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품을 들을 때, 우리는 그 작곡가가 인생의 어떤 길을 걷고 있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베토벤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지요. 사람들은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위대했지만 인간으로서 더 위대했다”고 입을 모읍니다. 베토벤의 교향곡을 들을 때 우리는 인간 베토벤의 모습을 떠올리고, 인간 베토벤을 생각하며 다시 음악을 듣게 되는 거지요.

씩씩하고 당당한 교향곡 2번을 작곡한 게 1802년 여름부터 가을까지라는 사실을 알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기 직전이기 때문입니다. 음악가에게 최악의 저주인 청력 상실, 그 때문에 본의 아니게 택해야 했던 고독…. 베토벤이 이 무렵 느꼈을 비통한 마음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작곡한 교향곡 2번이 찬란한 빛과 생기로 가득차 있다니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당시 그는 “불행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에 열중하는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피아니스트로 활동했고, 한결 성숙한 작곡가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었고, 사랑을 갈망했고, 자기 천재성을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불행은 이미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그는 삶과 사랑과 예술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교향곡 2번은 불행의 그림자가 그를 어둠 속으로 몰아넣는 바로 그 순간, 자기의 젊은 시절에 바치는 찬란한 오마주(Homage)라고 말하고 싶네요.

교향곡 1번을 발표한 직후 처음 스케치를 썼고, 2년 만에 완성했군요. 베토벤은 한꺼번에 여러 작품을 진행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헷갈려 하는 일이 없었다고 하지요. 이 기간에 그는 피아노 소나타 <월광>과 <템페스트>, 바이올린 소나타 <봄>, 현악오중주곡 C장조 등 많은 작품을 쓰며 이 교향곡의 아이디어를 성숙시켰습니다. 교향곡 1번과 똑같은 악기 편성이지만 음악의 규모, 깊이, 기법이 크게 확대됐고, 환희와 열광, 낭만적 도취감이 넘칩니다.


베토벤 교향곡 2번 D장조 Op.36
유투브 검색어 : Beethoven Symphony 2 Thielemann
https://youtu.be/lfYHn-8UXOA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 빈 필하모닉 관현악단 연주)

1악장은 드라마틱한 서주로 시작합니다. 고뇌의 그림자가 살짝 고개를 쳐들고 긴장이 고조된 뒤 교향곡 9번의 1악장 주제와 비슷한 대목이 등장합니다(링크 2:10). 다가올 운명을 예감하듯, 베토벤이 어두운 마음을 내비친 거지요. 알레그로 콘 브리오(빠르고 생기있게)의 제1주제는 찬란하고 당당합니다. 언뜻 비치는 비극적인 느낌은 열광과 도취의 격류에 휩쓸려 사라져 버립니다. 이어지는 제2주제가 이 교향곡에서 제일 멋진 대목이라고 말하고 싶군요(링크 3:58). 목관이 먼저 주제를 연주하면 오케스트라 전체가 큰 소리로 받아줍니다. 오늘의 고민과 내일의 걱정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음악은 거침없고 당당합니다. 베토벤이 얼마나 올곧고 씩씩한 젊은이였는지, 이 대목을 들으면 저절로 느끼게 됩니다. 전개부와 재현부를 거쳐 열광적인 코다로 힘차게 마무리합니다.

2악장 라르게토(링크 12:20)는 베토벤이 이 무렵 작곡한 모든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울 것입니다. 바이올린을 위한 로망스 F장조를 연상케 하는 부드럽고 따뜻한 선율이 시냇물처럼 흐르지요. 특히 첫 주제는 조두남이 작곡한 우리 가곡 <그리움>(기약 없이 떠나가신 그대를 그리며, 먼 산 위에 흰 구름만 말없이 바라본다)과 선율이 비슷해서 기억하기 좋겠군요. 베토벤 당시에도 성악곡으로 편곡해서 연주했다고 하는군요. 이 대목을 클라리넷이 연주하니 따뜻한 느낌이 짙게 배어납니다. 사랑과 동경을 담아 바이올린이 고음으로 노래하는 제2주제는 더욱 매혹적이지요.

이 교향곡의 3악장에서 베토벤은 처음 ‘스케르초’를 도입했습니다. 궁정 무용인 메뉴엣을 버리고 시민 민주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자유로운 악장을 넣은 거지요. ‘스케르초’라는 말은 원래 ‘농담’이란 뜻으로, 가볍고 재치있는 간주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3박자로 돼 있지만 한 마디를 한 박자로 지휘해야 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음악이지요. 4악장 피날레는 에너지가 끓어오르는 젊음의 찬가입니다. 역동적인 대조와 예상치 못한 조바꿈으로 가득한 이 피날레는 젊은 베토벤의 심장에서 자연스레 용솟음쳐 나온 음악인 것 같습니다.

당시 음악평론가 로흘리츠(Rochlitz)의 말입니다. “이 교향곡은 열정적인 작품이며, 지금 유행하고 있는 숱한 아류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더라도 홀로 살아남을 것이다. 내 말이 옳다는 게 머지않아 증명될 것이다.”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Romain Roland)의 말입니다. “이 곡은 쾌활하고 동경에 차 있다. 사람을 즐겁게 하고자 하는 욕구,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친다. 이것은 한편의 시이며, 곧 개화될 천재적 정신을 감추고 있는 작품이다.”

1803년 4월 5일 안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초연됐습니다. 이 교향곡은 미증유의 음악적 항해를 떠나기 직전, 베토벤이 과거의 음악 전통에 작별을 고하는 인사처럼 들립니다. 베토벤은 고난 가득한 미래를 향해 한 걸음을 떼며 젊은 시절의 찬란한 빛을 예찬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 곡을 듣노라니 엉뚱하게도 보들레르의 <가을의 노래> 첫 구절이 자꾸 머릿속을 맴도네요.

우리 이제 차디찬 어둠 속에 잠기리니
안녕, 너무 짧았던 우리 여름날의 찬란한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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