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정치인이나 공직자 자녀의 특혜에 민감하다. 뉴스타파는 지난 17일 밤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의 딸이 5년 전 성신여대에 입학하는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을 단독 보도했다. 18일 포털사이트 상위 검색어는 ‘나경원’, ‘뉴스타파’였다. 관심은 높았고 의혹은 일파만파 퍼졌다. 

그러나 18일자 KBS·MBC·SBS 메인뉴스에서 나 의원 딸의 특혜 의혹과 관련한 리포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19일자 9개 전국 주요종합일간지 가운데 나 의원 딸의 대학 부정입학 논란을 보도한 곳은 한겨레가 유일했다. 주요 신문·방송만으로 세상을 보는 시민들은 나경원 의원을 둘러싼 논란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 17일 방송된 '뉴스타파'의 한 장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뉴스타파 보도를 신뢰할 수 없어 인용보도나 후속취재에 나서지 않은 것일까. 뉴스타파는 지난해 11월30일 노영민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사무실에 카드단말기를 설치해놓고 상임위 산하 공공기관에 자신의 시집을 판매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해당 보도는 주요언론이 인용하며 수백 건이나 쏟아졌다. 중앙일보와 국민일보는 사설을 써가며 노 의원을 비판했고, 조선일보는 “노영민 의원이 5년 전 아들을 국회부의장실 비서관으로 취직시켰던 문제가 다시 회자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위기의 문재인 측근 갑질에 사면초가’(2015년 12월2일)란 제목의 기사를 내기도 했다.

뉴스타파가 2014년 7월 광주 광산을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후보의 재산 축소신고 의혹을 단독 보도했을 때도 KBS·MBC·SBS를 비롯한 주요언론은 해당 논란을 모두 보도했다. 이쯤 되면 인용보도에 있어 여당 인사냐 야당 인사냐에 따라 고무줄 잣대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주류언론과 여당 유력 정치인과의 이해관계 또한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나경원 의원의 ‘고가 피부과 이용 논란’ 당시에도 보수언론은 ‘나꼼수-시사인 비열한 공격…성추행과 다름없어’(동아일보 2012년 3월1일)와 같은 보도로 나 의원을 지원한 바 있다.

▲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연합뉴스
온라인에서도 논란은 감춰지고 있다. KBS 탐사보도팀장 출신의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뉴스타파의 보도 이후 포털은 분노, 반박, 법적 대응 등등 나 의원의 입장만 부각하는 기사로 도배되더니 지금은 서울대 시절 김태희 뺨치는 외모, 오드리 햅번이 롤 모델, 미모로 유세 나가면 일대 교통마비, 장애인 딸에게 보낸 편지 감동 따위의 기사들이 마구 올라오고 있다. 이게 한국 언론환경의 현 주소”라고 개탄했다. 주류언론은 유력 정치인의 특혜 의혹을 보도하지 않고, 온라인에선 어뷰징 기사가 정작 알아야 할 내용을 덮어버리고 읽어야 할 기사를 뒤로 밀어낸다. 일련의 보도양상은 왜곡된 한국 언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황일송 뉴스타파 기자는 나경원 의원의 반론을 듣기 위해 무던 애를 썼다. 하지만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보도가 나간 뒤 나경원 의원의 해명 보도자료가 나왔다. “엄마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딸의 인생이 짓밟힌 날입니다”로 시작하는 보도자료에선 “제 아이는 정상적인 입시 절차를 거쳐 합격했다”, “장애인의 입학전형은 일반인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해명이 담겨 있었다. 뉴스타파가 조목조목 제기한 특혜 의혹에 대한 구체적 해명 대신 “태어날 때부터 아팠던 우리 아이가 말도 안 되는 입시 의혹 때문에 또 한 번 아파야 하는 것인가”라는 주장만 담겨 있었다. 이정도 해명이라면 다른 언론이 추가 취재해볼 만하다.

하지만 언론은 쉬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나경원 의원 측의 언론대응도 한 몫 하고 있다. 나경원 의원측은 18일 각 언론사 기자들에게 배포한 문자를 통해 “나경원 의원은 뉴스타파가 보도한 ‘나경원 의원 딸, 대학 부정 입학 의혹’ 제하의 기사와 관련하여, 뉴스타파 황일송 기자를 상대로 한 형사고소장을 2016.3.18. 오후 8시 30분경 접수했으며,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의 민사소송도 곧 접수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언론사들은 이 점을 양지하셔서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하에 보도에 신중을 기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이 문자의 의미는 기자가 아닌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인용기사라도 썼다가는 ‘너도 고소하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경고다. 나경원 의원은 과거 시사인이 ‘1억원 피부과 이용 논란’을 보도했을 당시에도 시사인 기자 등 기자 4명을 형사 고소했다. 이들은 모두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