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LG·태광·씨앤앰 수리기사들이 간접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 20대 총선에 맞춘 공동행동을 시작했다. 대기업 제품의 수리를 도맡는 이들은 모두 하도급 업체에 고용된 '간접고용 노동자'다. 이들은 지난달 '기술서비스 간접고용노동자 권리보장과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 출범을 시작으로 각 후보에게 간접고용 문제의 입장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발송했고 '탐욕의 재벌풍선 터뜨리기' 릴레이, '편지 한 통의 실천' 등 '진짜 사장' 원청기업의 책임을 압박하는 운동을 벌여 왔다.

지난 2013년 노조 출범 이후 삼성으로부터 끊임없는 노조탄압에 시달려온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박성주 부지회장은 지난 5일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권 변호사는 현재 경북 경주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 '용산참사 진압책임자' 김석기 후보와 경쟁하고 있다. 권 변호사는 3일 뒤 박 부지회장에게 답장을 보내 왔다. 아래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다.

 

권영국 후보님!

우리는 간접고용이라는 형식에 얽매여 있는 노동자지만 모든 노무관리와 인사관리, 교육 등 사실상 원청의 지배하에 일을 해왔습니다. 우리가 삼성 직원이 아니라고 느낄 때는 급여일, 업무상 재해 등 사용자의 책임이 있을 때입니다. 고객 앞에서 저희는 삼성 AS 기사지만, 노동자로서 삼성노동자라고 이야기하면 삼성은 고용형태의 관계를 말하며 ‘남’이라고 말합니다.

노조를 만들고 지금까지도 삼성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와 고사화 전략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여전히 고용불안 상황에 놓여있고 삼성은 교섭에서도 사용자가 아니라고 발을 빼고 있습니다. 후보님, 지금껏 살아오신 나날들이 평생 약자의 권리를 위한 삶이셨기에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현실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간접고용 노동자의 삶을 개선해나갈 방안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 간접고용노동자로서 권 후보자님이 생각하시는, ‘간접고용’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정책으로 어떠한 것이 있는지 질의 드리고 싶습니다.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대한민국의 앞날에 대한 대안을 토론하고 만들어나가는 공간인 만큼, 열악한 지위에 처한 간접고용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후보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 박성주 드림

▲ 박성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이 지난 5일 경북 경주에 출마한 권영국 후보에게 '간접고용' 문제 해결의 방안을 묻는 편지를 썼다. 사진=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제공

아래는 지난 8일 권영국 후보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보낸 답신의 전문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 동지들께

정성이 깃든 박성주 부지회장님의 손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선거 막판이라 경황이 없어 직접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올해 다시 삼성 자본에 맞선 총력투쟁을 벌이고 있는 동지들과 현장에서 연대해야 하는데 경주에서 선거운동하느라 제대로 결합 못 해 아쉬운 맘 큽니다. 제게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 상임대표이자 삼성노동인권지킴이 공동대표로서 제가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고 주력해온 현안이기 때문입니다. 위헌인 무노조경영을 고수해온 삼성재벌의 노동 무시가 박근혜 정권의 반노동 정책과 맞물리면서 삼성그룹은 노동인권 사각지대로 고착화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건 이제 상식이 됐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동지들은 열사투쟁을 통해 민주노조를 사수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인 노동3권을 목숨을 바쳐 쟁취하는 기막힌 일이 대한민국 최대기업에서 벌어졌습니다. 불법과 탈법을 일삼으며 부를 세습해온 삼성족벌 일가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드셌지만, 삼성 재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가족과 반올림 동지들의 농성이 지금도 강남역 인근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진행 중이지만, 삼성 재벌은 진심 어린 사과도, 제대로 된 보상도 하지 않고 파렴치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삼성그룹의 노동자들뿐 아니라 더 큰 사회적 연대가 모여서 반드시 삼성 재벌의 탐욕과 죄악을 심판하고 응징해야 합니다.

▲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최종범열사대책위가 2013년 11월21일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연 '교섭 요구' 기자회견에서 권영국 변호사가 연대발언을 하는 모습. 삼성전자서비스 AS 노동자였던 고 최종범 열사는 "그동안 삼성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어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2013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질의하신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법에 대해 답변드리겠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 확대와 차별 심화가 점점 고착화되고 있는 현재 조건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과제는 첫째, 규모를 줄이고, 둘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노동 조건 격차를 해소하고, 셋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조직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대기업과 지역 공단의 중소 영세사업장까지 만연한 불법적인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희망연대노조의 공동투쟁을 주목하는 것도 바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장으로 역할 해온 두 노조에게 갖는 기대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슈퍼갑인 대기업 자본에 맞서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근절하고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쟁취한다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마련될 것입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해법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잘못된 현실을 개선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잘못된 고용형태이므로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합니다. 우선 상시지속 업무인 경우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전환하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입법이 도입돼야 합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도 입법화돼야 차별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습니다. 이런 입법정책이 전제될 때 간접고용 문제 해결도 비로소 가능합니다. 다만 당장 일거에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불가능하므로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법도 추진해야 합니다.

원청사용주의 사용자성 인정이 가장 화급합니다. 진짜사장 나와라가 가장 뜨거운 노동이슈가 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듯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사용주의 책임 회피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2조 사용자 개념을 확장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불법파견은 근절돼야 합니다. 불법이 용인돼선 노동현장의 평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용주가 생사여탈권을 쥔 노사 역관계 속에서 횡행해온 불법파견을 바로잡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중앙정부의 강력한 감독과 제재 역할이 우선돼야 합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가 심각한 건 이미 주지의 사실입니다. 정확한 싵태조사를 통해 제대로 된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 2014년 6월20일 열린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삼성규탄 결의대회 모습.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노동조합 인정과 생활임금 보장,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며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41일 동안 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노조 설립 350여 일 만에 노조를 인정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그리고 노동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합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동지들처럼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조합 활동을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바꿔내야 합니다. 부당노동행위 사업주를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로 인식돼야 합니다. 당사자들이 단결하지 않고는 노사 역관계가 심각하게 기울어진 현재 조건 속에서 문제를 개선할 방도는 거의 없습니다.

올해 다시 투쟁으로 떨쳐나선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동지들과 함께 연대하겠습니다. 당연히 온 힘을 보탤 것입니다. 아니 같은 투쟁주체로 거리낌 없이 동지들과 어깨 걸고 전선에 설 것입니다. 굳게 신뢰하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동지들의 2016년 투쟁이 꼭 승리하길 기원하면서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드립니다. 늘 건승&건투하시길.

2016년 4월 8일 경주시 국회의원 후보 권영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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