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화장실에 3개월 동안 감금되어 있다가 사망한 신원영군(7)이 안치된 평택시 청북면 평택시립 추모 관에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원영군의 얼굴을 보니, 큰 돌덩이 하나가 가슴을 짓누른다. 과연 이 아이는 우리가 살릴 수 없었던 것인가.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곤 한다. 

원영군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14년 3월이다. 아동보호 전문기관 상담원은 5차례에 걸쳐 원영군 가정을 현장조사 한 끝에 학대 정황을 포착했으나 관련법(아동학대 범죄에 관한 특례법)이 없어 다시 그 지옥 같은 곳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아이는 두려움에 떨며 집으로 돌아갔고 결국 죽어서 그 집을 탈출 할 수 있었다. 이는 사이코패스 부모를 만난 한 아이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낯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원영군 사건은 2013년 10월에 발생한 울산 사건과 놀랍게 닮아 있다. 당시 이 사건 민간단체 조사 위원으로 참석했던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14일 출간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에서 당시 참혹한 현장을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여덟 살 때 사망한 아이는 계모의 폭행으로 갈비뼈 16개가 부러진 상태였고, 그 갈비뼈들이 폐를 찌른 것이 사망의 원인이었다. 계모는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폭행을 반복해 엉덩이 근육이 소멸되어 섬유화가 진행된 사실을 확인되었으며, 다리를 부러뜨리고 화상을 입히는 등 잔혹한 학대를 지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 범죄에 관한 특례법’은 국회에서 입법화됐고 2014년 9월부터 시행됐다. 김수정 변호사는 책에서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그에 근거한 제도 개선안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주체는 정부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정부가 진상조사에 나선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2000년 영국에서 ‘빅토리아 클림비’ 라는 아이가 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영국정부는 15개월 동안 37명의 조사 패널을 구성해 사건 진상을 조사했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조사 패널들은 12차례 아이를 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냈고 그 결과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가해자 부모는 종신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3년도 되지 않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고 말았다. 기록되지 않는 참사는 곧 반복된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사회 각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감춰진 문제에 대해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1998년 열차 검수원이었던 A씨 등 동료들은 새마을호 열차 바퀴 축에서 6개월 동안 바퀴에서 열이 심하게 나는 축상 반열 16건을 확인한다. 그들은 노조를 통해 이 문제를 제기했으나 차량 사무소는 관련 문제제기를 외면하면서 오히려 그들을 부당하게 전환 배치했다. 그러는 사이 1998년 12월 포항을 출발해 서울로 가던 새마을 열차 차축에서 축상 반열이 원인이 돼 화재가 발생한다. 그들은 불안감에 1998년 12월 29일 철도노조가 주최하는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폭로했다. 

그들의 폭로로 수많은 승객들의 목숨을 살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가혹한 징계와 전출이었다. 이 싸움을 돕던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그때만큼 미국의 법 제도가 부러운 적도 없었다. 미국은 1989년 내부고발자 보호법을 제정했는데 그 안에는 내부고발이 징계의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점만 입증해도 내부 고발자는 보호받을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내부고발자 A씨는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비극적인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다른 제보자들은 내부고발이 인정되어 현재 검수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이외에도 의료사고, 군 가혹행위, 난민 문제, 프로야구 임수혁 선수 등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들을 담당 변호사들의 시각으로 차분히 기록하고 있다. 저자 8명은 모두 인권 변호사이자, 사회에 소외받은 시민들을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는 변호사들이다. 망각은 곧 반복된다는 것을 뜻하며 그 반복은 나 자신에게도 언제든지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사람의 사건은 이 시대의 과제이며, 우리는 그 과제를 기록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과거 한 개인의 사건으로 우리사회의 미래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차분히 정독할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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