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우리 그냥 춤추고 놀아요.”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이른 봄 2일 오후 4시13분, 서울 신촌 차없는거리에는 흰 면 장갑을 낀 청년 20여명이 모였다. 이들이 낀 면 장갑에는 투표 도장 무늬가 그려져있다. 이들이 모인 시각인 4시13분은 제20대 국회의원선거가 예정된 4월13일을 의미한다.

“5, 4, 3, 2, 1. 4시13분입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이들은 “우리는 변화에 투표하겠습니다” 라고 외쳤다. 이어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발길을 멈추고 이들의 밝은 몸짓에 눈길을 던졌다.

▲ 서울 신촌 차없는거리에서 총선청년네트워크의 'VOTEr DAY(보터 데이) 행사가 열렸다. 사진=차현아 기자.
총선을 앞두고 청년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2일 오후 총선청년네트워크는 청년유권자위원의 날 ‘VOTEr DAY’ 행사를 열었다. 총년청년네트워크는 고려대 총학생회, 동네형들, 뜨거운청춘, 민달팽이유니온, 청년유니온, 민주주의 디자이너, 서울대 대학원 총학생회, 연세대 사회대 학생회 등 20여개 청년 단체들이 모인 것이다.

이날 오후2시부터 시작된 총선청년네트워크의 행사는 신촌 창천문화공원과 차없는거리 등에서 플래시몹과 야외 오픈테이블로 진행됐다.

야외 오픈테이블은 청년참여연대, 청소년유니온, 청년유니온, 민달팽이유니온 등 7개 청년단체가 차없는거리에 부스를 마련하고 게임과 서명운동 등을 통해 청년 관련 정책에 대한 관심과 청년의 총선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꾸려졌다.

민달팽이유니온은 보드게임인 부루마블을 본따 만든 게임인 ‘주(宙)토피아’와 ‘주(宙)루마블’을 만들어 눈길을 끌었다.

‘주(宙)루마블’은 주거취약계층에 머무르게 된 청년들의 현실을 반영해 만든 게임이다. 원룸과 기숙사, 고시원, 공공임대주택 등 다양한 주거환경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자율성과 방음, 상하수도 문제 등의 상황이 닥치면 지속적으로 지출부담을 져야 하는 현실을 여실히 반영했다. 친구를 집에 데려오거나 집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만큼의 주거 환경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그때마다 주거비가 조금씩 추가되는 식이다. 게임에 참여한 기자도 파산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경기청년유니온은 야외 부스에서 지난해 5월부터 7월까지 진행했던 경기도 청년 출퇴근 비용 실태조사 결과를 전시했다. 이들의 조사 결과 경기도에 거주하는 청년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귀가한 뒤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1시간35분에 불과했다. 하루 평균 166분의 이동시간과 67.3km의 평균 이동거리 때문이다. 경기도의 청년들이 이런 부담을 감수하고 서울에서 직장을 구하는 이유는 그만큼 경기도 내의 일자리 수준이 서울보다 낮기 때문이다.

경기청년유니온은 결국 일자리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며 그 중의 한 대안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부스에서 진행했다. 서명에 참여한 장지해(35)씨는 “워낙 임금도 낮아 살기가 힘들다. 휴대폰비나 교통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서명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 총선청년네트워크에 참여한 단체인 경기청년유니온, 민달팽이유니온, 민주주의 디자이너X신촌동 정치꾼, 청년유니온(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의 오픈테이블 행사. 사진=차현아 기자.
'민주주의 디자이너'와 '신촌동 정치꾼'이라는 단체는 연세대 학생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졌다. 민주주의와 정치 시민교육을 공부하던 모임에서 시작한 두 단체는 이번 총선청년네트워크를 계기로 함께 정치 참여 캠페인에도 나섰다. 이들은 오픈테이블에서 ‘OO을 위해 투표하겠습니다’ 쪽지 쓰기나 총선 참여 지장찍기 등의 행사를 진행했다.

'민주주의 디자이너'의 대표인 이지수(23)씨는 “청년들이 겪는 문제는 많지만 이에 대한 공약도 정책도 부족하다. 등록금문제가 대표적이다. 정책으로는 반값등록금이 실현됐다고는 하나 실제로 체감하는 청년들은 거의 없다. 등록금 문제를 포함해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번 오픈테이블 부스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유니온은 청소년의 노동환경에 대한 정책이 필요하고 주장했다. 이들은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청소년유니온에서 활동 중인 김종하(23)씨는 “총선에서 청소년 문제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청소년의 30%가 일 경험이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도 노동권이 있고 이를 보호해줘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이들을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조사하고 이를 촉구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사진=차현아 기자.
이들의 행사는 가벼워진 행인들의 옷차림만큼이나 밝고 활기찬 분위기 가운데 진행됐지만, 그 취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오늘 행사는 청년이 단순히 사회 의제의 일부로 수동적으로 호명되고 있는 현실에서, 청년 스스로가 주체로서 나서고 투표를 통해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이번 행사에 참여했던 김권태(22)씨는 “길 가다 우연히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청년문제는 심각한 상황인데 청년들이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총선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희중(23)씨도 “청년 입장에서는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치 환경은 청년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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