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은 통감하지만 그런 사업장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번 메탄올 중독 산재에 대한 한 휴대전화 부품 납품업체 관계자 B씨의 말이다. 소규모 하청업체의 열악한 노동안전 관리에 대해 문제의식은 가지지만 수요 변동을 제대로 예측할 수 없는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의 특성상 지금과 같은 다단계 하청 구조는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번 산재 사건은 휴대전화 부품 제조산업의 가장 아래 납품업체들의 열악한 노동 안전 관리 실태를 드러냈다. 휘발성이 강하고 반감기가 길지 않은 메탄올에 노동자 5명이 급성중독됐다는 사실은 그만큼 안전 관리가 전무한 수준이었음을 방증했다. 문제가 된 업체 세 곳 중 두 곳은 삼성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는 3차 하청업체고 나머지 한 곳은 삼성전자에 부품을 납품하다 한 달여 전 LG전자에 납품하게 된 4차 하청업체였다. B씨는 “영세할수록 비용 절감 압박이 세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다. 구미, 광주 등 지방 공단은 깜짝 놀랄 만큼 열악한 곳이 많을 것”이라 지적했다.

휴대전화 산업 리스크 관리, 결국 가장 밑바닥 하청업체 파견노동자들에게 전가돼

휴대전화는 기술개발 속도가 빠르고 제품 교체주기가 짧은 대표적인 제품이다. B씨는 “1년 마다 신제품이 나오는데 그 제품이 3~4개월 만에 들어갈 수도 있고 3년 동안 시장에서 팔릴 수 있다”면서 “플라스틱, 금속, 가죽, 플렉서블 등 스마트폰 유행이 급변하며 자재나 공정도 변해 여기 산업은 그에 맞춰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휴대전화 제조산업은 공급과잉으로 인한 비용을 떠안을 리스크가 큰 산업 중 하나로 정확한 수요예측과 리스크 최소화가 이 산업의 주요 이윤 전략이 되는 것이다.

▲ 노동건강연대가 만든 카드뉴스 중 일부. 사진=노동건강연대

다단계 하청 구조는 각 업체들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 물량이나 공정을 외주화하면서 형성된다. 가령 원청에서 1000개를 발주 받았다 하더라도 수요량은 500개에서 1000개 사이에서 결정되므로 1차 하청업체는 500개를 갖추고 나머지 수량을 2차 하청업체에 외주화하는 식이다. 2차 하청업체도 그중에서 리스크를 덜기 위해 일부 물량을 3차 하청에 외주화한다. 사이드키(휴대전화 측면의 버튼 부위를 절삭하는 공정), 홈키(휴대전화 정면 버튼 제작), 폰 커버(휴대전화 뒷면 덮개 작업) 등 노동집약적 범용 부품 공정이 외주화되는 경우도 일반적이다. 즉 이 과정에서 물량을 줄이거나 발주를 취소함으로써 자사의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이 활용된다.

한국 휴대전화 제조산업의 공급망은 삼성전자·LG전자 원청 대기업의 발주로 시작돼 ‘1차 하청업체→2차 하청업체→3차 하청업체’ 등으로 생산이 연결된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전자전기업종 조직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대기업 원청은 핵심부품 여부에 따라 외주화 층위를 나눠 리스크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연산, 디스플레이, 카메라 등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투자가 필요한 핵심부품은 원청이나 원청의 자회사가 생산하며 케이스, 안테나 등 범용화된 부품은 자본력이 있는 업체가 제조를 맡고 그 이하의 제품들은 ‘영세사업장’이라 불리는 소규모 업체가 납품을 맡는 식이다.

원청 대기업이 시장 수요에 따라 생산계획을 시시각각 변경함에 따라 하청업체도 그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생긴다. 하청업체로선 물량이 많을 때는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물량이 적을 때는 휴업이나 해고가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어야 함을 뜻한다. 결국, 하청의 단계가 내려갈수록 물량 변동의 리스크 부담이 커지고 업체들은 고용 유연성이 가장 수월히 확보되는 불법파견노동을 활용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상위 업체는 동일한 부품을 여러 개의 하청업체들에게 납품받으면서 단가 인하 압박 효과를 내기도 한다. B씨는 “고객사가 100원 하던 제품값을 80원으로 낮춘다. 우리만 해도 비슷한 업체가 5개가 있는데 거기서 안 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면서 “하청 단계가 내려가면서 80원이 60원이 되고 60원은 40원이 되면서, 원청에 을일 수밖에 없는 하청은 모두 여기에 맞춰 납품한다”고 말했다.

전자전기업종 조직화 방안 연구에 참여한 이유미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하청업체의 경쟁력은 기술력이 아니라 얼마나 저비용으로 대기업에 제때 납품할 수 있는지 여부”라면서 “유연한 생산과 비용절감을 꾀하다 보니 노동비용을 최소화해 광범위하게 파견업체를 사용하는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영세업체들 다시 안전보건 기준 안 지킬 가능성 커

영세사업장들이 산업안전기본법을 위반하는 것도 똑같은 논리다. 비용 절감을 하기 위해 적절한 환기 설비나 보호구 지급을 하지 않고 산재보험 가입도 간과한다.

B씨는 메탄올 급성중독 사건이 발생한 후 하청업체에 대한 원청업체의 사회적 책임 규범에 따라 1, 2차 협력업체들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해당 공정을 맡은 업체를 매일 찾아가 시약을 검사하고 안전장치 설치를 권고하며 자체적으로 대체재를 개발하고 있는 업체까지 생겼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그는 “이들이 이렇게 노력해도 영세업체들은 돈이 안되니 규칙을 안 지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자료사진. ⓒ노컷뉴스

B씨는 이 사건으로 휴대전화 업계 관계자들이 대기업 원청이 국내 생산을 철수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삼성전자가 연간 생산하는 스마트폰 3억 대 중 한국에서 생산하는 양은 7000만 대가량이다. B씨는 “계속된 사회적 책임 비판에 원청이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으로 돌려버리거나 해외 생산공장으로 돌려버리면 한국의 협력사들이 살 곳이 없다”며 “판을 깨지 않는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불법 행위가 상수다… 불법파견·안전보건 미준수 해결이 선결돼야

그러나 이런 논리에 따르면 영세 납품업체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은 바뀔 가능성이 없다. 휴대전화 업계가 상수로 상정하는 ‘급속한 기술개발 및 제품 교체 주기 속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이에 따라 외주업체로 리스크를 전가하는 구조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미 연구원은 “불법을 개선할 생각을 해야지, 불법을 전제로 둔 채 리스크 논의만 하는 게 대체 누구에게만 리스크가 감소되는 것이냐”며 “정부 당국이 불법 파견을 엄격하게 단속했다면, 파견 노동자를 손쉽게 쓸 수 없었다면 이게(이 사건이) 가능했을까. 노동자들이 자신의 고용조건을 개선하는 게 쉬운 상황이었다면 계속 열악한 상태로 남아있었을까”라고 지적했다. 파견법 위반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법 준수를 똑같은 경영의 상수로 놓고 개선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과 함께 연구에 참여한 홍석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은 “계약 시 하청업체의 적절한 이윤을 보장하는 방식이나 노동안전 감독, 근로감독을 강화하는 등 어렵겠지만, 법적 장치를 마련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영세 제조업체가 난립해 있어 더 문제가 불거지는 측면도 있다”며 “근로감독을 강화해 노동부 기준 충족시키는 하청만 살아남도록 하는 것도 개선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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