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새벽 4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 ‘관악산휴먼시아2단지’ 정류장. 강남의 한 빌딩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이아무개씨가 8541번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8541은 지하철 첫 운행시간 전에 출근해야 하는 주민을 위해 새벽 4시부터 4시 50분까지 3대가 운행되는 버스로 이용객 대부분이 강남구 인근 빌딩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와 경비노동자다. 그는 “나이가 77살이라 힘에 부치는데 그래도 일을 나가야 먹고 살지”라면서 “이 시간에도 어떤 사람이 정류장에 찾아와 인사도 하고 선거운동을 하고 가더라”고 말하며 첫차에 올랐다.

이씨가 말한 ‘어떤 사람’은 이상규 전 의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규 전 의원은 지난 16일 새벽 4시10분 관악산 중턱의 휴먼시아2단지 버스정류장에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8541 노선을 따라가는 새벽 선거운동은 지난 2012년부터 시작해왔다. 이 전 의원은 직접 차를 타고, 버스보다 정류장에 먼저 도착해 새벽차를 기다리는 주민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며 인사했다. 그는 4시 50분까지 같은 노선을 총 3번 반복해서 들렀다. “TV에서 많이 본 사람인데” “요새 뭐 하세요” 명함을 받아 든 일부 주민들이 이 전 의원에게 아는 체를 했다.

▲ 3월16일 새벽 4시 반, 서울 관악구 신림동 8541번 버스정류장에서 이상규 전 의원이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내란음모’라는 정치적 낙인과 정당 강제해산의 여파 때문에 통합진보당 전 의원의 출마에 대한 비관적인 관측이 우세한 상황에서, 이상규 전 의원이 다시 관악을 국회의원 출마 준비에 나섰다. 그는 지난 2012년 19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할 때까지 관악을 지역의 국회의원으로 일했다. 아직 당적이 없어 후보번호가 없는 이 전 의원은 ‘진보대표 이상규’만 적힌 노란색 바람막이를 입고 3월 초부터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6일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상규 전 의원의 ‘관악을 선거운동 12시간’을 동행취재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이념 낙인', 이 전 의원 “직접 만나가며 편견 깰 것”

이날 이 전 의원의 쉬는 시간은 길어야 20분이었다. 왕성교회, 서원동 장군봉 배트민턴장, 신림역 2번 출구, 동네 경로당 7여 곳, 난향초등학교, 삼성시장, 봉천동 한독운수 등 관악을 지역 구석구석을 방문하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 전 의원은 매일 신림역과 신대방역을 번갈아가며 출근길 아침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이 전 의원은 오전 7시30분 신림역 2번 출구 앞에서 “박근혜 독주 심판”이 크게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서서 출근하는 주민들을 향해 인사를 시작했다. 바쁜 출근길에 피켓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나 일부 시민들은 이 전 의원에게 먼저 다가가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반면 “북한 가세요”라 말하며 이 전 의원 앞에서 명함을 찢어 바닥에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종북’, ‘빨갱이’ 등의 이념적 낙인은 이날 이 전 의원이 선거운동을 하는 내내 따라붙었다. 그의 명함을 유심히 보던 관악구 주민 윤아무개씨(84)는 “사상적으로 문제”라며 “당 자체가 대한민국에 역행하는 당에 속한 사람 아니냐”고 말했다. 난향초교 앞에서 명함을 받은 대학생 백아무개씨(24)는 “통합진보당은 ‘종북’ 노선이 아니냐”면서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좋지 신념만 앞세우는 사람은 싫다”고 날을 세웠다.

▲ 이상규 전 의원은 신림역과 신대방역을 중심으로 매일 출근길 아침인사를 나가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반면 지난 의정활동을 기억하는 주민들은 이 전 의원의 진정성을 강조하며 응원을 보냈다. 신림역 2번 출구 앞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아무개씨는 “관악구 의원할 때 많이 봤다. 일 열심히 하고 잘한다”면서 “당이 싫어도 저런 사람은 괜찮다. 이번에도 당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난향초교 앞에서 이 전 의원을 본 주민 장아무개씨(38)는 “작은 차 몰고 다니면서 동네 이곳저곳 부지런히 다녀서 거리감이 없는 사람”이라며 “북한 세력이니 뭐니 하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안타깝고 나 같은 주민들이 많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낙인에 대해 이 전 의원은 “작년 재보궐선거 당시 시장에서 인사를 할 때 어떤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끝까지 나를 쫓아오며 ‘종북’이라는 말을 했다. 지지하는 주민들조차 나를 옹호하면 ‘빨갱이’ 소리를 들으니 주변 사람에게 말을 못했다”면서 “지금은 1년 전과 매우 다르다. 주민들을 만날수록 편견은 해소되고 있고 선거사무소에도 응원한다고 들리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만나서 부대끼면 바뀐다. 실제로 공무원 계층에 있는 사람도 직접 (나를) 만나더니 ‘종북 이미지가 다 깨진다’고 한 적이 있다”면서 “주민들이 매일 찾아와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 이번 선거를 ‘반격의 신호’라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르신 공경하는 종북 봤느냐”

이날 선거운동의 중심은 경로당이었다. 삼성동의 율곡 경로당, 원신 경로당, 휴먼시아 아파트 1,2,3 단지 경로당 등 7여 곳을 방문했다. 반공 정서 때문에 이 전 의원에 대한 노년층의 거부감이 높을 거라 예상됐지만, 경로당의 노인들은 이날 방문한 어느 곳보다 이 전 의원을 환대했다.

“왜 통 얼굴을 안 보였냐”는 질책부터 “아이고 우리 이상규 고생했다”는 반가움, “힘든 싸움 어떻게 하려고” 등의 우려까지 노인들은 다양한 안부인사로 이 전 의원을 맞았다.

▲ 관악구 휴먼시아아파트 내 한 경로당에서 이상규 전 의원이 할머니들에게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이상규 후보 선본

율곡경로당의 김아무개씨는 “약자를 도와야 하는 거라, 이상규는 여론이 좋았다”면서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휴먼시아아파트 내 경로당의 한 노인은 “한 달밖에 안 남았는데 뜻맞는 정당이 있으면 얼른 찾아 들어가라”면서 “힘든 싸움 어떻게 하려고 나왔느냐”고 격려했다.

이러한 호의는 이상규 전 의원이 의원 재직 시절 지역구 내 경로당 복지에 많은 신경을 써온 데 따른 것으로 보였다. 이상규 의원은 2012년 특별교부세로 끌어온 지역 예산 10억을 경로당 복지에 써 경로당 1곳을 신설하고 기존 경로당의 리모델링을 추진했다. 그는 당시 지역 노인회에서 “박근혜는 당선돼도 안 하더니 이상규는 행동으로 보이네”라며 “어르신 공경하는 종북 봤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이 전 의원은 자신이 해결한 민원 현장이 보일 때마다 손가락으로 장소를 가리켰다. 10년 동안 민원이 제기된 ‘삼성시장 내 기울어진 전봇대’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전봇대를 교체한 것, 매년 반복되는 도림천 수해 침수 문제를 해결하고 빗물저류조를 만든 것, 미성동 어린이집 신축을 위한 예산을 확보한 것 등이 그가 애쓴 현안이었다.

이 전 의원의 지역 활동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높았다. 관악을 주민 성아무개씨(45)는 “이상규 후보에 나쁜 이미지가 있어 지지하진 않지만 일을 열심히 잘해서 개인적으로 좋은 평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주민 권아무개씨(41)와 이아무개씨(66)도 “이 전 의원에 호감이 없지만 좋은 사람, 잘하는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정당 해산, “진보당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이 전 의원은 출마를 선언하기 전 한 달을 고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지지자가 ‘돈도 없고 빚내서 선거할 게 뻔하고 가능성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왜 나가려 하느냐’고 말리기도 했다”면서 “7개월 동안 저녁마다 약속을 잡고 주민들을 만나왔다. 관악이 진보정치의 근거지로 계속 돼야함을 느꼈고, 진보당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이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지난 2012년이 당선에 우호적인 환경이었다면 올해는 장애물이 많다는 점에서다. 2012년 당선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당 대표의 정치적 기반과 야권연대의 영향이 컸다는 평가가 제기된 바 있다. 지금은 정당이 해산된 상황에서 지난 2여 년간 쌓아온 인지도는 당선가능성을 높이기에 부족한 상황이다. 관악을 민심은 야권 지지 성향은 강하지만 진보정치 지지도는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다.

▲ 이상규 전 의원이 3월1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난-초등학교 앞에서 주민들에게 명함을 나눠주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에 대해 이 전 의원의 선거운동본부에 있는 이승헌 전 보좌관은 “이번 선거의 목표는 ‘진보정치의 회복’이자 ‘진보정당의 부활’”이라면서 “출마를 해서 이 지역의 진보정치를 어떻게 일궈갈 것인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지만, 야당 어디도 박근혜 독재를 제대로 견제하지 않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진보정치를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답했다.

이 전 의원 또한 “‘박근혜 독재 심판’은 우리만이 내세울 수 있다. 여야 모두 기득권 정치를 하는 상황에서 서민과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명확하게 낼 것”이라며 “의원이 될 당시 8년 동안 이 지역에서 진보정치의 기둥을 만들 것이라 결심했었다. 앞으로 주민들을 더 많이 만나고 서민, 약자의 목소리를 내면서 최대한 그들의 지지를 끌어올릴 것”이라 말했다.

“여기가 호남인 70%, 골수 민주당인데 되겠어?”

신림동 삼성시장의 민심은 복잡했다. “더불어민주당에 표가 몰려야 한다”고 지적하는 여론이 우세했다. 잡곡을 파는 박아무개씨(68)는 “여긴 호남인이 대부분이고 골수 민주당 지역”이라면서 “어떻게든 더불어민주당 쪽으로 표가 몰릴 것”이라 말했다.

한편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이 아니어서 새로울 것”이라는 기대감도 제기됐다. 남아무개씨(77)는 “새누리나 민주당이 선거 때면 되면 뭘 해준다고 했다가 당선되면 입 싹 씻는 게 한국의 실정 아니냐”며 “(이상규 후보는) 젊은 사람이고 새로워서 아무래도 좀 다를 것이란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상인들도 있었다. 임아무개씨(56)는 “(국회 내에) 대안이 없다. 서민을 실질적으로 돕고 여당을 견제할 야당 역할을 할 수 있는 후보는 이상규 후보”라면서 “전 의원 프리미엄도 있고 여야가 갈리고 야권도 갈린 상황에서 어부지리 효과도 있고 대학가여서 젊은 층이 많다는 이점이 있다. 발로 뛰면 좋을 결과 나올 수 있을 것”이라 평가했다.

현재 관악을은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와 정태호 더민주당 후보의 공천이 확정된 가운데, 국민의당 공천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안철수 의원 측근이라 불리는 박왕규 예비후보, 천정배·정동영 후보의 추천을 받는 이향자 후보, 관악구청장을 지낸 김희철 후보가 공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각에선 “지역 기반이 없는 박왕규가 공천돼 3파전이 벌어지고 표가 찢어지면, 이상규 후보에게도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 전 의원이 우세할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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