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자작곡의 여성비하적 표현으로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바 있는 중식이 밴드를 두고 정의당 내 당원 갈등이 거세지며 일부 당원을 중심으로 여성, 페미니즘을 향한 적대적 발언이 제기되는 가운데,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들이 “이런 사태를 묵과하는 정의당의 무책임한 모습”을 비판하고 나섰다.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녹색당 여성특별위원회는 5일 공동성명 내 “정의당과 중식이밴드의 협약보다 이후 당 내외 논쟁을 침묵으로 일관하는 정의당 중앙당의 모습에서 참담함을 느낀다”며 “정의당 대표단은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당이 아니다'라는 단언, ‘인간 이전에 성평등이란 말인가?’라는 반문 등 정의당원들의 반응에 진지한 답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녹색당 여성특별위원회가 4월5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사진=노동당 홈페이지

논란은 지난달 29일 정의당의 중식이밴드와 협약을 통해 만든 로고송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일부 누리꾼들이 중식이 밴드의 과거 자작곡 중 여성비하적 표현을 거론하며 ‘여성혐오’ 비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부분은 ‘좀 더 서쪽으로’라는 노래 중 ‘넌 비싸 보이기 위해 치장을 하고 싸구려가 아니라 말한다. 난 말이 통하게 명품을 줘도 쉬운 여자 아니라 말한다’는 구절과 ‘리벤지 포르노’를 노래 가사로 담은 ‘야동을 보다가’ 등이다. 리벤지포르노는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온라인에 유포시킨 성관계 사진·영상을 뜻한다.

이를 둘러싼 당내 갈등과 정의당을 향한 비판이 거세짐에 따라 정의당 여성위원회는 지난 2일 논평을 내 “자작곡의 일부가 대중들이 보기에 성차별적이며, 여성을 대상화시키는 내용이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므로 당은 이번 선거송을 ‘중식이밴드’와 공식협약을 맺는 과정에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중식이밴드’가 갖고 있는 인식의 한계와는 별개로 이번 상황은 당에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위원회는 “당의 모든 사업과 정책은 중앙당의 개별 부서에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당에서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여성위원회가 해당 밴드 자작곡의 표현을 ‘성차별적’이라 인정한 것과 ‘당 차원의 책임’을 강조한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일부 당원들의 반응이었다. 당원 게시판에 여성위원회를 향한 적대적 표현과 비아냥거림, 그리고 급기야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당이 아니’라는 단언이 글과 댓글로 개진됐기 때문이다. 정의당 강령은 '성평등한 사회'를 명시하고 있다. 

노동당과 녹색당 여성위원회는 이에 대한 정의당 중앙당의 침묵을 비판하며 “진보정당이라 해서 항상 정치적으로 옳은 판단만 하는 것은 아니”라며 “정당은 사람들의 비판 속에서 성장하며, 비판을 거름으로 사용할 때 더 정의로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중식이 밴드의 여성혐오 논란을 두고 정의당 내 당원 갈등이 거세지면서 일부 당원을 중심으로 여성, 페미니즘을 향한 적대적 발언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사진=정의당 당원게시판 캡쳐)

이어 이들은 총선 국면에서 당을 향한 비판을 자제해야 한다는 일부 정의당 내 주장에 대해 “정의당의 침묵으로 지켜지는 것이 4․13 총선 득표율일 리 없다”면서 “정의당이 이번 일을 시작점 삼아, 한국사회 내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해 성찰하기를 바란다. 중앙당 차원의 책임 있는 사과와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양당의 여성위원회는 “친밀한 남성에 의해 살해당하는 여성이 최소 이틀에 한 명이라는 현실을 ‘긴박한’ 문제로 감지하기를 바라고, 중식이밴드에게는 선거 이후 리벤지포르노 근절 캠페인에 동참할 것을 제안한다”며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의 진보정당들이 더욱 치열하게 여성주의를 고민하고, 성찰하기를 희망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5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협약을 맺은 건 중식이 밴드의 곡이 청년세대의 아픔, 세월호, 용사참사 등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한 것이다. 불거진 문제와 관련해선 당에서 고민이 많다”면서 "진보정당으로서 왜 이 부분을 고려하지 못했냐는 비판을 포함해 당원, 여성단체, 청년문화단체, 당 내외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서 냉정하게 평가하고 서로 성찰할 수 있는 자리를 선거 이후에 가지려 한다. 그 이전에 또 소통의 왜곡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당원에게 드리는 글 등의 형식으로 1차적인 입장을 낼 생각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곡을 직접 쓴 중식이 밴드의 박중식씨는 지난 1일 개인 블로그를 통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여성이 가진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고 노래를 만든 점’, ‘정작 여성의 고통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 노랫말에 같이 기록하지 못했던 점’ 등을 간과한 부분이라 밝혔고 “좀 더 어른스러워지겠다.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명글 중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은) 피해의식을 가진 여자들이겠거니” 등의 언급으로 인해 제대로 된 해명에 나서라는 비판을 다시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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