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지난달 31일 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진보정당들도 각각 원내진입, 의석확대 등을 목표로 총선 출사표를 던졌다. 현 19대 국회에 의석을 둔 진보정당은 5석을 가진 정의당이 유일하다.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진보당 의원 5명이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원내 진보정당의 존재감은 급격히 축소됐다. 노동당, 녹색당, 민중연합당, 복지국가당, 정의당 등 5개 진보정당은 진보정치의 확장을 꾀하며 총선에 임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스스로의 역량 외에도 뛰어넘어야 할 벽이 많다. 소선거구제와 다수대표제가 만들어 낸 거대정당 중심의 선거 제도와 지난 3월 선거구 획정에 따른 인한 비례대표 의석수 축소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선거운동에 돌입한 각 정당의 상황을 들어보았다.

노동당 “‘최저임금 1만 원, 5시 퇴근, 기본소득 지급’ 패키지 도입”

▲ 디자인=이우림 기자

지난 19대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2%를 넘지 못해 정당등록이 취소됐던 노동당은 20대 총선에서도 2%를 확신하기 힘든 상황이다. 노동당은 당선 가능성과 별개로 제1번 공약 ‘불안정·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 종식과 연대적 노동사회 실현’을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것을 총선의 목표로 두고 있다. 박종웅 노동당 언론국장은 31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정당득표율을 통해 비례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이 목표”라 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2%를 얘기하기도 한다. 이 2%는 노동당의 정책과 주장이 사회적 의제가 되는 바로미터같은 의미”라고 말했다.

서울 은평, 경기 고양, 대전 유성 등 지역구 9곳에서 당 총선 후보가 뛰고 있지만 당선 가능성이 보다 높은 쪽은 비례대표 후보다. 노동당의 비례대표 1번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을 이끌었던 용혜인(26) 후보이고 2번은 알바노조 위원장으로 ‘최저임금 1만 원’ 운동을 한국 최초로 시작했던 구교현(38) 후보다. 용 후보는 기본소득, 최저임금 1만 원, 등록금 무상화 등 청년 정책을 대변하고 구 후보도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포함한 비정규·불안정 노동 의제를 대변한다.

노동당은 ‘최저임금 1만 원과 5시 퇴근법’은 이번 총선의 핵심 공약이면서 당의 경쟁력이라고 평가했다. 박 언론국장은 “노동당은 단편적인 공약을 선전하기 위해 이것저것 마련하는 게 아니라 ‘총체적인 경제 대안’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장흥배 정책실장은 “사회경제 체제를 전환하자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핵심 정책을 마련했다”며 “박정희 정권의 수출주도성장이 IMF 위기 이후까지 지속되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 내수를 상당히 희생하는 ‘임금 억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비정규직 증가, 노동시장 유연성이 맞물려 임금소득 하락은 가속화됐고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 빚을 내서 지출하는 부채의존소비를 하게 된 것이 지금의 한계상황”이라고 밝혔다. 장 정책실장은 노동소득을 늘리기 위해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고 저성장 시대의 유일한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도입하면서 전체 임금소득이 하락하지 않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패키지’가 노동당의 정책공약집의 근간이라 지적했다. 그는 실업,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점철된 청년 문제도 이 패키지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당은 정당지지율 확보에 방점을 찍고 선거운동을 해나갈 예정이다. 노동당은 31일부터 선거 전날인 4월12일까지 정당번호 14번에 맞춘 14개 의제를 하루에 하나씩 선전하는 선거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의제는 20대 국회에 꼭 필요한 입법 의제로 정했다. 박 언론국장은 정당지지율 2%를 넘기 힘들 정도로 낮은 인지도 문제를 직면한 상황에 대해 “노동당의 정치가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지는 것이 그것을 넘는 방법이 될 것”이라 지적했다.

녹색당 “분명 하나쯤 그런 정당이 뚫고 나온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4개 정당은 다음 국회에 또 들어간다. 확실하다. 누가 1등이고 몇 석씩 가지는지만 다를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20대 국회 꾸리면 19대 국회보다 뭐가 그렇게 나아지나? 결국 마지막 한 수가 필요하다.”

녹색당이 보는 ‘한 수’는 녹색당의 의회 진출이다. 녹색당의 선거운동 방점도 ‘정당득표율 3%’에 찍혀있다. 당원 수 1만 명으로 네 정당 중 가장 규모가 작은 정당인 녹색당은 지난해 12월에 비례후보를 결정하는 등 제일 먼저 총선준비를 끝냈다.

정당 슬로건도 ‘분명 하나쯤 그런 정당이 뚫고 나온다’이다. 이에 대해 김수민 녹색당 총선대책본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녹색당은) ‘권력을 주면 잘하겠다’가 아니라 국회의원이 없을 때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왔다. 이런 정당이 국회에 소수라도 존재한다면 기득권 정치를 청산하는 데 크게 일조하지 않을까”라면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문제들이 정치의 주요 주제가 된 적이 없었다. (녹색당은)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를 정치의 본질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녹색당은 자신의 경쟁력을 다른 정당과 선명하게 구분되는 정책·노선에 둔다. 김 대변인은 “노동당이 ‘노동중심성’을 가지고 민중연합당이 민족주의적 측면이 있고 정의당은 복지국가 지향적이라면 녹색당은 이런 부분들이 담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 생태적 전환을 지적한다”며 “단순히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 평균임금 올리겠다가 아니라 기본소득을 먼저 얘기하고 충분히 자기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과도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등 우리의 삶의 기반을 먼저 확보하자는 것으로 노동중심, 복지중심과 구별된다”고 지적했다.

이 당의 비례대표 후보 1번은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를 파헤친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연출한 황윤 감독이다. 황 후보는 동물권과 문화예술 정책의제를 대변한다.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2번 이계삼 후보는 탈핵·탈송전탑 의제를 대표한다. 피선거권이 부여되는 최저연령 만 25세 김주온 3번 후보는 기본소득 운동가로, 녹색당의 주요 정책 기본소득과 청년 의제를 대표한다.

녹색당의 제1 과제도 인지도 극복이다. 김 대변인은 지역구 후보를 많이 내지 못한 점을 우려했다. 군소정당의 경우 상대적으로 선거운동에 제약이 덜한 지역구 후보가 정당 홍보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역구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다른 지역을 넘나들며 선거운동을 할 계획이다. 이에 대한 규제가 없는 현행 선거법의 틈새를 찾아냈다”면서 “SNS,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고 시간 날 때마다 당원과 지지자들이 지인 한 명에게라도 더 녹색당을 알리는 구전 효과를 노릴 것”이라 밝혔다. 김 대변인은 ‘기본소득’이나 ‘녹색정치’ 등 녹색당의 의제에 낯섦을 느끼는 유권자에게는 “초미세먼지 문제, 기후변화나 밥상 먹거리 문제 등 공감하기 쉬운 문제로 다가갈 것”이라 지적했다.

이들의 목표는 정당득표율 3% 이상 원내진입과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녹색정치를 정치의 본질로 만드는 것이다.

민중연합당 “박근혜 정권 심판 얘기하는 야당 하나 없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민중연합당은 ‘박근혜 정부 독재 심판’을 전면적으로 내세운다. 송명숙 민중연합당 공보담당은 지난 31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박근혜 정권 심판을 얘기하는 야당 하나 없다. 타협하지 않고 싸우는 진짜 진보정당에 힘을 주고 키워달라 할 것”이라면서 “국회는 우경화돼 있고 진보정당은 씨가 말랐다. 원내 진입해서 의회에 진보정치 뿌리를 내리는 것이 목표”라 말했다.

‘1%에 맞서는 99%의 직접정치’ 기조를 내건 이 당은 청년정당 ‘흙수저당’, 농민정당 ‘농민당’, 노동자정당 ‘노동자당’ 등이 연합한 정당이라는 사실과 주권자 국민의 직접 정치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주요 공약도 청년·노동자·농민 등 경제적 약자 계층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재벌세’ 도입 등 ‘1%’에게서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비례대표도 각 계층을 대변하는 이들로 구성됐다. 1번 정수연 후보는 27세, 전 전국 약학대학 학생회 협의회 의장인 청년 후보로 소녀상 지킴이 활동과 한일합의 무효 대학생 대책위 상황실장을 맡은 바 있다. 2번 이대종(49) 후보는 17년간 농사를 한 농민 출신으로 전 전국농민회연합회 정책의장을 역임했다. 보건의료노조 광주전남지역 본부장인 전종덕(46) 후보는 3번 후보로 과거 전라남도 도의원 재직 시절 무상급식조례를 통과시킨 바 있다.

민중연합당은 당원 수, 지역구 출마자 수, 정치인 세대교체 등을 경쟁력으로 꼽았다. 이 당은 출범한 지 2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신생정당임에도 당원 수가 2만7000명에 가깝고 전국 56개 지역구에 후보를 냈다. 송 공보담당은 “20대 후보가 9명이고 후보의 평균나이도 39살로 집계됐다”며 “청년에 과감히 투자하고 정치세대교체를 이루고 있는 정당”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포스트 413’을 준비 중이다. 송 공보담당은 “신생정당이라 현재 시점에서는 선거 채비가 부족해 보일 수 있다. 인지도도 부족하지만, 선거일정을 피할 수 없어 급히 나온 것”이라면서 “스페인의 포데모스처럼 연합정당과 직접정치 정당으로서 지속가능하기 위해 총선 후에도 시도해볼 것”이라 말했다.

민중연합당은 구 통합진보당 지지자들의 표심을 얻을 것으로 보여졌다. 민중연합당 당원 중 진보당 당원 출신이 적지 않고 김재연, 김선동, 이상규 등 진보당 전 의원들도 지난 3월 입당했다.

정의당 “복지국가 건설 목표,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

▲ 디자인=이우림 기자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인 점에서 정의당의 총선 목표는 다른 진보정당과 차이가 크다. 정의당은 비례후보 6번 당선, 지역구 4석 확보 등 10석 이상 진출을 희망하고 있다. 심상정 대표, 정진후 원내대표, 박원석 의원 등 현역 의원의 재선과 창원 성산에 전략공천된 노회찬 후보의 당선, 10~12% 정당득표율이 구체적인 내용이다. 애초 원내교섭단체 기준인 20석 확보를 목표했으나 야권연대가 결렬되면서 목표가 축소됐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이번 총선은 ‘이명박근혜’ 정권 8년을 국민의 표로 심판하는 선거인 동시에 무능하고 무기력한 야권에도 경고를 보내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 심판이라는 공동 전선을 위한 야권연대를 성사시키면서도 야당과 차별되는 정의당으로서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애초의 목표를 지적했다.

이 당의 비례후보 1번은 진보정당운동, 노동운동, 평화·통일운동에 애쓴 바 있는 이정미(50) 현 정의당 부대표다. 2번은 민간 군사전문가라 불리는 김종대(49) 후보다. 한 대변인은 “진보가 안보에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후보”라며 “평화를 말하는 군사전문가이므로 보수진영의 안보프레임을 풀어헤칠 수 있는 후보이며 진보진영의 영역을 넓히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추혜선(45)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3번으로 꼽혔다.

정의당은 고민으로 의회정치 과정에서의 ‘타협’을 꼽았다. 한 대변인은 “현실정치는 단순히 운동에 머물러선 제한적”이라며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민들 눈높이에 맞춘 공약과 현실가능한 정책 중심으로 만들고, 그런 언어와 실천 방법을 고민하면서 선거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의당이 국민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보다 더 잘 알 것”이라 덧붙였다.

동시에 같은 이유가 진보정당의 취약점으로 평가받았다. 한 대변인은 “현실적인 고려 때문에 선명한 진보적 의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강하게 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다른 진보정당이나 유권자가 보기에 아쉬울 수 있다”면서 “주요한 정치의제를 다루니 부분적 의제는 소홀할 수 있다. 일부러 외면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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