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동 수인그릇도매상가 앞은 오전부터 부산했다. 지난 28일 생긴 싱크홀 때문이었다. 지난 28일 12시경 수인그릇 상가 앞 도로에 가로 3m, 세로 10m, 깊이 4.5m 규모의 싱크홀이 발생했다. 한라건설 직원 및 건설인부들은 도로 보강공사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현동 주민들은 그 광경을 우려섞인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한라건설은 송현동 아래를 지나는 지하터널을 공사하는 시공사다.

“눈에 띈 거 처리하는 게 지금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어느 집 밑에서 지반이 내려가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송현동 주민 김아무개씨는 이웃 주민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현장을 지켜보던 또 다른 주민 이아무개씨도 “(싱크홀이) 또 생길 거다. 마을 분위기가 난리도 아니”라면서 “몇몇 주민은 어젯밤 동구청 옆 모텔로 대피해 잠을 잤다”고 말했다.

▲ 지난 28일 싱크홀이 발생해 도로가 함몰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동 인근 현장.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주민들이 더 불안에 떠는 이유는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인천~김포고속도로) 때문이다. 고속도로 중 일부는 지하화된 터널로 인천의 신흥동, 화수동, 송현동 등 주택 밀집 지역 아래를 통과해 공사 시작부터 주민들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주민들은 지하터널 공사의 피해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매일 3시간여 씩 두 차례 겪는 폭파 소음과 진동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였고 건물에 금이 가거나 그릇 가게의 그릇이 깨지는 등의 피해도 발생했다. 

싱크홀 우려 4개월 전부터 제기돼, 주민들 “‘전조현상’ 아닌가”

실제로 여러 언론사와 관공서를 방문하며 싱크홀 발생 등 안전 문제 우려를 적극적으로 제기해 온 지역주민 박 아무개씨는 “전조현상 아니냐”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싱크홀이 발생하며 주변 도로도 내려앉아 건물과 도로 간 거리가 벌어지는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터널공사로 인해 싱크홀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추가 싱크홀’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긴 어려워 보였다.

주민들은 싱크홀이 발생하기 전까지 어떤 관공서나 언론사도 책임있게 나서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박씨는 “방송사 3곳과 인쇄지 2곳 등을 돌아다녔으나 아무도 내 얘길 들어주지 않았다. 그런데 싱크홀이 발생하니 그제야 언론사들이 마구 찾아오더라”고 말했다. 이들은 “터널 공사 피해가 너무 심하다”는 민원을 구청이나 시청에 넣어도 책임있게 찾아오는 공무원은 없었을뿐더러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날 구청, 시청, 국토부 관계자까지 현장을 방문한 모습을 보고 박씨는 “싱크홀이 나서야 찾아온다”고 날 선 비판을 했다.

주민 김씨는 집 주변에 생긴 도로 침하를 보여주며 “다른 건 몰라도 공무원들이 내 집 주변을 돌아보며 (이런 문제들을) 검토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싱크홀이 발생한 지난 28일, 주변 도로가 함께 내려앉으며 건물과 도로 사이에 균열이 발생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싱크홀 원인은 실제로 제2외곽순환고속도로에 따른 지하터널 건립 공사로 알려졌다. 인천 동구청 도시과가 시공사 한라건설로부터 받은 문서에 따르면 공사가 진행되는 지층이 화강암으로 돼 있는데 일부 암반이 풍화돼 약해지면서 싱크홀이 발생했다. 이날 현장을 방문한 홍복의 국토부 도로국 도로투자지원과 시설사무관은 “지질조사, 환경영향평가 등 다 제대로 했으나 연약한 지반이 있는지 미처 인지를 못 했다”고 밝혔다.

주민들 불안에 책임있게 나서는 관계기관 없었다

구청, 시청, 시공사 등 터널공사 관계자들이 ‘늦은 대책’에 나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주민들의 민원을 차치하고라도 지하 터널공사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2007년 한 인천 동구의회 수석 전문위원이 직접 ‘동구 관통 지하터널 개설에 따른 제문제 분석 및 대응 방안’ 보고서를 작성해 구의회에 보고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전문위원은 이날 현장을 방문해 “당시 내가 문제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보고서에서 예상한 상황이 지금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구청은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는 국토부 소관 사업이기 때문에 구청의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는 입장이다. 유호상 인천동구청 도시과장은 그동안 제기된 민원에 대해 “국토부에 이런 민원이 제기됐다고 국토부에 전달을 했다”면서 “(그 이상) 구청이 할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싱크홀 사태와 관련해 유 도시과장은 “구청이 할 수 있는 부분은 할 것”이라면서 “담당자,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회의에 같이 참석해 어떻게 하나 지켜보면서 조언을 할 것”이라 말했다.

유상철 인천시청 도로과 차관은 ‘주민 민원을 책임 있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지적에 “주민들 입장에서 당연히 그럴 말 할 수 있다. 시청이나 구청은 (사업을 시행하는) 국토부 협의기관이다 보니 시공사나 사업시행자에게 뭔가를 할 수 있는 부분에서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유 차관은 “작년 초에 국토부와 도로공사에 이런 이런(주민 안전과 관련한) 부분을 신경썼으면 좋겠다고 문서를 전달한 바 있다”고 해명했다.

▲ 국토부, 인천시청, 인천 동구청, 한라건설 등 관계자들이 3월29일 오후 현장을 방문했다. 사진=송현동 주민 제공

홍 사무관은 사태와 관련해 “잘못했고 죄송한 입장”이라면서 “변명이겠지만, 터널공사에는 모든 지질 상태를 다 확인하기엔 한계가 있다. 좀 더 조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주민들이 ‘부실하게 지질조사·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한 게 아니냐’고 제기하는 데 대해 “면밀히 못 본 부분은 인정하지만, 의도적으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은 전혀 아니”라고 해명했다.

추가 싱크홀, 원인 규명하면 막을 수 있을까

한라건설은 싱크홀이 발생한 2시간여 후 응급복구에 나서 함몰된 부분을 모두 흙으로 메웠다. 이날은 지반 보강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흙으로 메운 부분에 구멍을 내 시멘트를 섞은 물을 넣어 지반을 단단히 하는 ‘그라우팅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원인규명없이 사고난 부분을 흙으로 메우냐는 항의에 대해 유상철 차관은 “싱크홀이 발생했으니 일차적으로 연약한 부분을 보강하는 것이다. 원인 규명은 앞으로 해 나갈 것이고 원인 규명에 재착굴이 필요하면 그렇게 할 것”이라며 “구청, 시청, 국토부, 시공사 등이 원인 규명하는 테이블을 만들 예정이다. 아직 전문가 구성도 안 한 상태라 언제 구성될진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 지난 28일 싱크홀이 발생한 당시 모습. 보강작업이 시작되기 전이다. 사진=송현동 주민 제공.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터널 공사는 도로 함몰의 구체적인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당분간 중지될 예정이다. 국토부 홍 시설사무관은 “추가 싱크홀이 발생하지 않도록 원인을 명확히 하기 전까진 발파를 중지할 것”이라 밝혔다.

일부 주민들은 공사 단가를 줄이기 위해 시공사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진동이 심한 폭약을 쓴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홍 시설사무관은 “원인 규명 작업을 통해서 밝혀질 것”이라 지적했다. 지하터널 공사로 인해 싱크홀이 발생한 인과관계가 드러난 상황에서 시공사 한라건설은 싱크홀 발생으로 인한 주변 건물 균열 및 지반 복구와 그에 따른 피해 보상 책임을 질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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