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바둑선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이 알파고의 승리로 끝난 지난 10일, 일부 언론의 보도가 눈길을 끌었다. 이세돌 9단의 라이벌로 알려진 중국 프로기사 커제 9단이 “인류 바둑기사의 대표자격이 없다”며 이세돌 9단에게 다소 공격적인 발언을 했다는 인터넷 언론들의 어뷰징 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달랐다. 헤럴드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는 커제가 한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세돌이 0대5로 질 수 있다는 발언은 했어도, 이세돌에게 어떤 비난의 표현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언론들이 외신을 인용해 자극적인 어뷰징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8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한국 언론의 외신인용 문제점과 개선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국 언론들이 가진 정파성과 상업성 때문에 한국 언론이 질과 양 모두 부족한 외신 인용보도를 내놓는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한국 언론이 주로 정보를 의존하는 해외 통신사들이 주로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의 통신사이며, 이들도 결국 자국 중심의 이슈를 보도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국 중심의 이슈 보도를 한국 언론들 역시 그대로 인용보도 한다는 것이다. 한 사례로 G20 의장국에 한국이 지정됐을 때도 한국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만 보도하는 수준에만 그쳤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가 이익에 대한 감시 기능 차원에서의 외신 보도는 찾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8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한국언론의 외신인용 문제점과 대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차현아 기자.
여기에 한국 언론들이 미국과 일본 등 주요 국가에만 특파원을 보내 취재하는 등 언론사 내부의 국제 분야 취재 관행도 꼬집었다. 전문성과 상관없이 회사의 기여도가 우선시 돼 특파원으로 선정되는 경우도 지적됐다. 이들이 수많은 국가의 정보 중에서도 중요한 국가와 이슈만 빠르게 취사선택해 보도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인터넷을 보고 취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언어의 한계 때문에 영어권 정보만 접하면서 결국 국제 뉴스 역시 편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한국 언론의 외신보도가 정치적이라는 근거로 한국과 일본의 각 정부 성향에 따라 일본을 다룬 보도가 어떤 내용을 주로 담는지를 분석했다. 김 교수는 연구를 통해 "김대중정부 때처럼 한국과 일본 정부가 사이가 좋을 때는 월드컵이나 정상회담 등 한일 관계가 좋아질 수 있는 이해관계를 많이 다뤘던 반면, 일본 정부와 냉각기였던 이명박정부 당시 일본 관련 보도는 재일코리안 간첩, 한통련 등 양국 간 민감한 일본 관련 보도가 비중있게 다뤄졌다"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김 교수는 한국 언론들이 국제뉴스를 다룰 때 외국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싣거나 기고를 하지만, 특정 사안에서 왜 이 인물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매체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국제 뉴스에서의 취재원도 취사선택되는 셈이다. 

국내 매체 외신 보도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김 교수는 “연합뉴스와 KBS 등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매체만큼은 수용자들로부터 질 높은 외신 보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는 김 교수의 이러한 '도발'적인 질문에 반박하는 언론계 현장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김균미 서울신문 수석부국장은 "서울신문의 경우 국제 뉴스부와 특파원 조직은 많이 줄었지만 각 국가 언론사 사이트의 영어 제공 사이트를 이용하는 등 해당 지역의 주요 언론을 이용하고 있으며 미국 편향 기사만 다루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언론계에서도 국제 분야에서의 언론사의 관행적 보도를 탈피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놓았다.

김 부국장은 "외신 인용 보도에서 특히 어떤 정보와 뉴스가 사실인지 (국내 언론사 차원에서) 확인이 어렵다는 점은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국제 뉴스를 다루는 것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고민이 든다. 뉴스 수용자의 반응도 중요하기 때문에 국제뉴스도 (독자의 흥미에 맞춰) 연성화되거나 재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에서의 외신보도 인용은 특히 뉴미디어 시대를 맞아 새로운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터넷을 통한 1인 미디어가 성장하고 영상이 빠르게 유포되면서 이를 인용보도하는 방송 영상의 저작권과 신뢰도 차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유석조 KBS 국제부장은 "일부 방송사에서 지난 22일 벨기에 브뤼셀 폭탄테러를 보도하던 도중 2011년 모스크바 공항 테러 영상을 현장 영상으로 오인해 내보냈다가 사과하기도 했다. 현장 영상이 맞는지 확인이 안되는 상황에서 메인 뉴스에 방송할 경우 펙트체킹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신뢰도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저작자의 동의없이 유투브나 인터넷 등의 영상을 방송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나중에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은령 서울대 박사는 국제 뉴스의 인용 출처의 다양화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취재원이 편향되거나 인용 숫자가 적은 문제는 한국 언론의 일반 기사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시각을 다루기보다는 ‘주제’가 잡히는 기사를 쓰는게 국제 뉴스에서도 관철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 언론의 경우 브뤼셀 폭탄테러에 대해 한국 재난현장 보도와 같은 패턴으로 보도했다. 현장스케치로 1보를 내보내고 재난 극복 현장 모습 정도만 다뤘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 보도를 다양한 시각에서 다루기 위해 인터넷 상에서 전문가들이 다루는 해외 소식을 인용하거나 번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칼럼보다 생생하고 전문적인 국제 정보를 소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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