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쾅, 쾅, 쾅, 쿠구궁…” 지난 9일 오후 6시30분, 인천시 동구 송현동에 있는 한 그릇 도매상점의 지하실에서 20여 초간 폭발음이 들렸다.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고 지하실 안은 폭발 소리가 공명해 귀가 따끔거리기도 했다. 1층의 유리창은 ‘바르르’ 떨렸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그릇을 팔았다는 이철수(가명)씨는 “우리 집은 지하실 때문에 소리가 훨씬 크게 울린다”면서 “보름 전 진동이 더 셀 땐 2층에 진열된 그릇이 떨어져 깨졌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도로 건너편에서 천막가게를 운영하는 박수남(가명·72)씨도 “심할 땐 아침, 저녁으로 살이 떨렸다. 폭발이 진짜 30m 밑에서 터지는지, 10m 밑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라며 “주민들 모아서 데모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 인천시 동구 송현동 모습. 사진=송현동 주민 제공

인천시 동구 송현동 일대 주민들이 지하에서 진행되는 터널 공사 때문에 수개월째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시공사가 폭약을 이용해 암반을 뚫고 있기 때문이다. 터널은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인천~김포고속도로) 중 일부 구간으로 인천 중구 신흥동부터 동구 송현동 및 화수동까지 2.5km 길이로 지하에 건설될 예정이다. 문제는 해당 지역은 노후화된 주택이 밀집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주민 안전을 도외시한 공사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소음·진동 충격에 시달린지 3개월 넘어, “불편 말할 수 없어… 잠들기 힘들 정도였다”

주민들은 이미 3개월 넘게 폭발 소음과 진동을 참아왔다고 밝혔다. 송현동에서 만난 주민 7명 모두 “지난해 11월부터 큰 소음이 들리기 시작해 지난해 12월부터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소음과 충격이 전달됐고 올해 2월까지 지속됐다”고 말했다.

폭파는 오전 9시경, 오후 6시경 매일 두 번 일어났다. 인근에서 기계 수리일을 하는 서정민(83)씨는 “소리가 너무 커 자다 깰 때도 있었다”며 “처음엔 깜짝 놀라 확인하려고 가게 밖을 뛰쳐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소음과 진동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폭파 1시간여 후엔 망치로 암반을 거세게 두드리는 듯한 ‘딱딱’거리는 소음이 3시간 정도 지속됐다. 1초마다 한두 번꼴로 두드리는 소리에 주민 손진우(가명)씨는 “몇 개월 동안 매일같이 그 소리를 들으면 누구든 노이로제에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가끔 밤 11시부터 새벽 2~3시까지 굴착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김포고속도로 구간에 포함된 인천터널 입구 모습. 사진=국토교통부 보도자료

계속된 충격에 일부 주택엔 금이 가는 등 물질적인 피해가 나타났다. 서석호(39)씨는 지난해 여름 4000만 원을 들여 이층 집을 수리·보수했으나, 올해 1월부터 벽에 6m 길이의 금이 가고 천장의 석고판 아귀가 뒤틀려 천장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천장 방수공사도 이미 했었는데 공사가 시작되면서 천장 주변에 노란 곰팡이가 슬었다. 서씨는 진동 충격으로 인해 천장 어딘가에 균열이 생겼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철학관에도 벽에 균열이 생겼다.

“내 집 밑으로 터널 생긴다는데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주민들이 더 화가 나는 이유는 상황이 이런데도 어느 관계 기관 하나 책임있게 나서지 않는 것이다. 계속된 충격 진동을 견딜 수 없었던 일부 주민들은 1월부터 경찰, 소방서, 시공사, 구청 등에 항의전화를 걸고 해결을 요청했다. 집요한 문제제기에 중부경찰서의 화약 담당 경찰과 시공사 관계자가 동네를 찾아와 진동계측기로 충격 파동을 쟀으나 주민들에 따르면 “시늉만 할 뿐”이었다.

주민 박씨는 수첩을 보여주며 “12월29일 저녁 6시53분 한라직원(시공사) 한○○가 와서 진동을 쟀는데 70.5(db)가 나왔다고 적어놨다”면서 “이 직원도 놀라면서 혼잣말로 ‘벌금 내야 하는 거 아닌가?’하고 갔다”고 토로했다. 박씨가 “‘폭탄’을 좀 줄이라”고 소리치니 직원은 “하루에 2~3m를 가야 하는데 줄이면 1m밖에 못 나간다. 공사는 어떡하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내 집 밑으로 터널이 지나간다는데 몇 m 깊이인지, 정확히 어딜 지나가는지, 위험한지 아닌지를 아무도 모른다” 주민들은 동네가 터널공사의 ‘직접영향권’ 안에 들어간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애초 터널공사 사실조차 터널 공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알게 됐기 때문이다.

▲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김포고속도로 구간 노선도. 사진=국토교통부 보도자료

공사 소식은 지난해 9월 터널 시공사 관계자가 동네에 공사안내문을 배부할 때 알려졌다. 그때까지 주민들은 터널 공사가 추진될 수 있다는 소문은 수차례 돌았으나 주민 반발도 있었고 시·구청의 설명도 없어 공사가 무산된 줄 알았다. 주민 김정명(가명·52)씨는 “9월 연도변 사전조사(터널 작업으로 인한 민가 및 상가 구조물의 균열 피해 등을 사전에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나온 사람이 ‘이 건물이 직접영향권에 속해 있는 것 같다’고 말해서 알았다”며 “시청, 국토부 등을 찾으며 물어봤으나 어느 곳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받은 도표를 보면 내 집은 터널 바로 위에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10월부터 지금까지 경찰, 구청, 시청, 국토부, 국민권익위원회,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 문까지 두드리며 ‘송현동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자 했으나 책임있게 설명하고 주민 복지 문제에 공감하는 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3개월간 혼자 공공기관과 씨름해 오며 정보공개청구 및 인터넷 검색의 도사가 됐다.

“공무원들, 여기가 강남 3구였다면 이런 식으로 지하에 터널 뚫었겠나”

주민들이 더 불안에 떠는 이유는 송현동 일대가 낙후지역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1~2층 단독주택이 밀집된 송현동은 주택재개발 등의 이유로 지난 수십 년 간 개발이 제한돼 주택 대부분이 노후화된 상태다. 상권도 많이 침체돼 지역의 활기도 오래전부터 떨어진 상황이다. 김씨는 “씽크홀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함이 있다”면서 “이 지역이 강남 3구 같았으면 지하에 터널을 뚫으려, 통보없이 터널 공사를 관철하려 했겠냐”고 답답해했다.

주민들은 “시공사가 공사를 빨리하기 위해 규정을 어기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암반 발파 시 허용 기준인 진동 0.3kine과 소음 75dB 이하도 어겼으며 하루 2~3m만 발파한다는 계획과 달리 3~4m를 파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자체의 소홀한 관리감독 하에 규정보다 더 많은 폭약을 써 발파를 하고 있다는 의심이다. 실제로 일부 주민들은 시공사가 어떤 화약을 얼마만큼 쓰고 매일 진동 계측 수치는 어떠한지 알기 위해 책임 주체인 중부경찰서에 직접 문의했으나 중부경찰서로부터는 “화약·뇌관 일지는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 주민들은 이런 ‘불성실한 대응’과 함께 3개월 동안 피해를 감내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들은 “왜 무진동·미진동 발파를 하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주택밀집지역을 지나는 지하터널 건설은 이번이 처음이고 특히 노후화된 주택이 발파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가는 데도 지자체와 시공사 ‘모두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무진동 바위파쇄(수퍼웨지)’, ‘선대구경(Super-Hole)’ 등의 미진동 발파 공법이 있으나 이는 일반적인 ‘다단발파’보다 단가가 3~4배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국민권익위원회는 발파 시공사들이 무진동 공법을 설계해놓고 실제로는 다단발파를 시행해 수십억대의 공사비를 편취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주민들은 이번 터널 공사에서도 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인천시 동구 송현동 모습. 사진=송현동 주민 제공

이들은 터널공사가 이미 시작됐다 하더라도 시공사가 규정을 지켜왔는지는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어떤 화약·뇌관을 썼는지, 하루에 화약을 몇 개 썼는지, 발파를 몇 m씩 진행했는지, 소음·진동 수치는 어떻게 계측됐는지, 무진동 발파 설계를 했는지’ 등이 확인필요하다 지적했다.

주민 손씨는 공무원들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원망을 표했다. 손씨는 “못 사는 지역이라고 주민들 의견 묻지 않고 마음대로 결정하고 진행한다. 지금 고쳐지지 않으면 나중에 다른 지역에서 또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라 비판했다. 서씨는 “공사를 하면 충분히 계산해서 피해를 최소화시킬 조치를 빨리 취해야 할 것 아니냐”며 “최소한 사람이 살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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