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한 칵테일바의 메뉴판이 술에 취한 여성에 대한 조롱적 문구를 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술과 약물에 의한 성폭력이 사회적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제가 된 문구는 업소의 메뉴판 총 7장 중 상대적으로 알콜도수가 강한 칵테일 목록이 실린 마지막 장에 적혀 있다. ‘오빠!! 나 오늘 집에 안가!’라는 이름의 칵테일 이름 아래에 “이런~! 더 이상 말 안하겠습니다. 혼자 알아서 쭉쭉~ 마십니다”라는 설명이 달려 있고 ‘오빠 믿지?’라는 칵테일 이름 아래엔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슴다. ‘믿기는 뭘 믿냐?’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 술에 자꾸 손이 가요. 한 잔 두 잔.. ㅠㅠ”이 적혀 있다.

▲ 문제가 된 문구가 실린 메뉴 목록. 사진=손가영 기자

‘국제경영’이란 칵테일에는 “경영대 학생분들께서 불순한(?) 의도로 만들어달라고 했던 바로 그 칵테일 ㅎㅎ~ 이거 한 잔이면 쏘주 거의 1병이라는”이라는 문구가 달려 있다.

여성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는 상황에서 그를 성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의도가 읽히는 표현이다.

같은 페이지에 실린 또 다른 칵테일에 대해서 “잔을 들고 밑에서 위로 보면 꼭 여성의 XX(가슴)같다”는 문구로 설명해 여성의 신체를 빗댄 희롱적 어조가 강하다.

▲ '불순한 의도' 문구에서 여성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는 상황을 성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의도가 읽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인근 사립대학교 학생 및 젊은 층이 즐겨 찾는 해당 업소는 100여 종이 넘는 칵테일을 제조·판매하는 전문 칵테일 바로 행당동에 두 개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문제가 된 문구는 두 점포 메뉴판에 모두 포함돼 있다.

해당 메뉴판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알려지며 댓글을 중심으로 ‘성희롱인지 모르고 하는 말인가’ ‘불순한 의도로 만든 게 여자 취하게 하려고 만들었단 말인데 범죄 같다는 생각이 안 드나’ ‘재밌을 거라고 생각하고 만든 거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이 바를 방문했던 김아무개씨는 “달달하지만 쎈 술을 여자한테 먹이고 정신 놓으면 그 뒤로는 오빠의 것이 된다는 걸 함축하는 말 아니냐”며 “유머라 하더라도 여자로서 기분이 매우 나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바를 운영하는 관계자는 “그런 비판은 처음 들어봤다. 칵테일은 모두 기존에 있던 칵테일이고 설명한 내용도 기존에 있는 설명을 그대로 따온 것”이라면서 “‘오나집’도 원래 있던 칵테일이고 (성폭력을 미화하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 이름의 의미를 그대로 밑에 쓴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잇을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칵테일에 뭐가 들어가는지 표기하고 있는 건 그렇지 않은 곳보다 낫지만 ‘오나집’이나 ‘불순한(?) 의도’ 같은 표현은 술을 판매하는 업종에 있으면서 술을 이용한 성폭력에 문제의식과 경각심이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술과 약물에 의한 성폭력을 방지하는 성문화운동을 이끌어온 가온 ‘그건 강간입니다’ 캠페인 기획단장은 “(한국의 술 문화에서) 술과 여성은 한 카테고리로 당연히 같이 판매된다. 술을 파는 사람들, 사는 사람들이 이를 당연히 여긴다”면서, 이런 문구가 ‘농담’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농담이 유도하는 효과가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결국 성폭력적인 것에 대해 사람들이 웃고 넘어가게 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바 관계자는 “성폭력에 대해 묘사를 했다든지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불편하게 생각한다면 죄송한 일이고 충분히 바꿀 의향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1월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한 포장마차 컨셉의 술집이 가슴 등 여성이 신체를 드러내고 있는 벽화와 ‘걸레’ ‘골뱅이’ 등의 술에 취한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문구로 내부를 꾸민 사실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알려지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업소는 ‘다소 자극적이고 눈에 띄는 재미난 19금 이미지’ 컨셉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여성 비하적 행태라는 비난이 거세게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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