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대선개입 사실이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지난 2013년, 정수연 후보는 곧장 거리로 나갔다. 대선개입 정황이 검·경을 중심으로 은폐되는 가운데 언론의 침묵을 견딜 수 없어 직접 사실을 알리러 나선 것이다. “여론조작 대선개입 국기문란 국정원은 해체하라” “원세훈과 관련자는 즉각 구속하라” 이슈가 된 정 후보의 광화문 광장 기습 시위는 이후 대학 총학생회 등 청년들의 시국선언 물꼬를 트는 데 일부분 기여했다. 정 후보는 지난 1년 동안에도 ‘위안부 문제 졸속 타결’ 한일 합의 무효화,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운동에도 앞장서왔다.

인터뷰 내내 “광장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던 정수연 후보는 민중연합당 20대 총선 비례대표 1번 후보이자 당 대변인이다. 정당 번호 16번을 받은 민중연합당은 지난 2월 창당된 신생정당이지만 11개 시·도당과 2만7천여 명의 당원을 가진, 원외 진보정당으로선 가장 큰 당세를 가졌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민중연합당 당사에서 정수연 후보를 만났다.

“왜 19대 국회는 박근혜 정부에 제동을 걸지 못했나”

▲ 4월4일 서울 영등포구 민중연합당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정수연 후보. 사진=이치열 기자

정수연 후보는 ‘연합정당’, ‘99%의 정치’ ‘박근혜 정부 심판’으로 민중연합당을 설명했다. 민중연합당은 청년들이 모여 청년 문제 해결을 주장하는 ‘흙수저당’, 농민들이 모인 ‘농민당’, 비정규직철폐 등 노동권을 주장하는 ‘노동자당’ 등 하위 모임의 연합으로 구성돼있다. 정 후보는 “당 자체를 아직 체계적으로 꾸리진 못했지만 ‘시리자’나 ‘포데모스’ 같은 연합정당 형태를 한번 시도해보자면서 시작했다. 민중연합당은 한국 최초의 연합정당 시도”라면서 “엄마들이 주체가 된 엄마당도 있고 예술인당, 보건의료당도 준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 농민, 노동자 등 정당을 구성한 주체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민중연합당은 기득권의 반대편에 선 ‘99% 서민’을 대변하려 한다. 민중연합당이 20대 총선에서 주요하게 거는 정책도 과표 1천억 원 넘는 법인에 대한 증세와 세금감면 중단, 사내유보금 과세 등으로 이뤄진 ‘재벌세 도입’이다. 정 후보는 “1%의 독점적인 정치, 경제 등 재벌 중심의 한국 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한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면서 “노동당, 녹색당은 보편복지에 더 방점을 찍지만, 민중연합당은 재벌과 정부과 완전히 결탁한 구조와 족벌이 된 재벌구조를 타파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민중연합당이 이번 총선에 임하는 목표는 ‘박근혜 정부 심판’이다. 정 후보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독재’와 ‘무능’을 언급했다. 그는 “63일 동안 위안부 소녀상 지킴이로 농성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이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봤다. 위안부 문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여론조사만 봐도 과반의 국민이 반대했다”면서 “이런 사안조차 사회적 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였다. 독재라 할 수 있고 이런 부분은 심판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메르스 수습 실패’나 청년실업률 기록이 경신되는 사실을 지적하며 정 후보는 “무능한 정부의 행정에 대해 평가하고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중연합당이 정부 심판론을 강조하는 이유엔 ‘국회의 우경화’라는 문제의식도 있다. “아무도 박근혜 정부 심판을 말하지 않는 국회”에서 진보정치의 씨앗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 후보는 세월호 특별법, 테러방지법, ‘노동개악’ 강행 등의 국면을 언급하면서, “야권은 매번 ‘의석수가 부족해 못한다, 힘이 없다’고 한다. 야당의 역할은 국민들이 함께 싸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전략을 제시하고 손을 잡는 것인데 전혀 역할을 못했다”면서 “광장을 나오려는 국민들에게 패배감, 회의감만 줬다. ‘들 야’ 자를 쓰는 야당이 들에 있지 않고, 국민을 믿지 않은 결과”라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 꼬리표 따라붙어, “이석기 키즈? ‘종북 낙인’ 두렵지 않다”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에 대한 비판도 자연히 제기됐다. 정의당 또한 ‘야권’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정 후보에게 정의당은 ‘진보정치를 해내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금기를 넘어서는 도전을 하고, 그러면서 시대의 변화 발판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의 정의당은 금기 안에서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체포 국면을 정의당이 외면한 것과 제주 ‘강정마을’ 폭력진압 책임자로 지목되는 윤종기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이룬 것을 거론하며 “진보정치라고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차이가 없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아야 하는 게 진보정치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 4월4일 서울 영등포구 민중연합당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정수연 후보. 사진=이치열 기자

2014년 헌법재판소의 해산결정 전까지 원내 진보정당 역할을 한 통합진보당에 대한 입장은 어떨까. 통합진보당 당원과 당 간부가 상당수 속해 있는 민중연합당은 ‘통합진보당의 재건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 후보는 “흙수저당의 경우 전혀 새로운 구성이다. 대부분이 처음 정당을 가져보는 스무 살, 스물한 살 친구들로 소녀상 지킴이나 국정화 교과서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대학생, 알바노동자 권리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 등 새로운 세력이 모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정 후보는 “통합진보당 해산 당시 당원이 10만 명이었다. (진보세력 중) 가장 큰 진보정당이었던 통합진보당의 지붕을 거쳐 가지 않은 사람도 찾기 힘들다”면서 “그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우리 삶의 변화를 위한 꿈을 잃지 않았다. 헌재가 해산 결정을 할 때도 이들이 정치적 배제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고 헌법 11조도 모든 국민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정 후보 또한 통합진보당 당원 출신으로, 조선일보가 ‘이석기 키즈’라 부르는 등 보수언론으로부터 색깔론 공세를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정 후보는 “당에선 우려하지만 나는 세게 맞받아치고 싶다. ‘종북이라는 낙인, 그까짓 거’라는 거 보여주고 싶고 사람들에게 ‘쟤들이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길 하네.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대신 해주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 진보정치의 역할을 다 해낼 것”이라며 “조중동이나 종편의 프레임은 두렵지 않고 충분히 예상했다. 내가 넘어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후보가 통합진보당 이력을 밝히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강제해산된 정당인데 누가 내세우려 하겠으며 굳이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다뤄질 거라 생각했다”면서 “민중연합당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정당이라는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보수언론에서는 우리의 입장을 거론해주지 않지만, 균형있게 다뤄준다는 언론마저도 민중연합당에 대해 이도 저도 다뤄주지 않으니 속상하다”며 “언론이 (우리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런 것들 물어봐 주면 담백하게 대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약사’의 길 버리고 택한 진보 정치, 63일간 노숙하며 ‘위안부 소녀상’ 지키기도

약학을 전공한 정수연 후보는 ‘약사’라는 고소득 전문직의 길보다 진보정당 정치인의 길을 택했다. 대학생 때부터 학생회 활동, 건강권 및 의료민영화 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해온 정 후보는 ‘정치’에 꿈을 가진 계기로 과거 쪽방촌 봉사 경험을 말했다. 그는 “창신동 쪽방촌에 매주 투약 봉사를 나갔는데 어느 순간 나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 오랜 시간이 걸려 겨우 관계를 맺은 한 아저씨가 계신데 4대강 예산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받던 기초생활수급비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쪽방촌 월세도 감당할 수 없어 비닐하우스촌으로 이사 갔다”며 “내가 사람들에게 약을 매개로 건강하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감기약, 근육통약 주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의 역할, 진보정치의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 매일 밤 아르바이트 청년 노동자를 만나고 있는 정수연 후보. 사진=정수연 후보 페이스북

정 후보는 지난 3년간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지지하고 돕는 ‘평화나비’ 활동에 매진해왔다. 그는 현재 30여 개 대학에서 활동하는 ‘평화나비 네트워크’를 처음 만들 때부터 함께 한 초동멤버면서 ‘평화나비 콘서트’, ‘평화나비 마라톤대회 런’ 등 대학생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는데 애써왔다. 그러면서 지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국면에서는 국정교과서 저지 청년학생네트워크의 상황실장을 맡아 반대운동에 함께 했고, 12월29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졸속으로 타결한 한일 합의 이후 63일 동안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는 소녀상지킴이로 활동했다.

정 후보는 “(국회에 가면) 이 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다. 한국 국민이라면 당파, 이념을 떠나 함께 해야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며 “초당적 해결 기구를 마련하고 한일 합의 무효 선언을 이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많은 국민들이 우리 동네에도 소녀상을 세우자고 하는데, 이런 운동에 대한 국회차원의 적극적 지원도 필요할 것”이라 밝혔다.

“민중연합당 3석 목표… 새로운 정치는 청년이 만들 수 있다”

‘흙수저 방지법’을 주장하는 정 후보는 청년 문제 해결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중연합당의 제1번 법안인 흙수저 방지법은 ‘등록금 100만 원 상한제’, ‘미취업자 졸업 즉시 실업급여 수령’, ‘근로장력세제 청년 1인 가구 적용’, ‘18세 피선거권 연령 인하’ 등 정책이 포함돼있다. 매일 저녁 청년 아르바이트 현장을 돌며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는 정 후보는 “반응이 좋은 공약은 등록금 100만원 상한제, 졸업 후 실업급여 지급이다. 최저임금 1만 원도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를 재설계하는 시작점이 청년문제에 있다”고 진단하며 “20대 국회는 19대 국회처럼 게으르고 무능해선 안된다”고 비판했다. 정 후보는 “19대 국회에서 청년과 관련해 통과된 법안은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30년 된 군대 수통 교체’ 법안밖에 없다”면서 “언론이 1년 내내 청년 문제 기획을 쏟아냈고 청년 관련한 온갖 수치들, 실업률, 자살률 등의 기록이 경신되고 있는 와중이었다”고 지적했다.

정 후보는 당의 대변인으로서 민중연합당의 총선 목표를 ‘원내 진출’이라 꼽으며 정당 득표 100만 표를 얻어 원내 3석을 확보하는 것을 구체적인 목표라 밝혔다. 즉 비례대표 1번 후보인 자신을 당선 가능권 내로 봤다. 이에 대해 그는 “마음이 무겁지만, 국회에 들어간다면 국민의 편에 절대적으로 서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광장을 보장하고 국민들과 함께 싸울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는 역할, 야당이 힘있게 싸울 수 있게 만든 진보정당의 역할을 할 것”이라 말했다.

청년 정치인인 정 후보는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가는 역할은 새로운 세대의 책임이다. ‘누구의 키즈’도 아니고 ‘청년이 나섰으니 좋게 봐달라’는 말도 아니고, 우리 세대와 내 책임이라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청년 당사자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싶고, 그 기대에 대해 끈을 놓지 않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

민중연합당이 앞으로 만들어 갈 새로운 정치에 대해 그는 “통합진보당의 분열에 대해선 평가하고 넘어갈 것이 많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각자의 콘텐츠를 가진 세력들이 만나 강화·발전할 수 있는 ‘연합정당’”이라며 “‘이중 당적 금지’ 문제 때문에 당장 실현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총선에서 실험적 모델을 보여주고 다음 지방선거, 대선에서 조금 더 다른 모델을 시도해 볼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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