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원 미디어오늘 기자는 지난 14일 MBC 상암동 사옥 미디어센터 4층 옥상 휴게정원에서 회사 측 직원이 망원렌즈로 노조 파업 찬반 투표소를 채증하는 현장을 잡아냈다. 10일 뒤인 24일, MBC 노무부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MBC노조)에 공문을 보내 “사옥 출입이 허가되지 않은 외부 미인가 기자인 강성원 기자가 불법으로 사옥을 무단 침입하여 업무방해 한 혐의에 대해 ‘현주건조물 침입 및 업무방해죄’로 법적 검토 중에 있다”고 통보했다.

법률사무소 이음의 손지원 변호사는 “강 기자는 출입증을 끊고 취재 목적으로 들어갔으며 건조물 내에서도 공개된 공간인 휴게공간을 회사 내부자와 대동했다”며 “MBC가 소송에 나선다면 무리한 소송이 될 것”이라 밝혔다. 현재 강 기자는 회사 측의 출입 불허 조치로 취재차 MBC노조 사무실 방문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디어오늘에서 MBC를 담당하는 강 기자는 며칠 전 MBC로부터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소장도 받았다.

▲ 서울 여의도 MBC 야경 로고.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MBC는 지금 언론과 싸우고 있다. 자사를 비판하는 언론사를 소송으로 겁주고 있다. 지난 2월16일 최기화 MBC보도국장은 취재차 전화한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X새끼야”, “지랄하지마”라며 욕설을 퍼부은 뒤 현재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공영방송 보도책임자의 이 같은 태도는 자사 보도를 비평하는 언론에 대한 MBC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추혜선 정의당 언론개혁기획단장은 “사회적 책임이 부여된 공영방송이 마땅히 감수해야 할 비판마저 받지 않겠다는 태도로, 공영방송사로서의 위상과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영방송 전문가인 정준희 중앙대 언론학 박사는 “언론사 간 문제를 소송으로 해결하는 사례는 전 세계 공영방송과 언론사를 통틀어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며 “자기 모순적이며 함량이 낮은 대응”이라고 비판했다. 배병일 영남대 법학과 교수는 언론중재위원회가 발간하는 언론중재 기고에서 “언론사간 상호 매체비평에 있어서 소송 의존은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전 내지 침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이 같은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MBC의 소송전은 거침이 없다.

MBC는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이 끝난 뒤인 2012년 말, 최필립·이진숙 정수장학회 비밀회동을 단독 보도한 한겨레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1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비판 언론을 상대로 한 MBC의 법적 대응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진숙 MBC 홍보국장 이하 경영진이 자사 비판에 적극적으로 반론을 펼치면서 미디어지 기자들과 접촉해오다가 파업 이후를 기점으로 소송을 통해 언론사에 압박을 주는 방식으로 대응방침이 수정된 것이다.

MBC는 2012년 말 “타 방송사에 비해 안철수 룸살롱 논란을 과하게 보도하고 안철수 측 해명은 보도하지 않았다”는 미디어오늘 보도에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이후 MBC는 2013년 6월24일 취재차 김장겸 MBC보도국장(현 보도본부장)실에 약속 없이 찾아갔다가 73초 만에 쫓겨난 조수경 미디어오늘 기자를 현주건조물 침입 및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 고소했고, 대법원은 퇴거불응혐의를 적용해 조 기자에게 벌금 100만원 유죄를 선고했다.

민주노총 법률원 소속 신인수 변호사는 조수경 기자 사건을 두고 “언론사에서 벌어진 사상 초유의 일”이라고 명명하며 “이런 식이면 앞으로 인터뷰 대상자들이 MBC 기자들을 주거침입죄로 고소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 2014년 7월18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2015년 이후 미디어오늘 손해배상청구액만 2억7000만원
비평기사부터 노조설문조사 인용까지 무차별 소송

이후에도 MBC는 상식적인 수준의 언론 비평을 법원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2015년 2월 MBC는 미디어오늘 기자 6명을 상대로 무더기 고소에 나섰다. 대부분이 비평기사였다.

△교황 앞에, 언론은 부끄러웠다(2014.8.20.) △MBC에선 세월호 유족이 황새보다 못하다(2014.8.23.) △프란치스코 교황도 피하지 못한 MBC ‘누락의 법칙’(2014.8.28.) △박근혜 ‘설화’에도 홀로 보호막 쳐주는 MBC(2014.9.17.) △구조실패 정부책임 연상될라? 통영함 보도엔 세월호가 없다(2014.9.19.) △이래서 기레기? 폭행논란만 요란 특별법은 침묵(2014.9.21.) △인천 아시안게임으로 이슈 덮는 MBC(2014.9.27.) △‘교양국폐지’ 언론단체 “MBC구성원, 이제는 목소리내야 할 때”(2014.10.27.) △‘불만제로 폐지’가 보여주는 박살난 MBC 편성권(2014.10.30.) △언론단체 “조선·동아·MBC는 기레기 아닌 양아치”(2014.8.28.) 등이 MBC가 제기한 문제의 기사 제목이다. 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심에선 MBC가 일부 승소했다.

정정보도 판결이 난 기사들의 경우 MBC의 보도누락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뉴스데스크’라고 프로그램명을 특정하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됐다. MBC는 ‘뉴스투데이’와 ‘정오뉴스’에서 보도했다는 식으로 반박했고 법원이 이 주장을 인용했다. MBC가 ‘폭행 발단 김현 의원 비난’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고 비평한 부분에 대해선 ‘뉴스데스크’ 서두에 등장하는 ‘오늘의 주요 뉴스’에 언급되지 않으면 주요 뉴스가 아니라며 정정보도 판결을 내기도 했다. 기사 제목에 ‘기레기’, ‘양아치’와 같은 표현은 모욕적 인신공격이라며 MBC의 인격권 침해를 인정했다.

MBC는 미디어오늘에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1심 법원은 60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법원에서 정정을 판단한 부분은 소송까지 가지 않아도 정정 요청이나 언론중재제도로 수정을 논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와 관련 손태규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당파적 언론이 보편화된 유럽에서조차 명예훼손 소송이란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고 전하며 “특정 언론사에 대한 악의적 비판보도에 관한 정당한 판정은 수요자인 독자나 시청자에게 맡김이 타당하다. 터무니없는 비판은 수요자가 외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서울 상암동 MBC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언론을 압박하는 소송은 이어졌다. MBC는 2015년 8월 2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한미 FTA보도 제대로 했다’ MBC 소송자료에서 거짓말?”(2015.5.29.)이란 제목의 미디어오늘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며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주장해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MBC 경영진이 MBC 노조와 파업 관련 손해배상 소송과정에서 증거자료를 조작했다는 노조 측 주장과 이에 대한 사측의 반박을 담은 기사였다.

MBC는 2015년 11월에도 “엉터리 기사 쓰면서 무슨 전화를 하나”(2015.6.1.)란 제목의 미디어오늘 기사에 정정보도 및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해당 기사는 ‘뉴스데스크’의 정부 여당 편향성 수위가 도를 넘었다는 MBC 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보고서를 인용 보도했다.

MBC는 2016년 1월 “MBC 친정부 보도, 이명박 때보다 심해졌다”(2015.11.23.)는 보도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했다. 노조에서 발표한 2015 임단협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는데 응답자 90%가 MBC뉴스가 불공정하다고 대답했다는 내용이었다. MBC는 미디어오늘에 5000만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한편 비슷한 기사를 낸 한겨레와 PD저널에도 각각 5000만원의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MBC는 소장에서 미디어오늘·한겨레·PD저널을 가리켜 “원고(MBC)에 적대적 성향을 가진 언론사로서 그 동안 원고에 대해 악의적인 기획성 기사, 허위 기사 등을 작성해 왔다”고 규정하고 “설문조사는 언론노조에 의해 처음부터 원고를 비방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며, 피고들은 언론노조가 건네준 취재원을 받아들고서 허구를 더하여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디어 비평지 미디어스도 지난해부터 MBC와 민사소송 3건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 승소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권순택 미디어스 기자는 “작은 매체일수록 민·형사 소송이 진행되면 업무에 제대로 신경 쓰기 어렵다. 민사소송이 들어오면 재정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고, 검찰조사를 받으면 기사를 쓸 때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지난 2월18일 MBC공대위가 방송문화진흥회를 향해 안광한 사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모습. 안광한 사장 취임 이후 MBC는 미디어오늘을 비롯한 비판언론 소송전을 본격화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MBC의 비판언론 소송은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MBC 노조를 상대로 한 부당노동행위와 흐름을 같이 한다. 정재욱 MBC 법무실장은 2014년 11월 백종문 MBC미래전략본부장과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등과 만난 자리에서 “저희는 이번에 미디어오늘 상대로 (기사) 열 몇 개를 가지고 정정보도에 들어갔는데, 가만히 보니까 이게 구차한 거야. 정정보도 갖고 뭘 이렇게 개시하라 그러는 게. ‘야, 됐어. 민사소송이나 들어가자. 빨리.’ 소송 들어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MBC는 3월에도 미디어오늘을 상대로 정정보도 및 1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요즘 MBC, 왜 이렇게 볼 게 없나 하셨죠?”(2015.11.21.)란 제목의 기사다. 기사의 부제는 “교양국 해체 1년, ‘사회적 의제 피하고 민감한 이슈 발제조차 못 해’… PD저널리즘 전성기 시사교양 전멸”이었다. MBC는 소장에서 “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사회적 의제를 피한다거나 민감한 이슈를 발제조차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언론사가 언론사를 소송으로 탄압하는 사례를 두고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과거 관훈저널 기고에서 “자신들을 비판하는 상대에게는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면서 자신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당할 때는 언론자유가 위축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반론권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언론사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스스로 공론장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MBC의 언론탄압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MBC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장호순 교수는 “언론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은 반론과 정정이 안 될 경우에 한해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 언론사들이 명예훼손 소송을 자제하고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며, 그 비판이 부당할 경우 정정과 반론으로 진정한 공론장을 꾸려나갈 때 국민들에게도 언론자유를 보호해 주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길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준희 중앙대 박사는 “소송으로 겁을 주고 귀찮게 만들기 위해 공영방송이 공적재원을 쓰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이라고도 비판했다. 언론과 싸우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 MBC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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