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씨 9주기가 있는 올해 3월을 '삼성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달'로 지정하고 한 달 동안 추모 행사를 열어왔다. 지난 3월31일 추모 기간을 마무리하는, 고 황유미 9주기 삼성전자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달 문화제 '우리가 이긴다고 봄'이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렸다. 아래 글은 이날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일하다 전신홍반성 루프스 직업병을 얻은 구성애 씨가 문화제에 보낸 편지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신 홍반성 루프스를 앓고 있는 구성애라고 합니다. 반올림이 작년 9월부터 시작했던 반올림 직업병 피해자 이어말하기의 손님 중 다발성경화증에 걸린 김미선 씨의 사연이 유독 마음에 남습니다. 미선씨는 19살 꽃같이 예쁘고 여린 나이에 기흥 삼성 반도체에 입사해서 창도 없는 작업장에서 3교대로 근무하며 납과 유기용제 등으로 인해 희귀난치성질환인 다발성경화증의 발병으로 시력을 잃어 시각장애1급 판정을 받았다고 얘기했습니다.

저 또한 1994년 11월4일 기흥삼성반도체 중에서도 직업병 피해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3라인에서 5년 정도를 근무하였고, 원인 모를 희귀질환으로 퇴사 후 고통의 날들이 시작됐습니다. 숨을 쉰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니며, 죽는 것보다도 못한 삶. 배가 고파 밥을 먹는 것이 아니고, 빈속에는 약을 먹을 수 없어,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 삶이 전직 반도체 노동자의 삶입니다. 삼성은 일말의 미안한 마음이라도 있을까요?

▲ 3월31일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고 황유미 9주기 삼성전자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달 문화제 '우리가 이긴다고 봄'이 열렸다. 구성애씨의 산재보험 신청을 대리하는 김승현 노무사가 편지를 대독했다. 사진=반올림 제공

삼성반도체 19살 애들에게는 과분할 만큼 많은 급여와 보너스 선물들을 주었지요.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주지 않았습니다. 반도체에서 얼마나 위험한 물질들을 다루는지 건강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등 안전교육은 전혀 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뿐만이 아닌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소리입니다. 이러한 삼성반도체의 안일함 때문에 반올림에 제보한 이들만 200명이 넘고, 그중 76명이 사망했다는데, 삼성은 여전히 가만히 있다니요.

진정한 사과, 배제 없는 보상이 그렇게 어려운 건가요? 피해자들은 진정한 사과를 원한다는데, 올해 초 겨우 도장 찍은 재발방지대책을 제대로 집행하라는데! 또, 그동안 병마와 싸우며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직업병피해자들과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배제 없이, 충분한 보상을 해주시면 좋겠다고 매일매일 바로 코앞에서 외치는 데 안 들리나요? 듣고도 못 들은 척 하나요?

형식적인 유감 표명으로 사과는 다 했다. 자신들 멋대로 기준을 만들고, 피해자를 가르며, 얼마의 돈을 내밀며 더 이상의 문제제기 하지 말라고 피해자의 입을 막아놓은 삼성, 또 그것을 ‘삼성직업병 문제 해결’이라며 언론플레이를 하는 삼성, 그러지 마십시오. 삼성 측도 해결방안이 무엇인지 무척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3월 추모의 달을 맞아 피해자들이 농성에도 모자라 연좌시위를 했습니다. 몸이 불편한데도, 꽃샘추위가 여전한데도, 자식을 잃어 여전히 가슴이 시린데도 삼성 홍보관 앞에 자리를 잡았다 합니다. 투병으로 집 밖도 제대로 나서지 못해 함께 하진 못했지만, 마음만은 그곳에 함께하였습니다.

농성장에 꽃이 피었다 하더라고요. 꽃샘추위에도 봄 햇살이 간혹 느껴지고, 옅은 꽃향기가 전해져 오는 걸로 보아 머지않아 완연한 봄이 올 듯합니다. 겨울이 제아무리 추워도 봄바람이 못 녹이는 겨울이 언제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요. 삼성의 오만함이 아무리 하늘을 찔러도 저는 “우리가 이긴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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