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8번 출구 앞 4평 꽃감옥에 앉았다. 봄을 맞아 반올림 농성장에 76명의 삼성반도체·LCD 공장의 사망자의 수만큼 꽃을 심어놓았고, 삼성의 잘못된 행보로 농성장을 떠날 수 없기에 자발적으로 감옥을 쳐놓았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길 안내도 하고, 농성장을 차린 이유도 설명하고, 혹여라도 “꽃 안파나요?” 물어보면 “생명은 함부로 돈으로 치를 수 없어요.(삼성처럼)”라는 의미심장한 말도 해야 하고, 사무 업무도 봐야 한다. 그것도 삼성이 훤히 내려다보는 CCTV 아래에서, 삼성 S1 경비가 빤히 쳐다보는 이 거리에서.

▲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 앞 반올림 농성장 풍경. 사진=반올림

 “벌써 6개월이네!” 우리가 이만큼 버틴 게 놀라워선지, 세월이 그토록 흘러도 변한 게 없다는 답답함에서인지, 활동가A씨가 감탄조로 말한다. 활동가A씨는 삼성 백혈병 문제를 처음 접하고 세상에 꾸준히 알려온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이다. 그는 농성을 시작한 후 어느 한 매체로부터 '전문 시위꾼,활동가 A씨'로 조롱 당했다. “종란, 농성하고 일상의 어떤 부분을 잃었어?” “사람을 못 만나지. 책도 못 읽고 여가가 여가가 아니게 되었지. 몸이 힘든 것도 좀 고되고.....

산재신청으로 기자회견으로 행사 기획 등으로 각자의 일에 매진하던 활동가들이 농성장을 차리고서 새로운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어말하기 사회자로, 영상 리포터로, 농성장 시설 관리, 카메라 촬영까지 다양한 활동에 능해질수록 농성이 길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의 잘못된 행보 덕분에 활동가들의 역량이 커지고 있지만, 여유를 잃고 일상이 희미해져 간다는 것은 자못 심각한 일이다.

3월은 고 황유미 9주기 및 삼성전자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달로 기자회견, 분향소 마련, 법률가, 청년, 변혁당의 집중 문화제를 열었다. 76명의 사망자 명단이 빼곡히 적힌 현수막을 보고 한숨을 쉬었고, 76개의 솟대를 만들면서 염원했다. 요 며칠은 3월31일 오후 2시에 열릴 '삼성직업병 문제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100분 토론회' 준비에 한창이다. 언론, 노동권, 인권, 노동안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삼성직업병 문제를 바라볼 예정이다. 그간 침묵했던 삼성과 또 이 문제의 책임 당사자인 고용노동부(산재예방보상정책국)도 토론회에 초대했다.

▲ 오는 31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고 황유미 9주기 및 삼성전자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달 문화제가 열린다.

같은 날 오후 7시에는 집중 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이긴다고 봄”. 삼성이 더 이상 나쁜 짓을 그만둘 것을. 피해자들이 받으려던 진정한 사과, 합당한 보상에 대한 논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시민들과 함께 외칠 예정이다. 가해자는 이미 이 문제가 끝난 양 하지만, 아직 피해자와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하는 시민들이 거리에 있음을 널리 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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