당시엔 이에 대한 과학적 기술능력이 부족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월 피해자 유족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는 이같은 점에 착안해 “국가가 유해물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화학물질의 용도가 변경될 위해성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은 1976년 미국을 비롯해 벌써 수십년전에 외국에서 도입된 조항이었다. 독성학에서는 기본적인 지식에 해당하는 조항조차 두지 않은 우리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정부 입법이었는 점, 가습기 살균제 성분에 대한 허가 과정에선 당시 존재했던 심사 규정조차 위반했다는 점에서 이 판결은 문제가 있다.

▲ 사진제공=환경보건시민센터
예를들어 2003년 PGH에 대한 유해성 심사 당시 기업은 PGH의 배출경로에 대해 “제품에 첨가(spray or aerosol 제품등/항균효과)”라고 명시했다. 즉 PGH가 스프레이나 에어로졸의 형태로 사용된다는 것이며, 이럴 경우 소비자들은 흡입과 경피로 이 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기업은 2003년 당시의 규정에 따르더라도 흡입 및 경피 독성에 관한 시험성적서를 제출해야 하며, 정부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제8조제2항에 따라 제출을 명해야 한다.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환경부의 직무상 의무 위반인 것이다.

더욱이 환경부는 2003년 경구 독성에 대해서도 기업에 낸 자체 시험성적서에 의거해 유독물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2013년 동물 대상 실험에선 경구에 대해서도 유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출시된 세퓨의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서도 정부는 벌써 6년이나 경과한 2003년의 경구 독성 심사결과에만 근거해 허가를 했다.

정부기관으로부터 안전 인증을 받은 제품도 있었다. 업체가 가습기살균제를 세정제로 신고하자 기술표준원이 별다른 심사과정을 거치지 않고 KC마크를 내 준 것이다. 2011년 말 수거명령을 받은 전체 6개 제품 중 나머지 5개는 살균제라는 이유로 공산품 안전관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중증 폐질환이 파문을 일으키자 유관기관인 기술표준원, 식약처, 환경부는 서로 자신들의 관리 품목이 아니라며 떠넘기기만 했다.

박태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만일 이것이 법률상의 미비점이다 하더라도 이는 “헌법이 국가에 부과하고 있는 생명 및 신체의 안전한 보호의무 등에 비추어 (국가에)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공동대표는 “가습기 살균제가 등장한 것 자체가 가습기에 낀 세균이 공기중으로 흡입된다는 것이었는데, 화학물질의 용도가 바뀌어 흡입되면 유해할 수 있다는 걸 정부가 인식할 수 없었다는 정부 논리는 말이 안된다”며 “소비자들은 당연히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이 안전한 실험을 거쳤다고 믿을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찬호 대표는 “처음부터 정부의 책임이 예상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가 피해자 구제에도 소극적으로 해온 것으로 본다”며 “기업에 이길 수 있는 확실한 케이스만 포함시키고 다 배제한다는 원칙 때문에 피해자들만 두 번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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