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조능희 본부장)가 합법적인 총파업 투표를 시작한 14일 MBC 사측이 직원들의 투표 장면을 몰래 촬영하다가 발각됐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달 23일 중앙노동위원회의 단체협약 조정중지 결정으로 MBC본부가 합법적인 파업권을 획득함에 24일 전국대의원회와 지난 7일 서울지부 대의원회를 열고 14일부터 18일까지 5일간 ‘단체협약 체결과 노조파괴 저지를 위한 MBC본부 조합원 총파업’ 안건에 대해 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 14일 오전 MBC 안전관리팀이 관리하는 경비업체 직원이 미디어센터 4층 옥상에서 상암문화광장 조합 투표소를 촬영하는 모습.
투표소는 각 지부 조합 사무실에 마련돼 있으며 본사의 경우 상암동 MBC 앞 광장 천막에도 설치 돼 있어 투표 기간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운영된다. 이번 투표는 직접 투표소를 찾아서 할 수도 있지만 모바일로도 개인 인증 절차를 거쳐 참여가 가능하다. 

실제 많은 조합원들이 직접 투표소를 찾아 투표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모바일 투표에 참여하고 있지만, 몇몇 조합원들은 조합 사무실과 옥외 투표소를 찾아 직접 투표를 하고 가는 등 합법적인 파업 찬반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오전 출근길 등 투표소를 이용해 투표한 조합원만 10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날 오전 MBC 미디어센터 4층 옥외 로비에는 MBC 안전관리팀이 관리하는 경비업체 직원 두 명이 등장했다. 그 중 한 명은 100~400mm 망원줌렌즈를 단 카메라를 가지고 상암문화광장에 설치된 투표소를 촬영하고 있었다. 

오전 11시경 미디어오늘은 노조 관계자와 함께 MBC 직원들이 투표소를 촬영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이들에게 왜 망원렌즈로 파업 찬반 투표소를 찍고 있는지 거듭해서 물었지만 이 직원들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서둘러 카메라를 챙겨 현장을 떠났다. 이들은 무전기를 통해 동료 직원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면서 비상계단을 통해 도망가듯 1층으로 내려가 건물 밖으로 나갔다.  

건물 1층 MBC 경비업체 관계자는 소속 직원들이 투표소를 촬영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지시를 받고 하는 것이니까 위에다 얘기해라”고만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송병희 MBC 경영인프라국장과 이재명 총무부장, 양정웅 노무부장 등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메시지를 남겼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카메라 기자들에 따르면 해당 망원렌즈는 아주 먼 거리에서도 피사체를 가까이 당겨 찍을 수 있는 고가의 장비로 촬영 거리를 감안할 때 투표에 참여한 사람의 얼굴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MBC 안전관리팀이 관리하는 경비업체 직원이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투표소를 촬영하는 데 사용한 망원줌렌즈를 단 카메라. 사진=강성원 기자
때문에 이 직원들이 사측의 지시를 받아 투표 참가자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촬영을 한 것이라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에서 규정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김세희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노조가 중노위 조정 절차를 거쳐 파업 찬반 투표를 하는 것은 정당한 조합 활동이고 비밀·무기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데, 사측이 누가 투표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투표 참가자의 자유 의지가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며 “조합원 입장에선 사측의 이 같은 행위로 투표 참여율 저조와 불이익을 염려할 수밖에 없어, 정당한 조합 활동에 사용자가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도로써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 성립 요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14일 오전 11시경 MBC 안전관리팀이 관리하는 경비업체 직원들이 상암문화광장 조합 투표소를 촬영하다가 현장에서 발각됐다. 사진=강성원 기자
▲ MBC 안전관리팀이 관리하는 경비업체 직원이 촬영한 장소에서 바라본 노동조합 투표소 모습
김 변호사는 또 “사용자가 투표 참여자들에게 촬영 동의를 받은 적도 없다면 초상권 침해 문제도 있을 수 있다”며 “사측이 회사에 CCTV를 설치할 때도 직원의 사생활 보호와 인격권 보장을 위해 동의를 얻고 공지하게 돼 있어 어떤 목적을 위해 촬영했느냐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항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노조 MBC본부 관계자는 사측의 이 같은 조합원 투표 감시·사찰 행위에 대해 “원래 방송사에 있는 모든 카메라는 국민을 대신해서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써야하는 것”이라며 “합법적 파업 찬반 투표소를 촬영하고 조합원들을 감시하는 카메라를 갖고 있는 자체가 수치스럽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부당노동행위가 백주대낮에 행해지는 현재 MBC 상황이 한심할 뿐”이라며 “그러니 그동안 사측이 벌인 수많은 위법 행위로 MBC가 이제 ‘삼류’로 전락한 것도 모자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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