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 승리하면서 생긴 이른바 ‘인공지능(AI)’ 열풍이 지난 2주일 동안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언론은 연일 미래에 펼쳐질 ‘인공지능의 인간 지배 시대’를 예상했고, 정부는 이른바 한국형 알파고 프로젝트에 1조원 투자 계획까지 밝혔다. 

그러나 언론이 쏟아낸 ‘인공지능 열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가능하지 않거나 확신할 수 없는 추측과 예측들이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이런 글은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충격과 묘한 불안감에 편승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언론이 제시한 미래 인공지능 사회의 대표적인 사례가 판사와 의사, 기자 등 전문직종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로봇은 이제 기자를 비롯 변호사, 회계사, 금융 애널리스트, 의사 등 전문직 영역까지 넘보는 수준으로 진화했다.”(3월7일자 헤럴드 경제)

YTN 뉴스에서는 지진과 관련된 기사를 미국 LA 타임스로봇 기자 ‘퀘이크봇’이 작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기사를 쓸 것처럼 보도했다.

노컷뉴스는 지난 8일 사설에서 “인공지능의 발전이 어느 시기에 다다르면 인간은 인공지능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바보’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라며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고 추측했다. 이 매체는 대량 실업 문제와 관련해 “인간이 하던 단순작업을 인공지능 로봇이 대체하는 것은 물론 화이트칼라 영역의 전문직업까지 진출하게 된다”며 “변호사와 판사, 의사, 통역사, 스포츠 경기장의 심판 등이 모두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해설진이 알파고의 백90수(좌하귀)가 실착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특히 서민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지난 10일 법률신문에 ‘인공지능 판사’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인공지능 미래 화두에 불을 당겼다. 이후 많은 언론이 인공지능 판사가 판결하는 미래를 구상하는 글을 썼다.

세계일보는 12일자 ‘판사들은 왜 이세돌 승리 간절히 원했을까’에서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무릎을 꿇은 것을 계기로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알파고처럼 완벽한 판사한테 재판을 받고 싶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이는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정확하다는 믿음에서 비롯한 바가 크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상당수 인간은 정확성은 물론 공정성 면에서도 기계가 사람보다 낫다고 여긴다”고까지 평가를 했다. 전관예우, 법조브로커, 유전무죄 무전유죄 등의 병폐가 없을 것이라는 심리적 기대감에 기댄 평가이다.

판사 변호사 등 사법 직종이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근거로 언론은 옥스퍼드대 마이클 오스본 교수는 2013년 논문을 들었다. “판사 직업군이 컴퓨터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가능성은 40% 정도 된다”는 것이 논문의 내용이다. 국민일보는 14일자 ‘로봇 검사·AI 판사 나오나… 법조계 우려·기대 교차’에서 “미국 법률 자문회사 로스인텔리전스는 IBM 인공지능 ‘왓슨’을 기반으로 대화형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왓슨은 1초에 80조번 연산을 하고, 책 100만권 분량의 빅데이터를 분석한다”며 “방대한 양의 법률 자료를 분석하는 인공지능이 판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썼다.

연합뉴스TV는 15일 “대표 화이트칼라 직종의 하나인 금융 전문가들은 이미 인공지능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며 “실제 지난해 미국 상위 15개 투자자문사에서 인공지능이 운용하는 자산은 우리 돈 60조5천억원으로 5년만에 7배 넘게 급증한 상황,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우리사회의 고소득, 전문직 직종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날이 머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지난 17일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한편, 1조원을 투자하고, 민간 투자도 5년간 2조5000억 원 이상 이어지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세계 지능정보기술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야심찬 주장까지 폈다.

이를 두고 과학기자들은 시류에 편승하는 언론보도와 냄비같은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과학분야만 10년 넘게 취재해온 A언론사 과학담당기자는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언론이 쓰는 흥미위주의 기사들과 정부가 내놓은 냄비정책은 말이 안된다”며 “수준높은 인공지능은 연구자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인데, 돈 쏟아붓는다고 단기간에 만들어질 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 판사 보도에 대해 이 기자는 “객관적 사실관계를 판단해 형량을 내놓았다고 해서 과연 이를 인정하겠느냐, 어차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문제이며 인공지능 역시 보조수단으로 쓰일 뿐”이라며 “마치 인간의 결정과 판단조차 인공지능에 의존할 것처럼, 그런 사회가 올 것처럼, 판사 일자리도 빼앗을 것처럼 쓰는 것은 과장하고 부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R&D 사업에 투자해 언제까지 무엇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라며 “열심히 투자해서 만들어본다 한들 알파고의 구글은 가만히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B일간지 과학담당기자도 “한국언론에만 인류의 위협을 느끼고, 알파고의 영국 언론에는 ‘흥미로운 대국과 대결’ 수준이었다”며 “특히 인공지능 판사와 인공지능 재판이라는 건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쓴 것인지 황당하다. 도저히 장담할 수 없는 얘기들을 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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