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3시 30분경 서강대학교 화학과 교수실이 있는 리치과학관 앞,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란 출신 유세프 교수가 건물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으로부터 시위의 취지를 전해 들은 교수는 “이란에서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기 힘들어서 (이 일이)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강대 신아무개 교수가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현수막을 훼손한 사실이 밝혀져 거센 논란이 불거졌던 가운데, 서강대 학내에선 해당 교수를 규탄하고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서강대 성소수자 커뮤니티인 ‘서강퀴어모임&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이하 춤추는 Q)는 지난달 29일 학내에 “성소수자, 비성소수자 학우의 새 학기, 새로운 출발을 응원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게시했으나, 다음 날 현수막은 연결 끈이 절단되고 곳곳이 칼로 훼손된 채 쓰레기통에 버려진 상태로 발견됐다. 춤추는 Q와 서강대 총학생회가 교내 CCTV를 통해 확인한 결과 신아무개 교수가 훼손한 것으로 확인됐다.

▲ 서강대학교 단과대학 학생회, 언론사연합회, 풍물패연합회 등 각 학생 자치 단위가 모여있는 중앙운영위원회는 지난 11일부터 매일 약 9시간 동안 한 사람씩 돌아가며 1인 피켓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단과대학 학생회 및 언론사연합회, 풍물패연합회 등 각 학생 자치 단위가 모여있는 중앙운영위원회는 지난 11일부터 매일 약 9시간 동안 한 사람씩 돌아가며 1인 피켓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위원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모든 종류의 차별과 탄압에 반대한다”는 취지로 ‘찢어진 것은 현수막이 아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제작했다.

이날 오후 1시간30분 동안 피켓을 든 15학번 김수연씨는 “지나가면서 ‘수고하십니다’ ‘응원합니다’라고 힘주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캔커피랑 초콜릿을 주고 간 사람도 있다”면서 “내 주변엔 교수를 옹호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이 사태는) 명확히 성소수자 혐오 문제라고 합의된 상태”라고 말했다.

학생회와 학생들의 ‘릴레이 대자보’를 통해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움직임도 이어졌다.

서강대 사회과학대 학생회 ‘봄’은 대자보를 통해 “우리가 더 분노해야 하는 이유는 이 폭력적인 형태의 배제가 ‘반지성주의’라는 단면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며 “반지성주의와 비겁함으로 점철되어,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표현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 또한, 타인에 대한 혐오를 긍정하는 것, 소위 말하는 ‘혐오할 자유’는 성립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문제 교수를 규탄하고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서강대학교 내에 게시돼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학교 내 여성주의 학회 ‘틀깸’은 해당 교수가 “(자신은) 원래 지저분한 걸 잘 떼는 사람”이라고 한 해명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 단체는 “교수 입장에서 환영할 법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고,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불쾌한 것으로 여겨 짓밟는 행위는 학생자치에 대한 상징적인 살인행위”라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저분한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지저분한 행동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심리학과 학생인 이재연씨는 개인적으로 자보를 붙여 “성소수자는 아직도 ‘자기 자신’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더러운’ 존재로, ‘미친’ 존재로, ‘병에 걸린’ 존재로, 그리고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면서 “이제 와 교수가 사과를 한들,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칼자국은 영원할 것이다. 칼질에 상처를 받았을 모두가 더 이상 혐오와 차별로 인해 상처를 받을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현수막을 게시한 춤추는 Q는 지난 10일 서강대 신아무개 교수에 대해 재물손괴 혐의로 서울 마포경찰서에 고소했다. 춤추는 Q는 공개사과를 받기 전까지 고소를 취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서강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신아무개 교수는 14일 오후 12시경 총학생회장을 만나 사과문을 전달했다. 총학생회와 춤추는 Q는 사과문을 검토한 뒤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번 사건이 교수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낮은 인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학교 차원의 재발방지 대책이 요구되는 가운데, 서강대학교 교무팀은 14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교수가 사과를 전달한 상황이고 고소·고발 결과가 아직 나지 않아 지켜보고 있다. 재발방지 대책은 구체적으로 논의되거나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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