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정의당 인천시당이 인천지역 야권후보를 단일화하며 ‘해군기지건설 반대운동 폭력진압 책임자’로 지목됐던 윤종기 전 인천지방경찰청장이 연수을 야권 후보로 출마하게 된 가운데, 원외 진보정당 중심으로 ‘내용 없는 야권연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더민주당 인천시당과 정의당 인천시당은 지난 25일 전략공천 지역 10개, 경선 지역 3개 등 13개 지역구에 더불어민주당 후보 11명과 정의당 후보 2명을 야권 후보로 단일화했다. 윤 전 인천경찰청장은 더불어민주당의 전략공천으로 인천 연수을에 출마했고 야권 단일화 후보로 결정됐다. 윤 후보는 지난 2011년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기지건설 반대시민 및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며 시민사회의 규탄을 받은 바 있고 공천부적격자를 가려내는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도 같은 이유로 윤 후보를 낙선 대상으로 지목했다.

녹색당은 28일 ‘강정마을 탄압 윤종기가 더민주·정의당 단일후보’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 “정의당은 두 자리 단일후보직을 받는 대가로 양심에 찔리는 기색도 없이 강정마을을 짓밟은 후보를 지지하는 정당이 되었다”면서 “현재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단일화에 차질이 빚어진 것도 양당 간 자리싸움의 결과일 뿐이다. 더민주는 심상정 의원 지역구만 양보해주면 된다는 입장이었고, 정의당은 몇 자리 더 보장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거기 어디에 가치가 있고 정책이 있고 의제가 있는가?”라 비판했다.

▲ 28일자 녹색당 논평. 사진=녹색당 홈페이지

이런 지적에 대해 정의당은 야권연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유로 들었다. 박종현 정의당 인천시당 선거대책본부장은 28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인천지역은 중앙당 차원의 야권연대 결렬이 되기 전에 이미 지역 차원의 야권연대가 결정됐었고 윤 후보는 야권단일화 합의 후 중앙당 차원에서 전략공천이 된 것”이라며 “100% 여론조사를 통해 정의당의 김상하 후보를 꺾고 윤종기 후보가 경선승리를 한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 선대본부장은 “(당원들도) 윤 후보가 부적격하고 낙선시켜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나, 이것 때문에 13개 지역구 전체에 대한 야권연대, 후보 단일화를 통한 박근혜 정권 심판이라는 국민들 염원을 간과할 수 없다”며 “(녹색당의 비판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말이지만, 우리나라 정치가 소선거구제고 다당제가 이뤄지기 힘든 조건으로, 현실정치에서 새누리당이 3분의 2 이상 다수 의석을 차지했을 때 얼마나 더 많은 가치와 국민 권리가 훼손될지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밝혔다.

원외 진보정당은 야권연대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이번 연대가 “의석 나눠 먹는 타협”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입장이다. 특히 진보적 가치 실현을 위한 논의가 실종된 연대가 지속되면 결국 정의당이 보수 정당에 종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정의당이 진보적 독자정당으로서의 입지를 제대로 내세워야 한다는 평가도 제기됐다.

김수민 녹색당 대변인은 28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소수정당이 힘을 펼치려면 연합정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더민주당에게 연합정치의 필요성을 심어줘서 가치와 정책을 조금이라도 실현하기 위해 따낼 건 따내는 게 옳은 방향”이라면서 “지금은 잃지 않으려고 단일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이 더민주당에 더 요구해 자신들의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데 그걸 희생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인천지역은 구청장, 시의원 등 정의당이 권력을 가져본 지역인데 그걸 유지하기 위해 더더욱 단일화에 의존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의석이 늘수록 더민주당에 의존하는 효과가 커질 수 있다”면서 “‘야권연대’가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는데 당연히 해야 하는 걸로 굳혀지면 정의당 쪽에도 족쇄가 된다. 독자적인 진보정당으로서 지지받아야 할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흥배 노동당 정책실장은 28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내용을 담보하지 못한 보수정당과의 야권연대는 한국의 진보정치를 추동하지 못하고 보수정당에 흡수시켜왔다는 역사적 근거가 있다”면서 “의원을 몇 명 더 만들어보겠다는 것은 진보정치를 더 확장하고 밀고 나갈 수 있는 전략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 1월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16년 신년기자회견을 열고 민생과 정권교체를 중심으로 한 야권연대 전략인 '범야권 전략협의체'를 발표했다. ⓒ민중의 소리

‘내용 없는 야권연대’라는 비판에 대해 정의당은 일부분 수긍하면서도 원내정당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을 거듭 밝혔다. 김성희 정의당 전략위원장은 28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연대엔 무엇을 막기 위한 연대와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 내기 위한 연대가 있다. 이번 연대는 박근혜 정부 3년과 이명박 정부 5년 등 보수 정부 8년을 통해 확인한 민생과 민주주의 훼손을 저지해야 한다는 야권 지지층의 요구로 이뤄진 것”이라 밝혔다.

이어 김 전략위원장은 “문제제기에 충분히 동감하지만, 정의당을 좋은 진보정당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힘이 필요하다”면서 “정치는 선의를 가진다고 결과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과로 말을 해야 하는 거고, 총선 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내 영향력을 키울 수 있으면 그 영역 안에서 다른 진보정당도 동반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3일 야권연대 협상 과정 중 더불어민주당이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출마한 경기 고양갑과 정진후 원내대표가 출마한 경기 안양·동안을에 후보를 공천함으로써 당 대 당 야권연대 논의는 중단된 상황이다. 노회찬 정의당 후보와 허성무 더민주당 후보가 출마한 창원 성산구가 현재 양당 간 후보 단일화가 추진되는 유일한 지역구다. 단일 후보는 오는 29일 경선과정을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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