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치’에 대해 ‘아재정치 OUT’이라 말하며 여성을 위한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진보정당 후보가 있다. 노동당 하윤정(30) 서울 마포을 후보 공보물은 “여성이 웃는다, 세상이 웃는다”로 시작해 몰카방지법 입법, 무상생리대 추진, 최저임금 1만 원 현실화 등의 공약을 담고 있다. 하 후보는 일반적인 공보물 발송 대상인 50대 남성 세대주가 아니라 20~30대 여성 세대주들에게 예비공보물을 발송했다.

하 후보 선거운동본부는 27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걷고 싶은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는 ‘아재정치OUT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하 후보의 사회와 함께 ‘세상이 할 말이 많은 여성 패널’ 세 명이 참가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관객 40여 명은 저마다 ‘현직경찰, 화장실서 여성 몰래 훔쳐보다 발각’, ‘이래서 여자가 차장인 팀은 안 된다는 거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콘서트를 지켜봤다.

아재정치OUT 토크콘서트? ‘여성정치’는 차별 경험 말하고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해

“여성에게는 별명이 많다. 김치녀, 된장녀, 오크녀, 스시녀, 개념녀…. 개념녀가 가장 여성에게 해로운 별명이라고 생각한다. 예쁘고 귀엽고 애교있고 청순하지만 섹시하고,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지만 센스있게 남자친구가 계산하게 빌지에 돈을 몰래 꽂아놓는, 회사에서 야근도 하고 회식도 빠지지 않지만 집에 일찍 들어와 앞치마 입고 남편을 기다리는. 개념녀는 이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모든 역할들을 수행해야 한다.”

▲ 하윤정 노동당 서울 마포을 후보는 3월27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걷고 싶은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는 ‘아재정치OUT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하 후보는 ‘탈개념녀’ 선언으로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개념녀는 ‘남성의 군복무에 대한 사회적 혜택이 필요하다고 한 여성을 칭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해 ‘남성을 배려하고 이해할 줄 아는 여성’이라는 뜻으로 확장돼 쓰이고 있다. 이날 참여한 세 명의 패널들 모두 ‘탈개념녀’ 선언에 동참하는 여성들이었다.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신승은씨가 첫 번째 패널로 등장해 자신의 경험을 얘기했다.

신씨는 ‘할머니는 삼만 원을 주시더니 오빠 갖다 주래’ 노래를 부른 뒤 “오빠도 술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는데 내가 술 먹으러 나갈 때만 ‘어디 나가냐, 일찍 올 거냐’ 물어본다. 핸드폰 끄고 술 먹다가 실종신고 당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텔을 봐요’ 자작곡을 부르기 전, 그는 “여자들이 모텔 그런 얘기를 하면 ‘까졌네’, ‘밝히네’, ‘‘먹히고 싶어’ 안달이 났네’ 같은 말을 듣는데 무슨 먹이 사슬도 아니고 뭘 먹히냐”면서 “주변에 보면 남자가 모텔을 가자 제안하면 여자는 예스 올 노로 대답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지 말고 우리도 (자유롭게) 말하자고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를 나온’ 용윤신 알바노조 사무국장은 두 번째 패널로 나와 사회가 가진 여대에 대한 편견을 말했다. 용 사무국장은 “굉장히 도도하고 잘난 척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그런 여성들을 ‘이대스럽다’ 한다”면서 “아저씨들이 나에게 영화 타짜에 나온 ‘이대 나온 여자’ 농담을 많이 하는데 기분이 정말 나쁘다. 이대생 이미지로 보이는 게 실어 일부러 털털한 여성을 연기하기도 했는데 이런 식은 너무 설득이 안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학생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경력개발센터가 ‘이대생들은 협동심이 없다’는 외부 평가를 들은 후, 정말 충격적이게도 협동을 배워야 한다는 취지로 모든 수업에 ‘팀플’을 만들었다”면서 “졸업 전까지 팀플을 하면서 학교에 다녀야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패널 빠렛씨와 수씨는 위협을 느꼈던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여성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문화를 지적했다. 빠렛씨의 경우, 입주한 건물의 관리인이 새벽 1시경 집에 들어온 적이 있어 곧장 경찰에 신고해 주거침입죄로 기소가 됐으나, 담당 검사는 “술을 먹고 남자가 그럴 수 있다”면서 경찰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피의자의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수씨는 한 달 전, 술자리에서 친구를 성추행한 한 남성이 “만진 적 없다” “내가 네 것 만졌냐, 친구 만졌지”라고 당당한 태도를 보였고 신고 후 경찰을 기다리는 과정에서도 완력을 썼었다며 “피해여성이 작고 연약했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힘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 토크콘서트 참여자가 자신의 성차별 경험을 피켓에 쓰고 있다. 사진=노동당 여성위원회

“19대 국회든 20대 국회 후보든 여성 의제 말하는 사람이 없어”

공식 선거운동 기간 전이기 때문에 이번 토크콘서트에서는 정책 토론 등의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아재정치’, ‘탈개념녀’라는 말의 신선함과 패널들의 노래 공연이 길을 가던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심리학을 전공하는 홍아무개(27)씨는 “‘탈개념녀’에 공감한다. 스타벅스 커피나 예쁜 가방은 내 돈 가지고 내가 사는 건데 나쁜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따지면 비싼 시계를 사거나 술을 자주 먹는 남성들도 똑같다”면서 “편의점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화장을 하도록 강요하거나 면접용 사진을 붙이길 강요한다. 아무리 (여성차별이) 문화의 문제라 하더라도 금지 제도 같은 것을 만들어서 충분히 보완해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남성임에도 콘서트에 참여한 대학생 김아무개씨(20)는 “대학 학회에서 여성인 친구들과 공부를 하기 전까진 나도 여성을 비하하고 남성이 역차별당한다 생각하는 남자였다”면서 “중요한 건 남성우월주의 사회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전제를 인정하지 않으니 남성이 피해자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 사실을 인정하니 이 콘서트에 오는 게 어렵지 않았다”며 공감을 표했다. 김씨는 “현재 정치권에 여성을 대변하는 의원은 없는 것 같다. 20대 국회엔 여성주의를 공약화하는 의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시민 반응도 있었다. 정아무개씨(48)는 “이 콘서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여성들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거 보면 시대가 많이 변한 것을 느낀다. 좀 꼴불견으로 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중년남성도 “콘서트에 공감이 가진 않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은 자유”라고 지적했다.

▲ 하윤정 후보가 노동당 여성 정책에서 선별한 주요 여성 공약들. 사진=손가영 기자

“쟁쟁한 후보들 사이 소수자 목소리 낼 것… 다양한 정체성 의원들 많아져야”

마포을 지역구에는 현재 김성동 새누리당 후보,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후보, 배준호 정의당 후보 등이 등록해있다. 군소 원외정당 출신의 하윤정 후보는 당선 가능성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여성혐오, 몰래카메라 문제 등 지난해 내내 여성을 향한 폭력 문제가 큰 이슈였던 점에 비춰 현재 원내정당과 후보들이 여성 정책 의제를 외면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하 후보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어려운 도전에 나섰”다.

하 후보가 방점을 찍은 정책은 무상생리대 공약과 최저임금 1만 원, 몰카방지법 등이다. 하 후보는 무상생리대 공약의 경우 ‘대책없는 구호’, ‘포퓰리즘’ 등의 지적을 받는다면서도 “과거 심상정 의원이 저소득층 여성들에 한해 무상생리대 정책을 의제화한 적이 있다”면서 “여성들에게 생리대는 필수품이다. 비용을 사회화시키는 생각은 가능하다. 실현가능성은 욕구나 공감대가 형성되면 만들어지는 것”이라 반박했다.

여성 노동자의 상당수가 법정 최저임금에 준하는 시급을 받는 저임금노동자라는 점에서 하 후보는 노동당의 당론인 ‘최저임금 1만 원’을 강조했다. 하 후보는 또 다른 당론인 ‘노동시간 단축’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대부분 떠안는 여성의 ‘일·가정 양립 불가능’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된다고 지적했다.

아재정치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 하 후보는 “한국 국회의원의 85%가 남성이며 평균 연령은 50대가 넘는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점하고 있는 상황을 말한다”면서 “이것이 여성이나 정치적 소수자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는 데 영향을 준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정체성의 의원이 많아져야 한다는 지적이면서 소수자 의제를 대변하는 의원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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