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과학논쟁이라는 주제로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이 나왔다. 이 논문은 현직기자가 작성했다. 오철우 한겨레 과학전문기자(삶과행복팀)는 '천안함 과학논쟁의 성격과 구조' 제하의 논문을 제출해 지난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졸업식에선 이 논문이 서울대 자연대에서 8명에게만 수여하는 최우수 박사논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도교수인 홍성욱 서울대 교수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감한 주제에 대해 용기있게 쓴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이 논문의 요지는 가장 많은 정보와 증거를 독점한 채 조사결과를 내놓은 민군 합동조사단이 과학논쟁을 주도했지만, 논쟁을 더 키웠다는 것이다. 오 기자는 합조단이 논쟁에서 내놓은 증거들을 분석한 결과 △결론에 끼워맞춘 증거들 △과학방법론(시뮬레이션)과 실제(선체 손상 상태)와 불일치 △선행연구가 없는 주장의 도입 △설명할 수 없는 증거들(함미 프로펠러 손상 원인, 어뢰에 붙은 가리비 속 흡착물질)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오는 26일 천안함 침몰 6주기를 앞두고 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앞에서 오 기자를 만나 지난 6년 간의 과학논쟁을 연구한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오 기자는 “천안함 논쟁이 복잡하면서도 여기저기 흩어져있었을 뿐 아니라 논쟁 참여자들마다 견해가 엇갈려 있었다”며 “전체의 풍경을 모아 기록을 남겨보자는 취지로 이 주제를 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과학기자로 천안함을 취재하면서 왜 논쟁이 쉽게 종결되지 않았는지, 과학자들의 참여는 왜 생각보다 적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보고 싶었다고 오 기자는 전했다. 애초 다른 주제를 하려 했으나 지난 2014년 4월 홍성욱 교수로부터 기자로서 인터뷰와 자료수집, 취재력의 이점을 살려 천안함 논쟁을 정리해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받고 시작하게 됐다는 것.

오 기자가 연구를 통해 내린 결론은 합조단이 과학논쟁에서 제기된 반박을 물리칠 만큼의 설득력을 얻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합조단의 결론도 반박의 여지를 열어줬다. 특히 합조단이 제시한 증거가 동의를 받거나 반박, 재반박의 과정을 거치면서 신뢰를 얻어 증거로 확정되지 않고, 오히려 논쟁을 더 불러일으켰다. 흡착물질을 증거로 제시했을 때 시료와 모의 폭발실험 자료를 모두 공개해 누구나 재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합조단은 모의 폭발실험 시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모의 폭발실험에 알루미늄 판재를 사용해 데이터에 신호와 잡음이 뒤섞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는데도 합조단은 재실험을 하지 않았다. 오 기자는 “기껏 알루미늄 판재가 포함된 데이터에서 알루미늄 성분만 빼고 데이터를 해석하는 식이었다”며 “이런 설명은 과학계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방식이었다”고 지적했다.

▲ 오철우 한겨레 기자가 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 앞 커피숍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조현호 기자
이런 심각한 ‘하자’를 지적했는데도 합조단이 주장을 철회하거나 재실험을 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오 기자는 “분단국가이자 안보가 강조되는 한국사회의 특성 때문”이라며 “여론조사를 보면, 합조단 조사결과는 불신하지만, 북한 소행일 것이라는 응답은 높다”고 밝혔다.

정부가 조사기구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도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데 중요한 요소였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 기자는 “합조단 구성에서 해당 전문가가 충분히 참여했는지, 민감한 사항에 대해 충분히 조사했는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버블주기를 지진파가 아닌 공중음파 기록으로 산정한 것이나, 흡착물질은 모두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로 폭발재라는 주장 모두 이전에 학계에서 선행된 적이 없는 결론이자, 연구방법이었다. 이를 두고 오 기자는 “지진파를 배제해도 올바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방법론임을 먼저 증명하거나 과거 이런 방식으로 조사했을 때 더 정확했다는 전례를 제시해야 한다”며 “그것 없이 몇몇 전문가의 주장으로 도출한 결론은 설득력을 얻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천안함 과학논쟁에 주류 과학자가 뛰어들지 않은 것도 오 기자의 큰 의문 가운데 하나였다. 실제로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내놓은 학자는 정기영 안동대 교수, 홍태경 연세대 교수, 송태호 카이스트 교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외파 학자들이거나 정년퇴임한 명예교수들이었다.

그는 “과학자들이 의견을 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연구비 압박’이나, ‘정치적 압력에 대한 부담’을 얘기하는 분도 있었다”며 “종합적인 사건이지만 전공 분야가 일부에 한정돼 있다보니 생기는 부담감 뿐 아니라 안보문제가 개입된 사건이라 더욱 발언하기 힘들다고 여긴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의견을 제시하는 순간 ‘그럼 당신은 어뢰가 아니라는 것이냐’는 질문이 뒤따라 나오는 상황은 일종의 ‘심리적 문턱’이었다는 것.

▲ 오철우 기자가 쓴 박사논문 '천안함 과학논쟁의 성격과 구조'에 수록된 논쟁 개념도.
똑같이 재현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사건인데도 정작 증거는 공적 기관이 독점한 점도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연구와 참여를 제한했다. 흡착물질 시료가 일부 국회의원을 통해 바깥으로 나온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핵심 증거들은 국방부가 보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신상철 전 민군 합조단 조사위원이 법정에서 벌인 5년6개월 동안의 재판은 과학논쟁을 이어간 유일한 공론장이었다고 오 기자는 평가했다. 그는 “법정에 제출된 증거와 증인들의 증언은 합조단 보고서 이면의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그동안의 논쟁을 정리하고 재확인한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오 기자는 지난 2년 간 논문 작성 과정에서 과학 전공 대학원생들의 천안함 사건에 대한 관심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대 ‘협동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의 석박사 대학원생들에게 천안함 과학논쟁을 발표할 때마다 ‘대학원생들이 흥미로워했으며, 논쟁의 1차 자료를 정리하는 것도 학문적 의미가 있겠다’는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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