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 선거도 이렇게는 안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입한 거 아니겠나” “유승민이 처음부터 잘못했다. 대통령을 밀어줘야지”

결국 대구 동구을이 무공천 지역으로 되면서 유승민 의원이 무소속 신분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유승민 죽이기’에 지역 여론은 상당히 동요했다. 공천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향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유 의원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무공천 지역으로 발표 나기 하루 전 24일 미디어오늘은 격앙돼있던 대구 민심을 들어봤다. 유승민 의원 공천 보류 파동은 보수의 성지 대구 민심에 균열을 일으켰다.

# 동구 홍계동 유 의원 사무소

24일 오전 11시, 유 의원 선거사무소 건물에는 아직 당적을 유지할 때의 붉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사무소 안은 탈당계를 제출하러 온 당원들로 붐볐다. 지난 23일 유 의원이 탈당을 선언했던 사무실에 중장년층 당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사무소엔 당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앞으로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될지를 얘기하고 있었다. 한 지지자는 오늘 오전에 사무소를 들른 당원만 최소 150여 명이 된다고 말했다.

건물 밖엔 족히 30명은 돼 보이는 취재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하루종일 있을 순 없다. 대책을 내라” 취재진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드릴 말씀이 없다” “일정을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하는 보좌관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그 결과 유 의원은 점심식사를 하러 이동하기 전 10여 분 동안 건물 입구에서 짧은 기자회견을 했다. 유 의원은 자신을 향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맹비난에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 유 의원은 3월24일 오전 대구 동구 용계동에 위치한 자신의 지역사무소 앞에서 기자들과 짧은 회견을 가졌다. 사진=손가영 기자

지지자들의 공통된 마음은 억울함이었다. 탈당계를 제출하고 사무소를 나온 대구시당 중앙위원 출신의 김아무개씨(56)는 “박 대통령의 독선이다. 마지막까지 안주다 스스로 탈당하게 하고, 세상에 이런 공천이 어디 있느냐”면서 “전에는 박 대통령 지지했는데 이제는 아니다. 현실을 본다. 당원들이고 당직자고 우리 지역구 의원 홀대하는데 ‘이건 아니다’하고 돌아선 사람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지자 김아무개씨(60)도 “나도 그렇고 오늘 탈당계를 제출한 사람들이 많다”면서 “미련없이 제출했다. 새누리당 이제 안 찍는다”고 억울해했다.

한 대구 시민은 동구을 주민이 아니고 당원도 아님에도 선거운동을 자원하기 위해 사무소를 찾았다.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아무개씨(56)는 “공천과정에 룰이 없다. 공관위가 나서서 니편, 내편을 나누고 있는데 룰을 따르는 척이라도 했으면 이렇게 화가 나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친박, 진박, 비박, 멀박, 다 ‘박’이 있다. 뒤에 보이는 힘이 박 대통령이라는 말이다. 공천 사태의 원인은 힘”이라고 지적했다.

이씨 또한 대구에서 ‘친박 메리트’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친박은 대구가 영원한 박근혜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권력은 반드시 이동한다”며 “실망이 크면 더 많이 이동한다. (친박이) 대구 사람들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봤다”고 말했다. 그는 지인과 동문들 한 명에게라도 더 유 의원을 소개해 줄 것이라 말하며 3층 사무소로 올라갔다.

# 인근 방촌시장

유 의원 선거사무소 인근에 위치한 방촌시장을 가는 길에 접한 지역 민심은 사무소의 풍경과는 달리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 박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부터 ‘권력행정’만을 일삼는 세력을 심판해야 한다는 비판까지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동구을 주민 서상대씨(63)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 의원이 잘못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이 박 대통령의 ‘은혜’를 알면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유승민이 의원 오래 하다 보니 너무 자만했다. ‘박근혜, 청와대 잘못했다’ 그러고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쓸데없는 소리하고, 잘못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독선적이라는 거는 다 그 사람들 생각이다. 여자라서 깔보고 홀대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도로 건너편에서 쭈꾸미집을 운영하는 박아무개씨(60)도 ‘박 대통령을 밀어주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었다. 박씨는 “여자 대통령이 노동법, 연금법 개혁하려고 나섰는데 자꾸 쥐어박고 계속 막으면 어쩌느냐”면서 “유승민 의원이 대표 사퇴 뒤에 ‘대구 초선의원 다치게 하면 가만 안 둬’ 이 소리 하는 거 보면 대통령을 안 밀어주고 자기 정치한 거다. 지금 여론을 업고 동정론을 이용하는 것”이라 날을 세웠다. 그럼에도 비상식적인 공천인 것은 사실이라는 지적에 그는 “유승민 목 쳐버렸다고 하면 그 여론은 또 어떻게 감당하나. 부작용 줄이려고 공천을 계속 미뤄온 것”이라 공관위를 옹호했다. 친박의 권력 행사라는 말에 대해 오히려 그는 “친박이 약해서 의장도 당대표도 못하니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내가 대통령이라도 (국정 운영을 위해) 친박을 많이 시킬 것”이라 대답했다.

자신을 40대 유권자라 말한 자영업자 배아무개씨(41)는 “아주 나이 드신 분들이 맹목적으로 지지하지 사오십대만 해도 이제 그렇지 않다”며 반박했다. ‘노무현과 그쪽 세력을 한 번도 찍지 않은’ 배씨는 “학교에서 근현대사 배울 때도 박 대통령 친일 행적을 신경 안 썼었는데 지금 권력 안 놓는 데만 신경 쓰는 것을 보고 매우 실망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딱 새누리당 내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천은 여러 후보들 경선시키거나 여론조사를 돌려보면서 공정하게 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대구의 변화 조짐을 강조한 배씨는 “1년 전만 해도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할 때) 아버지랑 다퉜는데 지금은 말이 통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함께 가게를 운영 중인 아버지 배씨(60)도 “우리 배불리 먹고살게 해준 박정희대통령 딸이라 아버지맹키로 잘 할 거다 생각했는데 독불장군이다. 공천보고는 너무 심하다 생각했다”면서 “‘증세없는 복지’ 때문에 문제가 생겼는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싫고 좋고는 마음대로 말할 수 있다. 박 대통령도 귀담아듣고 다독거려야지”라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도 돈 있는 사람들만 챙기는 당인 것 같고 이제는 (맹목적으로) 안 찍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 시장 내 이재만 후보 선거사무소

24일 오후 3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은 이재만 동구을 예비후보 선거사무소는 걱정과 기대가 반반 섞인 모습이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동구을을 포함한 지역구 5곳 공천 안에 직인 날인을 거부하며 부산행을 택한 후였기 때문이다. 사무소 내 시선은 종합편성채널의 뉴스프로그램을 틀어놓은 TV에 쏠려있었다.

▲ 대구 동구 방촌시장 인근에 위치한 이재만 예비후보 선거사무소. 이 후보는 25일 공천에서 탈락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김영원 부사무장은 ‘공천 논란’에 대해 중앙과 지역을 분리시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공천 문제는 중앙 정치 쪽의 일이고 (이재만 선본은) ‘누가 열심히 지역 일을 맡을 일꾼인지’에 집중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재만 후보가 진박을 내세운 점에 있어서도 김 부사무장은 “‘박 대통령 밑에서 열심히 가겠다, 정책 잘 펼 수 있도록 지켜나가겠다’는 공약은 있다”면서도 “진박일 수 있고 아닐 수 있는 건데 유 의원 반대로 가다 보니 그렇게 보인 측면이 있다. 이재만 후보는 ‘지역일꾼’”이라고 선을 그었다.

25일 대구 동구을이 무공천 지역이 되면서 이재문 후보는 탈락했다. 하지만 하루 전까지만 해도 이재만 선본은 공천 확정에 희망을 품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재만 선본은 공천만 확정된다면 당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부사무장은 “유 의원을 향한 동정론 지지율은 5~10% 정도일 거라 보고 있다. 특히 유 의원 경우 야권지지층에서 지지율이 더 높고 여권지지층에선 이 후보가 앞선다”고 말했다.

# 대구 수성갑 김부겸 선거사무소

이번 공천 사태의 여파는 동구을에만 머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 사무소도 ‘지금 당장은 긍정적인 반사이익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관 김부겸 선거본부 공보담당은 “아직 여론조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새누리당 지지자의 31%가 ‘유승민 쳐내면 지지철회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을 볼 때 반사이익이 있을 거라 본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 공보담당은 “앞으로 어떤 외부효과가 더 있을지 모르니 확신할 순 없다”면서 “야권 지지율이 올라가면 위기의식으로 보수층이 결집할 가능성이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5일 후보등록이 완료된 후 실시되는 첫 여론조사에서 이 영향력이 드러날 것이라 말했다.

▲ 대구 수성갑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 선거사무소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 선거사무소가 나란히 붙은 빌딩에 위치해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김부겸 후보가 출마한 수성갑 지역은 대구 지역 내 유일하게 야권 후보 지지율이 앞서는 지역이다. 이 공보담당은 “김부겸 후보 지지자 중 40%가 야당 의원이 나올 때가 됐다는 정치적 다양성을 생각하는 집단이라고 파악하고 있다”면서 “특히 40~50대 중년층을 대상으로 호응도가 높다. 대구 민심의 변화가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경북대학교 대구캠퍼스

이날 저녁 경북대학교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대구 지역이 예전만큼 지역주의 사고에 매몰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유승민 의원의 공천 사태와 관련해서도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기준에 방점을 찍지 않고 경쟁 과정이 공정했느냐에 방점을 찍는 모습을 보였다.

백호관 2층에서 만난 정아무개(21)씨는 “정치색은 새누리당이지만 맞는 건 맞고 아닌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공천 문제는) 둘 사이 의견 충돌이 원인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공과 사를 구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자기 감정에 치우친 결과다. 이번에 대구를 방문한 것도 문제적이라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총선에 첫 선거라 밝힌 그는 “요즘에 당별로 공약도 비슷하고 당색이 옅어 잘 모르겠지만, 정책, 공약 보고 그나마 나와 가까운 쪽을 택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조아무개씨(24)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밉보여서 이 위기상황에 온 것 아닌가. 비판했다는 이유로 새누리당에서 밀어냈다. 너무 심한 처사인 것 같다”고 새누리당 공관위를 비판했다. 조씨 또한 “지금 대구 어르신들처럼 어느 한 쪽을 지지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대구도 차차 변해가고 있다”면서 “아직 뚜렷하게 지지하는 쪽은 없지만 우리한테 도움이 되는 쪽을 찍고 싶다. 새누리당이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건 확실히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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