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여 동안 휴대전화 부품 제조 하청업체에서 일한 김수정씨(35)는 “이 바닥에서 안전은 자기 스스로 챙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거 1년 8개월 동안 불법으로 파견돼 일한 적이 있는 김씨는 “특히 파견 노동자는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면서 “메탄올도 우리가 쓰는 수많은 화학약품 중 하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월 중순 삼성전자 휴대전화 부품 납품업체에서 일하던 불법파견노동자 A씨(28)가 메탄올 급성중독으로 실명 위기에 처한 사실이 처음 확인된 후 4명의 피해노동자가 추가 확인돼 세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건의 원인이 ‘유독물질 메탄올’로 지목되는 가운데 일각에선 “결코 메탄올에서 끝나지 않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피해노동자 5명은 왜 메탄올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까. 피해자 A씨의 재해조사서, 재해발생경위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재해가 발생한 배경을 알아보았다.

A씨는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 위치한 스마트폰 부품 납품 업체 ○○ TECH에서 일했다. 업체는 알루미늄을 깎아(절삭 가공) 스마트폰 ‘사이드키(휴대전화 측면 키)’를 만들어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3차 하청업체’였다. 상시 노동자 수는 20여 명이며 대부분 인력 파견업체 4곳에서 파견된 불법 파견 노동자로 알려졌고 A씨도 마찬가지였다. A씨는 지난해 9월 초중순에 입사해 재해를 입은 1월 중순까지 4개월여간 일했고,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12시간 야간근무를 했다. 재해경위성에 따르면 A씨는 수시로 잔업을 했고 업무량이 많은 경우 한 달에 한 번밖에 못 쉴 정도로 일하기도 했다.

A씨가 맡은 일은 가공된 제품의 규격을 검사하고 제품에 묻은 메탄올을 제거하는 검사작업이었다. 알루미늄을 깎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용액으로 메탄올이 사용됐다. 절삭 기계는 알루미늄이 내부로 들어오면 자동으로 메탄올을 분사했기 때문에 가공 후에도 제품에 메탄올이 남았다.

▲ 자료사진. ⓒ노컷뉴스

A씨의 도구는 에어건이었다. 공정을 거친 제품이 앞에 놓이면 에어건을 이용해 공기를 분사해 메탄올을 제거한 것이다. 완벽히 제거하기 위해 직접 왼쪽 손으로 제품을 쥐고 에어건을 분사하기도 했다. 규격은 맨손으로 제품을 쥐면서 측정했다. A씨는 일의 특성상 메탄올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에어건으로 분사된 알코올이 눈이나 피부에 튈 수 있고 맨손으로 제품을 잡으면서도 피부가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업장엔 메탄올을 취급하는 절삭 기계 30여 대가 들어차 있었으므로 메탄올 증기가 상시적으로 있었을 거라 짐작됐다.

실제로 작업장은 “메탄올에 절어있는 수준”이었다. A씨가 급성중독으로 쓰러진 지 6일 후인 지난 1월22일 산업안전공단의 작업환경 측정에 따르면 메탄올 농도는 1103~2220ppm을 기록했다. 기준치 200~250ppm에 비해 5배 이상 높은 값이다. 이를 두고 A씨의 산재보험 신청을 지원한 노동건강연대의 박혜영 노무사는 “1930년대에나 있던 급성중독“이라며 “노동조건이 다시 옛날로 회귀하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이 된다“고 지적했다.

“왜 아무도 메탄올이 위험하다고 알려주지 않은 거죠?”

유해물질 사용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 정도만 제대로 통제하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 이번 메탄올 급성중독이 심각한 문제인 것은 모든 층위의 안전 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데 있다. 환기장치가 없어 공장 내 메탄올 증기가 배출되지 않았고 송기마스크, 불침투성 장비 등 제대로 된 보호장구도 없어 눈, 피부, 호흡기 등으로 메탄올 증기와 액체가 침투할 가능성이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재해경위서에 따르면 업체엔 창문 이외에는 환기시설이 없었으며 유해물질을 외부로 집진하는 장치도 없었다. 또한 “9월에는 에어컨을 가동하여 작업했고 겨울에는 기계의 가동 온도로 인해 외부와 환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에 종사했을 것”이라면서 “일반 마스크 외의 거의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A씨의 급성중독을 진료한 의료진의 업무관련성 평가서를 보면 A씨는 바쁠 때는 맨손으로 작업하는 경우도 있었다.

A씨는 자기가 쓰는 물질이 무엇이고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설명듣지 못했다. 유해물질 취급장에서의 안전교육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해야 하지만 이를 간과한 것이다. 화학물질 취급에 주의하라는 경고 포스터도 붙어있지 않았다.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 두 명의 사용자들이 있었음에도 이들의 안전을 관리하는 책임자는 없었다. 산업 안전을 보장하는 법이 있고 처벌조항도 있지만 사용자가 지키게끔 큰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한 피해자 가족은 박 노무사에게 “그냥 사용하면 안 된다고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거죠? 정부는 그동안 뭐하고 있었던 거죠?”라고 물었다. 아무도 메탄올이 위험하다거나 이 작업장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는 원망이었다.

“전자산업 화학물질 메탄올은 일부일 뿐… 파견노동자는 스스로 제 몸 챙겨야”

고용노동부는 A씨의 중독 재해 사실을 인지한 후 공정이 유사한 하청업체 8곳과 메탄올 취급 사업장 3100곳에 대한 집중감독에 나서 노동자들의 건강진단 및 사업주 법 위반사항을 감독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메탄올 자리에 어떤 화학물질을 넣어봐도 문제는 성립할 수 있다”며 ‘사후약방문’이란 평가를 제기하고 있다.

▲ 양대노총 및 노동건강연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노동계 및 보건의료 관련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불법파견 노동자 메틸알코올 중독 실명 방치 박근혜 정부와 LG·삼성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휴대전화 부품 납품업체에서 오랜 기간 파견노동자로 일한 적 있는 김씨는 “전자부품 업체들 통틀어 ‘안전교육’을 하는 곳은 없다고 보면 된다. 거의 모든 노동자가 안전교육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라며 “300명 넘게 일하는 1차 헙력업체도 안 하는 안전교육을 정부가 감독도 안 나가는 20~30명 업체가 하겠냐”고 반문했다.

특히 메탄올에 대해 김씨는 “휴대전화 부품 제조 첫 공정부터 끝 공정까지, 물티슈 뽑아 쓰듯 모두가 다 쓰는 기본 세척제였다. 분홍색 약품 통에 넣고 열 댓개씩 갖다 두고 썼다”면서 “누구도 위험하다 말하거나 보호장비를 준 적이 없어 우리도 다 맨손으로 메탄올을 썼다. 이게 위험하다는 건 실명 사건을 통해 처음 알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전자산업 내엔 메탄올보다 훨씬 더 위험해 보이는 물질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번은 핸드폰에 유리를 부착하는 ‘본딩’을 일을 한 적이 있는데 본드를 벗겨내는 어떤 물질 때문에 일 할 때마다 눈이 맵고 시뻘개졌다”며 “3시간 작업하면 눈물이 다 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조립공정에 쓴 ‘신나’를 언급하며 “제품에 지문 묻지 말라고 손가락 골무를 끼는데 두 시간 정도 지나면 이 골무가 녹았다”면서 “녹은 채로 계속 일을 했고 마스크 같은 건 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혜영 노무사는 이번 사건이 ‘불법파견 노동자의 취약성’과 동떨어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불법 파견 노동은 ‘필요하면 쓰고 필요없으면 버리는 유령같은 일자리’로, 사용사업주는 자신이 고용한 사람이 아니기에 책임을 지지 않고 이들을 고용한 파견업체는 인력 파견에만 신경을 쓴다는 점에서다. 특히 파견노동자들은 월급, 고용복지 등의 문제보다 일자리 보전이 더 급한 고용취약계층이라 안전 문제에 스스로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씨는 “보통 파견노동자가 다치면 원청은 파견업체에 ‘데리고 가라’고 전화를 하고, 작업장 사고 일수를 높이지 않기 위해 다쳤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라지 말라고 쉬쉬시킨다”면서 “파견업체든 노동자든 산재 신청은 잘 하지 않는다. 원청 회사가 다시 안 쓸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얼마 전 동료가 손가락이 기계핀에 꽂혀 크게 다친 적이 있는데 이틀만 쉬고 바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그는 “파견업체, 원청, 정부, 법, 어디에도 파견근로자를 보호해주는 장치는 없다”면서 “사건이 터져야 이 공정이 위험한지 알게 되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