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탄올 급성중독 사건은 메탄올이 위험해서 발생한 재해가 아니다. 위험물질 때문에 재해가 일어났다면 비소, PFC(과불화화합물) 등 유해물질을 쓰는 많은 공장에서 이미 재해가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전직 산업안전감독관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은 작업장의 안전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에게 있지만, 이는 마지막 방아쇠를 당긴 결과”라고 지적한다. 사업주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 위험한 작업장이 조성되는 것을 방관한 주체가 있다는 뜻이다.

이번 메탄올 중독 재해는 비용 절감 논리에 따라 형성된 휴대전화 제조산업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발생한 것으로, 산업 관계자들의 힘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한계를 보였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나서야 하는 주체는 정부다. 전직 산업안전감독관들은 “현재 노동부의 안전보건 행정은 20년 전의 수준과 그대로”라며 “이번 사건은 산업안전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지도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신호”라고 비판했다.

OECD 산재 발생률 1위 오명의 국가, “산업안전 책임 전담하는 독립 조직 필요”

고용노동부는 중독 재해를 확인한 지난 1월부터 유사 사업장 8곳에 대해 근로감독을 했고 전국 메탄올 취급 사업장 3100곳을 전수 조사해 집중 감독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안전 행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고용노동부의 방침에 회의를 표하고 있다. 유해물질 중독 재해는 10년 전부터 반복된 일인데도 그때마다 단기적인 대책 마련에 그치고 실질적인 예방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 노동건강연대와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지난 2월1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삼성전자 하청업체 메탄올 중독 사건의 함의와 구조적 원인을 진단하는 긴급토론회 ‘청년 노동자들의 시각 손상 사건이 의미하는 것’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노동건강연대가 메탄올 급성중독 재해사건과 관련해 의견을 구했던 전직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 ㄱ씨는 “10년 전 노말헥산 노출 산재가 발생했을 땐 노말헥산의 문제로 풀어갔다. TCE(트리클로로 에틸렌) 중독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그 물질을 없애고 끝냈다”며 “메탄올을 에탄올로 대체하는 건 핵심이 아니다. 관리 가능한 물질에 왜 노출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산업안전 행정에 근본적인 개혁이 전제되지 않는 한 모든 대책은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은 한 해 인구 10만 명당 32.9명이 산재로 사망하는 등 OECD 회원국 중 산재사망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산업안전 시스템이 취약함에도 이를 전담해서 책임질 주체가 없다는 지적이다.

전직 산업안전감독관 ㄴ씨는 ‘평생 산업안전 행정을 책임지는’ 독립적인 공무원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7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안전상태의 질이 매우 낮은 사업장을 차츰 개선시키는 데엔 긴 호흡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1, 2년 가지고는 안되고 최소 10년은 볼 수 있어야 한다”면서 “현재 산업안전담당 공무원들도 2~3년 마다 보직이 바뀌니 전문성이 쌓일 수 없다. 과장은 1년 마다 순환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전문성을 기르고 책임행정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ㄴ씨는 산업안전보건 문제는 충분한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라 강조했다. 산업재해의 재해 발생 메커니즘은 기계, 화학, 설비, 질병 등 복잡하고 방대한 영역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업장에서 은폐될 수 있는 사실을 책임지고 규명하려면 그에 맞는 전문성과 책임행정이 필요하다.

대안은 ‘청’이나 ‘처’의 지위를 가진 독립 행정 조직으로의 개편이다. ㄴ씨는 “먹거리 안전 문제가 심각했을 때 보건복지부에 ‘식약처’가 만들어졌고 큰 성과를 냈다”면서 “중장기적인 전략도 이런 조직에서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재 미가입 사업장 팽배… 사업주가 “나도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전략 절실

현재 긴급 점검 확대, 유해물질 사업장 감독 강화 등의 대책이 제기되고 있지만, 문제는 이들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느냐다. ㄱ, ㄴ씨 모두 이런 방향은 ‘보여주기 행정’에 그칠 뿐 실제로 사업장을 변화시킬 영향력을 내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ㄴ씨는 “사업주가 ‘나도 언제든 걸릴 수 있다’라 생각하게끔 전략적인 행정을 쓰는게 향후 대책의 기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ㄴ씨는 ‘음주 단속’을 예방행정의 예로 들었다. 음주 단속은 불시에 동시다발적으로 실시되며 위반되는 즉시 과태료를 물게 된다. 실제로는 위반수가 많지 않음에도 음주 단속이 강화되며 점점 시민들 사이에 ‘걸릴 것 같다’는 인식이 확대돼 지금은 음주 운전에 대한 경계가 생겼다.

이들은 감독방식의 변화를 촉구했다. 우선 현실과 괴리가 큰 산재보험 가입 사업장 중심의 감독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감독관들은 재해 기록이 있는 사업장 중심으로 감독을 나가며 그 대상도 산재보험에 가입한 사업장이다.

ㄱ씨는 “결국 문제가 터지는 곳은 산재 미가입 사업장”이라며 “안산 시화공단과 같이 특정 지역을 설정하는 지역감독이든 화학물질, 사다리 안전장치 설치 등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부분감독이든 현장 중심의 감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자료사진. ⓒ노컷뉴스

산재보험 미가입 문제에 대해 ㄴ씨는 “선의로 가입한 사업장이 고용노동부의 ‘살벌한 감독대상’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라며 “법을 지켜서 오는 수혜를 늘리고 그 반대는 불이익을 주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안산에 널린 게 미가입 사업장들인데 기본적으로 감독 의지만 있다면 (관리감독이 가능하다)”며 “현장 중심의 감독 행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과태료나 과징금 제재를 강화하는 것도 방법으로 제시됐다. ㄴ씨는 “형벌을 높이는 것은 사업장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 ‘부분작업중지’, ‘전면작업중지’ 등 작업중지 명령은 실제로 잘 적용되지 않고 있다”면서 “특정 위반에 과징금을 왕창 물리거나, 위반 적발 즉시 과태료를 내는 방안, 작업중지명령을 내리되 중지해제하려면 과징금을 내게끔 하는 현실적인 감독 전략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노동자 한 명 고용하더라도 ‘노동안전보건 지키겠다’ 선언해

전문가들은 영국의 ‘보건안전청’을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했다. 보건안전청은 산업안전 행정만을 독립적으로 맡는 조직으로, 사업자로 등록하는 모든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보건안전청에 등록 신고를 내야 한다. 국세청에 ‘세금을 내겠다’는 의미로 신고를 하듯이, 보건안전청에도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선언을 하는 의미다. ㄴ씨는 “영국은 노동자를 단 한 사람 고용하더라도 이 선언을 해야 한다”며 “전 세계의 모델이고 모범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번 재해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라면 고용노동부와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이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노동부는 사업주에 해가 되는 것은 안 하고 있다. 산업안전이나 노동법을 준수토록 하는 것은 사업주를 위해서도 옳다”며 “‘보여주기’식 행정을 그만두고 감독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ㄴ씨도 “(구조적 문제를) 현장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결국, 고용노동부의 성격을 결정하는 정부, 정책결정권자들의 문제”라면서 “(산업안전 감독에)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이 일만 평생토록 하는 공무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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