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9일 강남역 8번 출구 앞 반올림 농성장에서 홍리경 감독의 <탐욕의 제국> 영화를 상영했다. <탐욕의 제국>은 삼성 직업병 피해 여성노동자들의 얘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2년 전 딱 이맘때 개봉했다. 2년이 지난 지금, 탐욕의 제국인 삼성은 얼마나 변화했을까. 저녁 7시 반부터 꽃샘추위로 온몸을 웅크린 채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들과 영화 얘기를 나누었다.

전성호 전 하이닉스 반도체 노동자, 하해성 노무사, 이병국 1인 미디어활동가, 그리고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 권영은 활동가가 함께 했다. 지난 2012년 급성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삼성전자 협력업체 관리직원 고 손경주님의 아들 손성배씨도 토론에 함께 참여했다.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생산 라인을 지켰던 삼성 반도체 노동자

전성호 : 박민숙(삼성반도체 유방암 피해자) 님이 말한 것 같은데, 라인에서 ‘삐삐’ 하면 라인에서 뛰어다닌다고 하는데, 노광기 장비에서, PR이 떨어지면 ‘삐삐’ 울리는 거예요. 계속 뛰어다닌다는 걸 설명하는 걸 들으니 내가 그 짓을 했구나 싶더라고요.

▲ 2016년 3월9일 강남역 8번 출구 앞 반올림 농성장에서 홍리경 감독의 <탐욕의 제국> 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사진=반올림

이종란 : 다시 보니 내가 참 수다스럽군요!(웃음). 쇳소리 나는 저 클린룸 저 속에 전성호도 있었구나. 영화 보면서 생각했어요. 그런데 뛰어다니면 청정수칙 위반 아닌가요?

전성호 : 안 뛰어다닐 수가 없죠. 소리부터 꺼야 하니.

이종란 : 영화 속에 방제복은 장면은 2013넌 불산 누출 사고 났을 때 장면이예요. 라인을 멈추고 사고를 수습했어야 하는데, 라인을 안 멈추려다 보니 사람이 죽고 말았죠.

손성배 : 2013년이면 삼성에서 동탄 공청회를 했었을 때 어머니도 다녀오셨어요. 삼성이 하는 거라 안전하다고 했지만, 그런다더라고 동탄 주민들이 삼성 말만 믿지는 않는 상태였죠.

영화 속 최우수 삼성전자 부사장, “유감이다”가 진정한 사과인가

이병국 : 국정 감사 장면을 보면 최우수가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나오던데. 국정감사 그러면 사장이나 부회장급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건희, 이재용을 불러도 삼성은 나오지 않은 게 인상적이었어요.

이종란 : 국가 기관보다 높다고 생각해서 국회의원과 급을 맞추려고 부사장이 나간 것 아닌가 싶어요.

손성배 : 최우수 부사장의 말도 그게 뭐예요? “유감이다”라는 말이 전부라니. 재작년 권오현이 나와서 ‘그간의 소홀함에 대해 유감이다’ 라고 한 거나, 최근 몇 명의 피해자 가족을 불러놓고 내용 없는 사과를 그대로 반복하며 손 맞잡는 장면을 크게 홍보하는 거나. 피해자와 그 가족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린 소모품이 아니라. 라고 외치는 수밖에, 버티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1월에 반올림과 약속한 재발방지대책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감시도 하고요.

보상금 가지고 ‘분탕질’한 삼성 때문에 분리된 직업병 피해자들

손성배 : 영화를 처음 봤어요. 항상 김시녀(삼성 LCD 뇌종양 피해자 한혜경 님의 어머니), 황상기(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 님의 아버지) 님을 보면 먼저 어렵게 산길을 내주셔서, 덕분에 그 길을 나는 쉽게 저벅저벅 걸어가는 것 같아 감사해요. 반올림 활동가도 그렇고. 영화 중에 경비들이 아저씨를 밀치기도 하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안타까운 장면이던데. 그래도 그때는 가족들이 함께 하는 일이 꽤 많았구나. 했어요. 갈리게 된 게 뭘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빌어먹을’이라는 생각? 빌어먹도록 분탕질을 하는 삼성이라. 이렇게 갈려서 힘들게 버티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결국에 빌어먹는 분이 생기도록 한 거죠. 함부로 말하는 것처럼 들리시겠지만, 물론 나도 그렇게 될 수도 있죠. 빌어먹도록 만든, 그런 상황을 만든 삼성이 너무 한 것 같아요. 자신들 멋대로 기준을 만들고, 마음대로 보상해놓고, 그걸로 직업병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하다니요. 피해자들은 억울하고 참담하지만, 그 기회를 놓치면 영 보상을 못 받을까 마음 졸이게 되잖아요. 저도 12월 마지막 날, 옳은 이 길을 선택하는데 얼마나 망설이고 고민을 했는지 몰라요.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지난 2013년 3월 서울 곳곳에서 전자산업 피해자 추모주간 행사를 열었다. 사진=반올림 제공

이종란 : 오랜만에 보니까 희수(삼성반도체 뇌종양 피해자 고 이윤정 님 남편)씨도 참 열심히 싸웠는데 싶고. 윤정씨도 오랜만에 생각도 나고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권영은 : 똘똘 뭉쳐져 있는 가족들 모습이나, 끝까지 싸우고 싶다. 고 말하는 가족들의 말들을 보면서 왜 지금은 아닐까. 하고 배신감을 느낀 적도 있어요. 지금 보니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황상기, 김시녀 님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하네요.

이종란 : 박상훈 변호사가 언급되는 장면을 보니, 삼성은 영상을 찍었던 그때부터 합의하고 싶어라 했네요. 반올림과 대화하고 싶다며 법원의 조정을 제안하기도 했죠. 피해자 가족들은 아무래도 조정은 아닌 것 같다며, 법정 바깥에서의 대화는 가능하다고 해서 시작된 게 교섭이죠.

하해성 : 나오는 분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니까 보는 저도 힘들었어요. 조합원들이 국가로부터 침해받았다고 생각하는 자가 공무원에게 쌍욕 하는데, 상대가 자존심 상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싶어서 힘이 빠지던데,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힘들었어요. 탐욕의 제국의 본질을 느끼게 한 영화 같아요.

이종란 : 홍리경 감독은 고통스런 장면을 빼고 만들었어요. 장례식도 다 찍었어도 안 넣었고요. 남들이 고통스럽지만 볼 수 있는 것을 담으려 애쓴 것 같아요.

삼성 안으로 전달되지 못하는 반올림의 목소리

전성호 : 정애정(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황민웅 님의 아내) 씨가 소리를 지르는데, 목소리가 더 안 나오는 장면이 있었죠? 그게 극적인 효과가 있지 않나요?

이병국 : 저도 그런 효과를 쓰는데, 소리를 하면 문자로 들어오는데, 상으로 보여주면 더 극적인 장면이 되기도 해요. 혜경씨도 흔들리며 음성이 나오는 장면도 있고, 슬로우 화면은 관객이 생각을 더 오랫동안 하게 해요.

권영은 : 저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소리가 더 크게 느껴져요. 한편으로 삼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반사되고 마는 안타까운 목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요. 소리에 대해 감독이 고민했던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공장 안의 소리였어요. 높은 기계음이 계속 난다고 피해자들이 증언하는데, 그게 뭘까. 공장 안을 한 번도 들어가지 않은 감독이 재현하기 힘들었을 거에요. 교섭 중에 공장 안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는데, 감독이 재현한 소리랑 비슷하더라고요.

전성호 : 그건 컴프레서 진공펌프 소리 돌아가는 소리예요.

이종란 : 혜경이 고개를 들고 나뭇잎을 흔들리게 찍은 것이 답답함을 드러내는 것 같았어요. 잘 찍었다 싶어요.

피해자들, “삼성과 싸울 수 있어 ‘충만함’ 느낀다… ‘연대의 힘’도 느껴”

이종란 : “장애에도 불구하고 삶은 충만하냐?”는 설문에 혜경씨가 매우 그렇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전 반올림 활동을 하면서 많은 피해자와 돌아가신 분들의 가족들을 만나다 보니, 살아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충만한 건지 느끼게 돼요.

권영은 : 전 혜경씨가 충만하다고 대답한다는 게 오히려 반어법 같아서 마음이 아팠는데, 진짜일 수도 있겠군요.

전성호 : 저도 삶을 충만하다 느꼈어요. 일을 그만두고, 몸이 아팠다가 지금은 나아보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혜경씨라면 충분히 삶이 충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종란 : 혜경씨가 충만함을 더 자주 느꼈으면 해요.

▲ 반올림 영화제 포스터. 사진=반올림

손성배 : 반올림 농성장에 오면, 해결이 안 되었지만, 여기서 위로를 받아요. 가족모임을 했을 때 어머님이 남편을 잃은 분을 만나 얘길 하는데, 엄마가 예전에 했던 얘기를 똑같이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자존심이 상한다’ 이렇게요. 우리 엄마도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공감을 많이 하셨나 봐요. 어머님이랑 집에 가는데,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가장 불쌍한 줄 알았는데, 내가 도와줄 이도 있더라’라고. 삼성직업병 문제라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과정에서 얼마든지 충만할 수 있겠다. 싶어요. 혜경씨도 그 주위에 반올림 같은 도와줄 이가 없으면 충만함을 느끼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내 안의 탐욕이 있기에 ‘탐욕의 제국’이 계속된다”

하해성 : 개나리, 라일락이 뭘까. ‘내용도 어려운데 기호들도 대체 뭐지?’ 했어요. 그래도 탐욕의 제국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식인 것 같아요. 내 안의 탐욕이 있기에 탐욕의 제국이 계속되는 것이기도 할 텐데. 감독은 의도와 정서를 담았지만 보는 사람마다 달리 보이고, 불친절하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반도체 현대 과학문명의 집결된 산업의 이면을 이렇게 담은 건 가만히 보니, 감독이 모든 것을 다 표현해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찍은 것 같아요.

이병국 : 탐욕의 제국의 의미 중 가장 큰 의미는 최초의 삼성에 대한 비판한 다큐멘터리라는 거죠. 감독의 시선으로. 강약의 분배가 잘 된 것 같아요. 홍리경 감독의 다음 작품을 보고 싶어요.

하해성 : 3월 19일 토요일에는 이병국 님의 보도물을 보는 거죠?

권영은 : 기대되죠? 그땐 더 세게 영상을 비평해 볼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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