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어딨어요?”

가구공장 2층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샤인(28·가명)씨에게 ‘신원을 알 수 없는’ 한국인 4명이 찾아와 물었다. 샤인씨가 “밑에 있어요”라고 대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중 2명이 고압적으로 다가와 샤인씨를 체포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던 샤인씨는 그대로 겁을 먹고 ‘발이 닿는 대로’ 도망쳤고 곧바로 2층에서 추락해 양발 뒤꿈치 뼈가 다 으스러졌다.

그는 다친 상태에서 친구들에게 도와달라고 전화를 했고 근처 공장에서 일하던 친구들은 일을 중단한 채 뛰쳐나와 샤인씨가 일했던 공장 2층으로 올라갔다. “무슨 짓이냐”고 항의하는 이들에게 ‘한국인 네 명’은 이들에게 샤인씨가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샤인이) 테러조직과 관련이 있다고 방글라데시 대사관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이 한국인들은 출입국 관리소 직원으로 ‘테러범으로 의심되는’ 샤인씨를 조사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2013년 10월에 벌어진 일이다.

샤인씨는 16살이던 2004년에 한국으로 온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다. 장남인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방글라데시에는 부모님, 누나, 동생 넷이 함께 살고 있고 여동생 한 명이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자주 드나들어야 해 치료비도 만만찮게 들었다. 그가 한국에서 일해서 번 돈은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됐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9일 서울 인근 교외 지역 샤인씨가 머물고 있는 집에서 그를 만났다.

“내가 테러리스트라고요?” 대답 못 한 출입국관리소

2013년에 일어난 추락사고는 샤인씨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다. 그때의 사고로 샤인씨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고 1시간 이상 서 있기도 힘들게 됐다. 몇 차례 수술을 통해 재활을 시도했지만 둥글게 생긴 발뒤꿈치 뼈는 사고 전 수준으로 복구되기 힘들었고 발뒤꿈치는 무게가 쏠리는 부위인 탓에 통증이 심해지는 것을 막기란 불가능했다. 그는 “내일 다시 의사랑 상담을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은 그날 왜 샤인을 몰아세웠을까. 샤인씨에 따르면 직원은 처음엔 “테러리스트인 줄 알았다”고 말했고, 다시 “테러리스트 아니어도 당신은 ‘불법체류자’니까 (문제다)”라고 말했다. 두 발에 붕대를 감고 입원해 있었던 샤인은 울분에 찬 마음으로 “내가 테러리스트라고요?”하고 따져 물었다. 직원은 “네 나라 사람이 신고해서 알려준 것이다. (지금은) 테러리스트 아니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2015년 11월18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경찰이 프랑스 파리 테러를 자행한 것으로 알려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한 것으로 파악한 인도네시아 국적의 불법체류자로부터 압수했다는 관련 증거품이라며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건 초기부터 지금까지 샤인씨를 돕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섹 알 마문씨는 “방글라데시 사람이 신고했다는 말도 거짓말이고 증거라고 보여 준 사진도 전혀 근거가 될 수 없는 자료”라고 비판했다. 그는 “방글라데시로부터 신고가 들어왔다면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을 통해 한국에 요청된 신고를 말하는 것일 텐데 방글라데시 대사관은 요청한 적이 없다고 밝힌 적 있다. 샤인은 대사관을 통해서 여권도 새로 발급받았는데 테러범에게 어느 대사관이 여권을 만들어주냐”고 반문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보여준 사진은 샤인씨가 한국에서 일했던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친구들과 함께 찍은 것이었다. 이들 중 일부가 방글라데시에 돌아간 후 ‘테러모의’ 혐의를 적용을 받은 사실이 현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마문씨는 “이 친구들도 무죄로 드러나 3개월 후 풀려났다”고 “잘못된 체포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친구니까 같이 사진을 찍은 거다. 출입국관리소는 친구가 ‘나쁜 놈’이면 나도 ‘나쁜 놈’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 거냐”고 비판했다.

출입국관리소 ‘섣부른 행동’에 뒤바뀐 샤인의 삶… 공식적인 사과·보상 언급 없어

출입국관리소의 ‘섣부른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출입국 직원은 두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입원한 샤인씨를 찾아와 2주 안에 출국하라는 강제퇴거명령서를 내밀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것이 드러났으니 강제퇴거 조치를 취하려 한 것이다. 샤인씨와 친구들은 “지금 이 상태로 어딜 나가냐”고 항의했고 기한을 3개월 미뤘다.

이들은 이 사고가 산업재해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기고 산재를 인정받으면 체류 비자도 나온다고 상황을 낙관했으나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마문씨는 “근로복지공단은 ‘공장에서 일하다 다친 게 아니고 사장이 그때 당시 출입국이 왔는지 인지도 못했다’면서 ‘보상받고 싶으면 나라를 상대로 하라’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샤인씨가 임시체류허가와 관련된 G-1 비자를 못 받게 되자 출입국관리소는 비자는 발급해줄 수 없지만 (상황상) 치료를 받을 때까지 샤인씨를 단속하지 않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이들은 이주민지원 공익센터 ‘감사와동행’의 고지운 변호사의 도움으로 현재 출입국관리소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1심에서 패했고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을 진행 중이다. 마문씨는 “어려운 싸움인 것은 안다”면서도 “이런 식으로 사람 인생 망가뜨리면 안 된다. 100% 출입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출입국관리소는 공식적으로 샤인씨에게 사과와 피해보상을 한 적이 없다.

“잘못 없는 사람, 미등록·무슬림이면 잘못이 생기나”

샤인씨는 16살 한국에 들어와 사고가 날 때까지 10여 년 동안을 가구제조업에서 일했다. 첫해엔 플라스틱 통을 만드는 업체에서 일했지만 그다음 해부터 가구 업체로 일터를 옮겨 내리 가구 제작 공장에 있었다. 샤인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땐 14시간씩 일하며 90만 원을 벌었다”면서 “그동안 열심히 일했다. 일할 기회를 준 사장에게 고맙다 생각한 적도 있다. 그렇게 좋아했던 한국에서 이렇게 다치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샤인씨는 집에 있을 때도 잘 걷지 못하고 앉거나 누워서 잠을 청한다. 걸음이 불편해 외출을 잘하지 못하는 데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엔 더 큰 힘이 들어 3층에 있는 집을 나서기가 더욱 쉽지 않다. 이날 걸음보조기에 걸터앉아 인터뷰를 진행한 샤인씨는 “미래를 생각하면 앞이 깜깜하다. 한창 아플 땐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슬람교는 자살을 허락하지 않는다”면서 “장남이고 동생도 줄줄이 있는데 남의 도움 없이 어떻게 살아가느냔 생각 자체가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샤인씨는 현재 통원 치료를 받기도 쉽지 않다. 일을 하지 못해 현재 친구의 집에서 경제적 조력을 받으며 사는 상황에서 병원비를 마련하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불편한 다리 탓에 버스 타기가 어려워 택시를 타는데, 서울의료원까지 가면 택시비가 4만~5만 원을 웃도는 것은 기본이다.

어떻게 신고 전화 한 통으로 테러범으로 몰 수 있는 것인지, ‘테러리스트 용의자’거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는 자신이 누군지 밝히거나 왜 찾아왔는지 말하지 않고 체포할 수 있는 것인지, 샤인씨는 이해를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출입국관리소가 이 사고에 대해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이 잘못했으면 잘못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하고 감옥에 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잘못 없는 사람이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대우)해선 안된다”며 “단속이든 뭐든 찾아오면 ‘외국인 등록증을 보여달라’고 먼저 말하고 자신이 누구이고 왜 왔는지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러범 의심’과 관련해서 마문씨는 “무슬림이고 수염을 기르면 테러범이라 쉽게 생각한다”며 “누구나 신이 있을 수 있고 기도하는 것일 뿐이지 (테러와) 관련 없는 사람까지 거기다 붙이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샤인씨에게 후원을 하실 분은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의 섹 알 마문씨(02-3144-2028)에게 문의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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