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혐오 발언’으로 물들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의 유세 발언 뿐 아니라 처음으로 원내 의석을 갖게 된 기독교 정당은 “동성애·이슬람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상황까지 왔다. 차별과 혐오를 걸러낼 힘이 없는 허약한 민주주의가 이런 혐오 발언이 강화되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정미경 새누리당 후보(경기 수원정)는 최근 유권자에게 배포한 책자형 선거 공보물에서 공약 11개 중 하나로 “통진당 김재연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동성애 보장)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주대준 새누리당 후보(경기 광명을)는 지난 4일 유세에서 “동성애는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적그리스도와 이단들의 전략이며 에이즈가 90% 이상 발생하는 등 국가적 재앙”이라고 말했다고 크리스천투데이가 보도했다. 주대준 후보는 카이스트 부총장 시절부터 차별금지법 저지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1일 서울 팔달문 앞에서 열린 수원 합동 유세에서 정미경 후보를 엎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동성애에 대해 절대 반대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법안 철회를 하는데 적극 앞장섰다”고 주장했다. 지난 4일 JTV(지역민방)가 주최한 총선 후보자 TV토론에서 동성애 관련 주제가 논의된 데에 대한 반론 차원이었다.

기독교계는 이번 총선에서 성적소수자·장애인·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가 차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차별금지법을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기독교계 집단과 언론 등은 “동성애 차별금지법 총선 주요 이슈로 급부상”, “동성애 옹호조장 국회의원 후보 낙선 대상자 명단 발표” 등 적극 대응하고 있다.

지역교계가 움직이며 실력행사도 하고 나서는 분위기다. 이지수 더불어민주당 후보(서울 중성동을)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역 교단에서 후보자 토론회를 하자고 하면서 동성애와 이슬람법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하더라”며 “정해진 답을 듣겠다는 자리인데 듣고 싶은 말을 해줄 수가 없어 결국 불참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혐오 발언’을 무기로 상대 후보 기선 제압에 나서기도 했다. 이군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과 안형환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지난 5일 기자회견과 논평 등을 통해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후보(경기 용인정)의 과거 발언을 연이틀 비판하고 나섰다.

논란이 된 것은 레이디 가가의 내한 공연에 목사들이 반대한 것에 대해 “정신차리라”고 한 글이다. 안형환 대변인은 “종교인은 자신들이 믿는 신앙의 교리와 믿음에 따라 행동하기 마련인데 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려 하지 않고 특정 종교를 비난, 조롱, 모욕하는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고 논평했다.

이군현 총괄본부장은 “천만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종교 지도자를 조롱하고 모독하는 후보, 특정 종교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가득한 후보는 국회의원으로서 심각한 자격 미달”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하는 종교인들을 지렛대로 소수자 인권을 옹호한 표창원 후보가 ‘종교 비난·조롱·모욕’한 것이라고 깎아 내렸다.

▲ 기독자유당의 책자형 선거공보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6일 개최한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토론회에 나선 고영일 기독자유당 후보는 “서울 한복판에서 형법상 경범죄에 해당하는 축제가 벌어진다”, “교과서에서도 동성애를 우호적으로 다루면서 한국은 에이즈 청정국에서 위험국으로 전락했다”, “미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1020세대 에이즈 발병률 90% 원인이 남성 동성애자라는 결과를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의 인권보도 준칙 때문에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몸 가리지 않는 이교도 여인에게 마음대로 성폭행 할 수 있는 이슬람”고 말했다.

박두식 기독당 후보는 “면밀히 검토해 동성애 관련 내용이 든 교과서를 폐기하겠다”, “선거철이기 때문에 보류됐지만 선거 끝나면 익산 할랄(이슬람 푸드) 단지 조성이 다시 제기될 거다, 꼭 폐기하겠다”고 동성애와 이슬람 할랄 단지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선거 공보물에서도 기독자유당은 “동성애 법제화 반대, 이슬람 특혜 반대” 등을 내걸었다. 기독자유당은 경향신문(2면 하단), 국민일보(미션 라이프 섹션지 1면 하단) 등이 같은 내용을 담은 광고도 내보냈다.

이밖에도 서울 종로에 출마한 이석인 무소속 후보는 “의를 위해 목숨 바치겠다”며 “종북, 동성애, 세월호, 19대 국회 척결”을 내세웠다. ‘종북’, ‘동성애’, ‘이슬람’ 등 차별적이고 성적 지향이나 인종·종교 등을 이유로 한 차별과 혐오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한복판에 등장한 것이다.

▲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을 비롯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3일 국회 앞에서 성소수자 혐오·차별에 동조하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혐오 발언보다 강도가 낮은 편견과 선입견에 기댄 발언도 등장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5일 대전 유성을에 출마한 김신호 후보 지원유세에서 “절대 운동권 정당, 야당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대표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8일 이후 ‘운동권 정당은 투쟁적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 집행에 반대만 할 것이다, 나라에 도움이 안 된다’는 내용을 반복해 홍보하고 있다.

심재철 새누리당 후보(경기 안양동안을)는 4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정국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정진후 정의당 후보의 단일화를 비판하며 더민주를 “종북정당 통합진보당의 숙주”라고 맹비난했다.

‘종북’이라는 단어는 법원에서 잇따라 명예훼손 판결을 받은 단어로 사회적 낙인·배척을 통한 차별을 만들어 내는 단어다. 김무성 대표가 쓴 ‘운동권’이라는 단어는 ‘과격·폭력적’이라는 이미지를 야당 후보에게 덧씌우는 역할을 한다. 실제 야당 후보 일부가 사회운동 등에 가담했다는 사실에 기반 해 편견과 선입견을 부추기면서 사회 운동의 순기능은 물론 야당의 다른 측면을 모두 가려버리는 정치적 수사로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종북’과 ‘운동권’ 단어는 정치권에서 자주 사용됐던 차별과 배제를 위한 단어다. 이번 선거에서 이런 수사적 단어를 넘어서 일부 집단에서 통용됐던 소수자를 차별하는 혐오 발언이 공공연하게 등장하고 있다.

선관위는 이런 동성애·이슬람 혐오 발언이 정당한 정당 홍보라고 제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허위사실이나 상대 후보·정당 비방 등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공보물에 실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기독자유당이 지난 3일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창당대회 중 기도 시간을 배정해 기도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 관계자는 또 “종북 좌파 이런 말은 다른 단체에서도 쓰는 말이고 소수자 억압이라는 가치 판단을 선관위가 하진 않는다”며 혐오와 차별 발언을 “정치적 입장”으로 보고 제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헌법 11조 성별·종교·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 금지 조항에 따라 이를 제재해야할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합법 광고라고 정치 광고를 공론장에 공공연하게 싣도록 하는 것은 헌법 유린”이라고 지적했다.

김형완 소장은 이어 “사적 영역에서 신앙적 가치를 서로 나누고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공론장에서 공공연하게 제기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시민사회와 정당, 각 기관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동성애·이슬람 반대류의 발언과 종북·운동권 비판류의 발언을 분류했다. 동성애·이슬람 반대는 기독교 계열의 보수적 유권자 층의 지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선거 기술이고 종북·운동권 비난 발언은 혐오보다 강도는 낮지만 하나의 사실에 기반해 일반적으로 퍼진 편견과 선입견을 강화하는 정치적 수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를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공고한 민주주의 체제다. 신진욱 교수는 “이런 발언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경쟁 집단의 효과적인 공격으로 견제하는 방법과 여론과 언론이 해당 발언의 무책임성을 강조하면서 압력을 가하면 혐오 발언자들도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6일 비례대표 방송 토론회에서 신지예 녹색당 비롇대표 후보는 “이 자리에도 차별적인 정책을 내놓는 정당이 있다, 기가 차다”며 “녹색당은 성소수자, 장애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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