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없고 사람은 있는 녹색당원들이 여의도로 선거운동 왔습니다”

지난 4일 오후 3시, 봄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붐비는 여의도 한강 변에서 녹색당원 10여 명이 ‘정당투표는 15번’ 피켓을 들고 섰다. 녹색 조끼와 정당 홍보 피켓을 챙긴 이들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강변 잔디밭을 가로지르며 행진과 연설을 반복해서 진행했다.

서울 영등포구 지역구 의원 출마자 중 녹색당 후보는 없는데, 이들은 누구일까. 서울 동작갑 이유진 녹색당 후보 선거운동본부는 지역구를 넘나드는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날 오전 동작구 대방역에서 유세를 마친 이유진 후보는 오후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변 유세를 마친 뒤 저녁에는 관악구 신림역으로 향했다.

▲ 지난 4일 오후 여의도 한강변 공원으로 선거운동을 나온 이유진 녹색당 후보. 사진=손가영 기자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서 유례없는 선거운동을 시도했다. 공직선거법상의 틈새를 이용해 ‘지역구 넘나들기’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틈새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하승수 서울 종로구 녹색당 후보다. 공직선거법에는 특정 선거사무소에 등록된 선거운동원이 다른 지역구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막는 규정이 없다. 선거사무소에 등록된 선거용 차량의 경우도 이동 가능한 지역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곽빛나 이유진 후보 선거사무소 사무장은 “한 명이라도 더 유권자를 만나야 하는 절박함에 이 틈새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노동당 후보, TV 토론 참가하기 위해 지역 선거사무소 일일이 방문 노력

또 다른 군소정당 노동당의 신지혜 경기 고양갑 후보는 ‘방송 토론회’에 참가하기 위해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의 후보 사무실을 일일이 방문했다. 신 후보는 이들의 동의없이 토론회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82조 2항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지역구 의원 후보 토론회 참가 자격을 5인 이상 의석을 가졌거나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직전 공직선거 시 3% 이상 정당득표율을 얻은 원내정당의 후보, 중선관위가 정한 언론기관의 여론조사 결과 5% 지지율 이상을 받은 후보, 4년 이내 공직 선거 출마 결과 10% 이상 득표율을 얻은 후보 등이다.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후보는 참가 자격을 가진 후보 모두의 동의를 얻으면 토론회에 참가할 수 있다. 신 후보는 지난달 29일 각 선거사무실에 토론 참가에 동의해달라는 요청서를 발송했고 30일 모든 후보가 동의해 지난 5일 방송된 토론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 지난달 31일 신지혜 노동당 경기고양갑 후보가 후보등록을 하면서 보인 항의 퍼포먼스. 피켓엔 '소수정당 후보는 투명인간?'이 적혀 있다. 사진=노동당 제공

신 후보는 이 불리한 조항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달 24일 후보 등록을 할 때 ‘소수정당 후보는 투명인간?’이 적힌 TV모양 피켓을 들고 선거관리위원회에 항의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노상 선거사무소’ 차린 후보, “소수정당 말리는 선거제도 전면 개혁해야”

녹색당 하승수 서울 종로구 후보는 지난달 24일 광화문 광장에 ‘천막선거사무소’를 차렸다. 군소정당에 불리한 선거제도에 항의하는 퍼포먼스기도 하지만 선거운동자금이 부족해서이기도 하다. 하 후보는 선거기탁금 1500만 원을 제외하고 500만 원으로 선거운동을 치러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500만 원은 서울 종로구 내 선거사무소 임대료를 지불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하 후보가 임대료가 들지 않으면서도 유권자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고 홍보 효과를 노릴 수 있는 광화문 광장을 택한 이유다.

선거천막사무소를 설치한 다음 날 25일 하 후보와 녹색당은 ‘직접 뛰어보니 선거법 말도 안 돼! 선거제도 전면 개혁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법 핵심 문제점 5가지를 규탄했다. 거대 정당이 1, 2번을 차지하고 이후 원내정당이 번호를 부여받는 기호부여제도, 비례대표의 선거운동 방식과 선거운동원 수를 제한한 조항, 배우자·직계 존·비속을 선거운동원 자격으로 둔 조항, ‘돈 선거’ 조장하는 선거비용 보전제도 등이다.

하 후보의 천막선거사무소는 선거운동이 끝나는 오는 12일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하승수 녹색당 후보의 '천막선거사무소' 모습. 사진=최미연 녹색당 당원 제공

설 자리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 소수정당 “유권자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픈 절박함”

이들이 선거법의 틈새를 찾아내거나 야외 광장에 선거사무소를 차리고 경쟁 후보 사무실을 일일이 방문하는 이유는 한 명이라도 더 유권자를 만나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군소정당은 선거자금, 운동원 수, 조직 규모 등 기본적인 선거운동 역량이 거대 정당에 뒤처지는 데다 불리한 선거법으로 인해 유권자를 만날 기회가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역구 넘나들기’ 선거운동은 정당·정책 홍보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는 군소정당의 한 수다. 이유진 녹색당 후보는 “소수정당은 비례제로 국회에 진입해왔는데 선거법상 비례후보들은 마이크도 못 쓰고 명함만 돌릴 수 있는 등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이 너무나 제한적”이라고 토로했다. 이 후보는 현행 선거법상 비례대표 후보가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은 ‘명함돌리기’라고 지적했다. 비례대표 후보는 확성기를 쓸 수 없고, 전체 비례대표 후보를 통틀어 가용 가능한 선거운동원은 34명이 최대다. 지역구 후보 한 명이 50여 명의 선거운동원을 두는 데 비해 매우 적은 규모다.

곽빛나 사무장은 “큰 정당은 대부분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만 군소정당은 그렇지 못해 거기서부터 정당 홍보 효과 차이가 난다”며 “지금의 틀로는 거대 정당을 뚫고 들어가기 힘들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절박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녹색당의 지역구 출마 후보자 수는 5명이다.

‘토론회 자격권을 따내는 것’도 마찬가지의 한 수다. 정당의 정책과 색깔을 유권자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인 TV 토론은 유권자와 접촉할 기회가 적은 군소정당에 반가운 기회다. 신지혜 노동당 후보는 “의원도 없고 비례 대표 의원도 없는 당은 토론 기회 자체가 차단돼 버린다. 군소정당은 여론조사 대상으로도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지지율이 얼마인지 아는 것도 불가능하니 거기서 또 차단되는 것”이라며 “선거법은 소수정당을 계속 소수정당으로 남게끔 돼 있다”고 지적했다.

▲ 녹색당은 3월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하승수 녹색당 종로 후보 천막 선거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상식적인 선거제도, 이제는 시스템을 뜯어고칠 때"라고 주장했다. 사진=녹색당 제공

실제로 녹색당의 이유진 후보는 참가 자격을 가진 동작갑 출마 후보들 모두의 동의를 받지 못해 토론회에 참가하지 못하고 토론회가 끝나고 방영되는 10분 방송연설 기회만 얻을 수 있었다. 같은 당 홍지숙 녹색당 경기 의왕·과천 후보도 토론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군소정당 후보들은 한목소리로 “선거법이 출발선에서부터 불평등을 낳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선거는 ‘돈 선거’”라고 일축한 신지혜 후보는 군소정당 후보의 열악한 입지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정당사무소를 빌리는데 임대료가 든다. 외벽 현수막을 걸 수 있는 빌딩을 잡으려면 돈이 그만큼 들고, 현수막에 가려지는 다른 사무실엔 사례비를 주는 경우도 많다”며 “선거공보물은 최소 600만 원이 드는데 필수로 보내야 할 세대주 수가 정해져 있으니 돈이 없는 정당은 페이지 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거대정당은 8~12페이지를 내는 반면 군소정당은 1~2페이지를 낸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 후보는 “예비 후보 기간에 보내는 홍보물도 우편요금을 후보가 다 부담해야 하는데 우편 요금만 400만~500만 원 수준이다. 유급선거사무원 일당은 7만 원이라 돈이 없는 정당은 대부분 당원들이 자원한다”면서 “(시 여러 개가 묶인 선거구는) 시마다 ‘선거연락소’를 둘 수 있는데, 선거연락소마다 방송차량, 선거사무원을 따로 둘 수 있다. 돈이 있는 정당은 그만큼 연락소, 사무원, 차량을 준비해 (선거운동을) 잘할 수 있는 것”이라 지적했다.

이런 상황을 강화하는 것은 ‘선거자금 보전제도’다. 선거법은 득표율이 전체 유권자의 15%를 넘는 후보에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하고 10%를 넘는 후보에겐 절반을 보전한다. 15% 이상 득표율을 기대할 수 있는 거대 정당의 후보들은 비용 걱정 없이 선거운동원, 선거차량, 공보물, 현수막 등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거대정당과 군소정당의 ‘선거운동 출발선’을 가르는 핵심적인 문제 조항이다.

군소정당 후보들은 “기탁금은 똑같이 1500만 원을 내는데 기회는 차별적”인 구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당장 출발선을 완벽히 동일하게 만들 수 없다면 군소정당이 차별받는 현실을 고려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토론회 등 선거관리위원회가 관여하는 공적인 자리에 군소정당의 참여 기회를 보장하거나 후보와 유권자가 만날 수 있는 공식 행사를 증가시키는 방안이 제기된다. 비례대표 후보자에게 확성기 사용을 허가하거나 배우자, 직계 존·비속 중심의 선거운동원 자격 부여 제도를 폐지하는 것도 거론된다.

이유진 녹색당 후보는 “똑같이 기탁금을 냈는데 각각 입장 물어보고 토론하게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냐. 다른 후보가 반대한다고 토론회를 못 나가는 게 공정하냐”면서 “각 후보가 어떤 정책과 입장을 갖고 있고 이 지역 문제는 어떻게 풀 건지를 나란히 앉혀놓고 대여섯 번 검증하며 (유권자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선거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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